일기 - 단체 손님

in #bus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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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보름 전 젊은 처자 셋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홀에서 일하던 날이라 직접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들어와서는 가게 안을 둘러 보더니 메뉴판을 보자고 한다.

"왔구나!!"

이건 단체 예약이다.
식사하시러 오는 손님들은 들어오면 일단 자리에 앉게 마련이다. 인테리어가 맘에 들면

어,예쁘네.

말은 해도

가게 예쁜데 메뉴판 좀 볼게요.

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진을 찍고 싶어도 자리 잡고 가방 놓고 겉옷 벗고 둘러보지, 냅다 핸폰 먼저 꺼내서 찍으러 다니지 않는다.

단체 손님 예약을 하기 위해 답사 나온 사람들은 일단 문을 삐죽 연다. 들어와서는 천천히 말없이 가게를 스캔하기도 한다.
여기서 퉁명스럽게

누구세요?

하면 십중팔구는 단체 손님을 놓친다. 퉁명스러운 상대에게

저, 예약하러 왔는데요.

라고 되려 손님이 친절하게 얘기해도 1차 응대에서 이미 실패한 가게 직원의 급 친절 변신 모드는 변절처럼 보여서 면이 안 서게 된다. 손님은 말은 공손해도 기분까지 공손해지지는 않는다.
단체 예약을 위해 방문한 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선다 해도 너무 굽신거리고 간이며 쓸개까지 다 빼 줄 것처럼 굴면

"장사 안되는 집이구나. 애쓴다. 맛이 없나?"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다. 적당히 꼿꼿하고 적당히 길 자세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다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비록 결정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젊은 처자 세 분은 가게를 둘러봐도 괜찮냐고 물었다. 얼마든지 보라고 하고 2층도 있으니 올라가 확인하시라고 했다. 즉 미끼를 먼저 던져서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려는 작전을 구사했다. 단체 손님이라고 지레짐작하고 2층까지 손수 모시고 올라가서 설명하면 얘기가 도돌이표가 된다.

"장사 안되는 집이구나. 애쓴다. 맛이 없나?" :))

예약하러 오는 사람 입장에서 과잉 친절은 더 불편할 수도 있다.
스윽 둘러 보더니

2층이 좋겠네.

그런다.

"걸려 드러쓰..."

2층은 대략 20석이다.

인원이 좀 적어도 통으로 쓰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손님들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점잖게 배려받는 기분이었겠지만 나는 막 던져보는 거였다.

20명이 넘을 수도 있는데... 애매해서요.

"빙고!!!"

원래 인원은 40여 명인데 양식을 안 먹는 사람들이 있어서 팀을 두 음식점으로 나눠야 한다. 그런데 그게 확실하지 않아서 20명이 될지 30명이 될지 모른다. 암튼 최소 10명은 한식을 드신다고 한다. 이럴 때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면 통쾌한 승리가 찾아올 것이다.
막 던지기 2탄!

배달해 드릴게요.
요 앞에 낙지집 있는데 거기서 가져오면 됩니다. 단체로 오시는데 따로 드시는 것도 보기 그러니까요.

그래도 괜찮냐는 감동의 눈빛을 나에게 선사한다.

"완전히 빠져 드러쓰..."

종결 초식.

그냥 편하게 여기서 드세요. 1층 통으로 비워 드릴게요.

손님 세 분은 그러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켜 드셨다.
최종 관문이다.

'맛은 어떤지 확인하는 거겠지."

계산하고 나가기 전 명함을 받고 방문 날짜를 약속받았다. 맛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6월 30일 토요일 12시에 44명이 가게에 들이닥쳐 1층을 점령했다. 먼저 온 다른 손님들은 미리 2층으로 올려보냈다. 주말이라 해도 12시는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얼마 되지 않는다.
낙지집에서 배달한 음식은 없었다. 내 감동 서비스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ㅋ
44명에 메뉴 42개. 제대로 한 건 했다.
이 구석까지 찾아와서 맛있게 먹고 가시는 분들, 모두 고맙고 여태껏 음식을 허투루 만들지는 않았다는 보람도 챙겼다.
그날 오후에는 무슨 열대성 폭우 같은 게 쏟아지더니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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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mt님 안녕하세요. 깜지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깜지님 감사요..^^

밀당의 고수시군요!

근데 왜 연애는 그렇게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아주 옛날 이야기입니다.^^;;

사장님과 예약하러 온 손님 사이의 심리가 아주아주 잘 표현되어 재미있습니다.
단체손님 대박~. 축하합니다~^^

오랜만의 대박이었지만 저는 오너는 아니어요..
울 가게에서는 매니저로 통합니다..ㅎㅎ

축하드림니다..
장사는 참 어려워요...

특히나 손님 상담 하기란
정말 힘든것 같습니다
홧팅!!입니다 ^^*

홧팅 고맙습니당..
요즘 장마에 태풍에 장사가 시원찮은데 이런 거라도 한 번씩 걸려야죠..ㅎㅎ

미끼를 잘 고르고 던질 줄 아신다는.....엄지척!!

다년간의 경험?? ㅎㅎ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단체 예약 원하는 손님들은 빈정상하지 않게 해 드리고 과하지 않을 정도의 서비스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역시 전문가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ㄷㄷ

ㅋㅋ 훅을 거니 바로 걸리데요..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이러면 바랄 게 없겠네요..ㅎㅎ

칭찬의 풀봇~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당... 풀봇은 사랑...??

요즘 고민이 많이되는 부분인데 영업비밀(?)을 풀어놓아 주셨네요. ^^

이쪽에 계신가 보네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ㅎㅎ

착착 감기는 초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아마도 음식이 최종 결정타였겠죠. 사장님께서 유피님께 보너스를 드려야 한다고 봅니다!ㅎㅎㅎ

예의 있는 분들이라 예약부터 방문 후 가실 때까지 큰 문제 없이 잘 지나갔어요.. 수요일 20명 예약이 있는데 요즘은 비 땜시 파리 날리고 있거든요. 이런 건이라도 있어야죠.. ㅎㅎ

열대성 폭우는 @sadmt 님 고생해서 푹 쉬라고 오는 축하의 비였네요.

가끔씩 그래야 가게 하는 맛이 나죠 머. 그래도 월말에 한 건 제대로 였습니다.

요즘 팽팽 노는데 이런거라도 한번씩 하니 다행입니다. 잘들 가시고 나면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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