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

in #kr6 years ago

청승맞은 피리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다이가 근처에 와있는 모양이었다. 다이가 피리를 불기 시작하면 동네 꼬마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어 그를 둘러싸고 한참이나 저들끼리 까르르거렸다. 그 모습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피리소리에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텅 비어있는 카페에 우두커니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이와 제이미를 처음 만난 것은 나와 친구가 카페를 열겠다고 다섯 번째로 라다크를 찾은 그 해, 살에 와 닿는 한낮의 태양볕이 제법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여름의 앞자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름조차 낯선, 누군가에게는 지구 반대편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라다크’라는 오지에서, ‘카페’를 열겠다는 사람 치고 우리는 지나치게 천진난만했다. 여행을 하다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곳을 만나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었지만 이곳에 카페까지 차려놓고 뿌리를 내리게 될 줄은 라다크 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절대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하루에 한 가지씩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해가며 느긋하게 카페의 구색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카운터를 짜고 남은 나뭇조각에 아무렇게나 카페 이름과 화살표를 휘갈겨 써 만든 작은 이정표를 카페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에 세워놓기는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헬로. 여기 카페 맞지?”

여행자로 보이는 두 남녀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카페로 들어왔다. 외국인 여자 둘이 수상쩍게 왔다 갔다 하며 하루 종일 무언가를 뚝딱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던 동네 사람들이 몇 번 기웃거렸던 것을 제외하고 제 발로 카페로 찾아온 외국인 여행자는 그들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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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 Ladakh, India, 2012

“여기 정말 멋지다! 커다란 창문도 그렇고, 이 낡은 의자랑 탁자도 그렇고.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 너희들은 여기 살고 있는 거니?”
“사실 아직 오픈 전이야. 그렇지만 너희들이 좋다면 언제든지 와도 좋아. 다른 여행자들을 데리고 오면 더 좋고.”

다이는 일본 사람이었고, 10년째 전 세계를 여행 중이었는데, 열 개도 넘는 피리를 가지고 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피리를 분다고 했다. 차림새도 그렇고 긴 머리카락과 수염도 그렇고, 겉모습부터 어딘가 ‘도인’의 냄새를 풍기는 다이는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년 동안 집을 떠나 있어 이제는 일본말을 까먹을 지경이라는 그의 파란만장한 여행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스페인의 어느 정글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나, 인도 바라나시에서 음악적 스승을 만나 교감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나.

제이미는 싱가포르 사람으로 다이와는 다람살라에서 만났고, 경비 절감을 위해 함께 방을 쓰며 여행 중이라고 했다.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것에 관심이 있어 인도를 찾았다는 그녀는 ‘웨얼 아 유 프롬?’이라는 질문에 대해서 꽤나 까다로운 견해를 갖고 있었다.

“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먼저 묻는 거야?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그렇게 중요하니? 그것이 나란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말 모르겠어.”

나는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묻는 이 질문이 아주 ‘순수한 호기심’에 해당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가 좀 유별나다고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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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 Ladakh, India, 2012

그 이후로 다이와 제이미는 매일 같이 카페를 찾았다. 나와 친구가 오픈 준비로 바쁘긴커녕 사랑하는 땅 ‘라다크’에서 꿈에 그리던 ‘카페’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 행복에 겨워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만 할 때, 다이와 제이미는 오히려 더 조급해하며 이것저것 카페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와 채워 넣곤 했다.

"아까 시장 갔다가 짜이 만들기에는 이 주전자가 더 편할 것 같아서 사 왔어. 어때?"
"물을 떠다가 쓰려면 이 정도 크기의 물통은 필요하지 않겠니?"

뿐만 아니었다. 제이미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이정표와 간판을 만들었다.

"저기... 제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도 우리가 감당해낼 수 없을 거야."
"동네방네에 써붙여놔도 모자랄 판에 그게 무슨 소리야! 열 개는 더 만들어야 해."

그녀는 그렇게 테라스 바깥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동안이나 페인트 붓을 휘저었다. 다이는 더 했다.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해. 무료 피자 프로모션을 하자. 내가 이래 봬도 피자 마스터야. 스페인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몇 판이나 구웠는지 알아?"

다이는 카페 부엌에서 뚝딱 피자를 몇 판 구워내더니 가지고 나가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이웃 가게 주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겨우 그를 따라나서 옆에서 쭈뼛거리다가도

"여러분! 카페 두레가 곧 오픈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라고 외치며 싱글벙글 웃는 다이를 보면 그의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에 가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함께 밥을 해 먹고, 차를 마시고, 때로는 술을 마시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세로 밤을 지새웠다.

청승맞은 피리소리와 함께 다이가 등장했던 그 날도 그런 여러 날들 중의 하루였다.

어느덧 연주를 멈추고 카페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다이를 향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라온 아이들은 없었다.

“어서 와. 오늘 연주도 잘 들었어.”
“지혜. 어제 엄청난 일이 있었어.”
“이제 악보 안 보고도 ‘오나라 오나라’ 불 수 있는 거야?”

다이에게는 재미있는 일도, 신기한 일도 자주 일어났다. 일을 벌이고 다니는 성격이 아닐 뿐 아니라, 딱히 흥밋거리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는 오히려 '고독한 나그네'에 가까웠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그의 주변에는 괴짜들이 모였고, 괴짜들은 이 나그네를 신비한 모험의 세계로 이끌곤 했다. 오픈 준비로 종일 카페에 처박혀 있느라 모험은커녕 이웃 마을 구경도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다이가 물어다 주는 소식들은 언제나 새로웠다. 그리고 다이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잘 들어봐. 나 어젯밤 UFO를 봤어. 믿을 수 있니? 30분도 넘게 떠있었다니까. 제이미도 함께 봤어. 진짜 틀림없는 UFO 였어. 아… 정말 너희들이 그걸 봤어야 하는데."

다이는 마야력과 그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수첩을 늘 들고 다녔다. 그가 종말론자였던 것은 아니고 가끔씩 마야력을 뒤적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오늘의 운세 따위를 봐주곤 했다. 그가 정말 점성술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로 대충 흘려듣기에 도인 다이의 말은 너무 그럴싸했다. 다른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난쟁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도 들을라치면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모으고 쭈그리고 앉아 옛날이야기를 듣는 꼬마 아이들처럼 침을 꼴딱 삼키며 두 눈을 반짝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인이 급기야 UFO 목격담을 늘어놓고 있다. 세상에.

다이는 흥분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젯밤에 방 창문에 앉아서 피리를 불고 있었거든. 그런데 저쪽 산 꼭대기 언저리에 엄청 밝은 빛이 보이는 거야. 별 아니냐고? 위성 아니냐고? 아니야. 절대 아니었어. 물론 나도 처음에는 별이라고 생각했지. 위성이거나. 그런데 이게 글쎄 색깔을 바꾸는 거야. 처음에는 노란색이었는데, 파란색, 빨간색 막 색깔을 바꾸더라니까? 그때 제이미를 불렀어. 우리 둘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30분을 넘게 지켜봤는데, 위아래로, 양 옆으로 끊임없이 움직였어.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별똥별이 쏟아졌지. 유성우처럼 말이야. 진짜 굉장했어.”

나는 그의 UFO 목격담을 진지하게 듣고 난 후, 대답했다.

“굉장하다. 나도 보고 싶어. 죽기 전에 꼭. 나도 우주 어디엔가 그런 거 반드시 있다고 믿거든.”

그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다이가 봤다는 그 빛이 진짜 UFO에서 흘러나온 빛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과 가까운 라다크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밝은 빛을 내며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그 깊이마저도 느껴지는 은하수와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을 매일 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미적지근한 나의 대답에 다이가 덧붙인 이야기는 더욱 기가 막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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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 Ladakh, India, 2012

"외계의 존재들이 지구의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 있어. 아마 여기 라다크에서는 살구가 유명하니까, 분명 살구를 먹으러 왔을 거야."

“다이, 하지만 아직은 살구 수확철이 아니야. 지금의 살구는 엄청 신 맛이 날 걸?”

라다크는 척박한 고원의 사막이지만 새콤달콤하고 향긋한 살구의 산지로 유명했다. 살구나무가 지천에 널려있는데, 살구가 노랗게 익어 수확할 때가 되면 바닥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정말로 외계의 존재들이 단 맛을 좋아한다면 그들이 살구를 먹기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는 다이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들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라다크의 살구는 기똥차게 맛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제이미가 장바구니를 풀어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이 병아리콩으로 후무스 만들자. 내 생각엔 그냥 삶아 먹어도 정말 맛있을 것 같아. 다이! 후무스 만들 수 있지?”
“당연하지! 팔라펠도 만들어야겠다. 디저트로는 초콜릿 바나나 케이크를 구워야겠어.”

간밤의 일을 한바탕 쏟아부은 뒤, 다이는 흥얼거리며 부엌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외계의 존재와의 우연한 만남에 신이 난 것인지 그는 다른 때보다 더 해맑아 보였다.

“제이미, 어제 봤다는 거 말이야. 네가 생각하기에도 진짜 UFO였어?”
“그게 UFO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확실히 별이나 위성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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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 Ladakh, India, 2012

나는 후무스니 팔라펠이니 하는 낯선 이국의 음식들이 어떤 맛일까를 상상하며 창가에 앉아 해 지는 라다크의 하늘을 가만히 바라봤다. 창 밖의 하늘은 핑크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찌그러진 하얀 달빛 뒤에 조용히 숨어 있던 별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이 병아리콩을 물에 하룻밤 불려야 완벽한 후무스를 만들 수 있는데... 배 많이 고파? 마이 프렌즈?”
“다이, 오늘 안에 먹을 수 있게만 해줘.”
“오케이. 노 프라블럼.”

우리는 보통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는데, 나와 친구는 주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간단한 요리를 했다. 요리를 잘 하지 못해도 간과 양념 맛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비빔국수나 비빔밥 같은 것. 반면 다이와 제이미는 주로 원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요리를 했다. 그들은 인공조미료라면 질색을 해서 라면을 끓일 때는 면과 녹색 풀을 넣고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먹을 정도였다. 파스타를 만들 때는 토마토소스조차도 토마토를 갈아 직접 만들어 썼다. 그들의 차례가 되면 식사 준비에 두세 시간이 걸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다이가 나름 속성(?)으로 만들었다는 후무스와 팔라펠의 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때?”
“음. 콩 맛, 건강한 맛, 몸에 좋은 맛. 맛있어.”

다이가 만들어 낸 아랍 음식은 그 이름만큼이나 맛도 낯설었다.

“자, 배도 부르겠다 이제 스타 게이징 타임.”

우리는 아름다운 밤하늘에 시선을 던져둔 채로 말없이 창가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다이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다. 세계 10대 미스터리, 그러니까 버뮤다 삼각지대, 네스호에 사는 괴물, 히말라야의 설인, 나스카 평원의 그림과 같은 것들. 설명할 수 없는 일들. UFO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UFO의 비행 원리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한 만화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제자리 회전을 해야지만 그 정도의 크기와 무게를 가진 물체가 공중에 가만히 떠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그런 비행체를 만드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외계의 문명은 지구 인류의 문명보다 몇 백 년, 몇 천 년은 더 앞서 있을 것입니다.

다이가 보았다는 그 빛이 정말 UFO라면 30분 동안이나 제자리에 떠있기 위해 과연 몇 바퀴나 제자리에서 돌아야 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UFO가 회전하면서 만들어내는 바람 때문에 그 주변의 흙먼지는 모두 날아가버렸겠지.

지금부터 써내려 갈 이야기는 그날 밤을 시작으로 일어났던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몫이지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설명함에 있어서 조금의 거짓도 섞지 않음을 밝힌다. 당시에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아주 흥분해있었기 때문에 그 일들을 글로 옮기며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있었던 일 그 자체만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 역시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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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 Ladakh, India, 2012

#1 수상한 빛과 별똥별과 파이어볼

이쯤 되면 당신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다이와 제이미가 간밤에 목격했다는 정체불명의 빛이 다시 나타났다. 다이가 묘사했던 대로 색을 바꾸고,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는 그 빛은 카페 창 밖으로 보이는 흙산 위에 두번째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져 떠올라 있었다. 분명 별도, 위성도 아니었다. 흥분한 다이는 구워두었던 초콜릿 바나나 케이크를 가져와서 바닥에 내려놓더니 제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외치기 시작했다.

"지구에 온 걸 환영해! 여기 너희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케이크가 있으니, 카페 두레를 방문해줘! 우리는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다이는 갖고 있던 손전등을 꺼내 허공에 'WELCOME TO THE EARTH'라고 썼다. 나는 도대체 저 빛은 어디서 온 빛일까, 정말 UFO일까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다가도 빛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저들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엔 두 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진심으로 저들이 우리를 방문해주길 빌게 되었다. 북쪽 하늘 끝에서 남쪽 하늘 끝으로 기나긴 별똥별이 지나갔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검객이 어둠 속에서 검을 휘두를 때, 검의 날카로운 칼날이 그리는 자취처럼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이 수없이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려서 '별똥별이었다'는 느낌만 남게 되는 별똥별이 아니라, 그 움직임이 사진처럼 고스란히 눈에 담기는 그런 별똥별. 동그란 모양의 빨간색 빛이 회색의 긴 꼬리를 달고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마법사가 던지는 파이어볼 같았다.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파이어볼'에서는 하나같이 웃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파이어볼'이 아닌 다른 표현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런 김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그것은 분명 '파이어볼'이었다.

#2 사라진 머핀 한 개

보고 있으면서도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내가 속한 세계를 다시 확인해야 했던, 그 황홀했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오후, 건물 주인 타비따에게 전화가 왔다.

"굿모닝, 지혜! 교회에 가져가서 사람들 나누어 주려고 하는데 바나나 머핀 열 개만 구워줄래? 내일 아침 일찍 찾으러 갈게!"

라다크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낮에는 대체로 정전 상태였고, 여섯 시 넘어 동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화력 발전소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그제야 전기가 들어왔다. 갑자기 정전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봉긋하게 솟아오르다가 푹 꺼져버린 머핀을 처리하느라 고역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머핀은 언제나 저녁에 구워두었다. 여느 때처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간밤의 해프닝에 대해 우주니 에너지니 하며 떠들어대고 있는 사이 나는 부엌에서 머핀을 구웠고, 예쁘게 구워진 머핀 열 개를 상자에 담아 부엌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밤이었다. 조용하고 평온한 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던 친구가 하얗게 질린 채로 "지혜야. 왜 머핀이 아홉 개뿐이야?"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엌으로 가서 확인하니 가장자리에 있던 머핀 한 개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장난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친구를 다그쳤지만 그럴수록 친구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우리가 앉아있었던 창가에서는 카페로 올라오는 계단이 내려다 보일 뿐만 아니라 발자국 소리까지 들리기 때문에 누군가 몰래 훔쳐갔을 가능성은 없었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 상자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 한 조각만 쏙 빼갔다는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아홉 개의 머핀만이 담겨있는 상자를 가운데 두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다이였다.

"어제 걔네들이 와서 가져갔나 보다."
"누구?"
"외계의 존재들. 우리가 어제 초대했잖아."
"다이. 그런 말하지 마. 무섭단 말이야."

무서워하는 우리를 나무라듯 다이가 말했다.

"우리가 초대해서 와주었는데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 고마워해야지. 머핀도 딱 하나만 가져갔어. 매너 있는 애들이야. 마음에 들어."

머핀 한 개가 분명 감쪽같이 사라졌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미스터리.

나는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의 방문을.

#3 GIVE and TAKE

'사라진 머핀 사건' 이후, 나는 그들이 꼭 다시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인간과 우주'라는 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외계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당황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말고, 인사를 건네세요. 만나서 반갑다고 말이에요."

그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나는 정말로 당황하지 않고, 물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고, 그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다크에서 만났으니까 라다크 말로 '줄레'라고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맛을 좋아하는 그들을 위해서 살구 머핀도 굽고, 초콜릿 머핀도 구웠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카페 두레를 찾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고, 다이가 한창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던 이른 저녁이었다.

"지혜! 바질이랑 오레가노 어디 있어?"
"오레가노 거의 안 남았을 텐데... 어디 있었더라."

분명 며칠 전 한 뼘 정도의 작은 크기에 4분의 1 가량만이 남아있었던 오레가노 통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누가 오레가노 새로 사다 놨어?"

물론 오레가노를 사다 둔 사람은 없었다.

"머핀 잘 먹었다고 답례로 오레가노 주고 간 것이 아닐까?"
"기브 앤 테이크. 역시 매너가 있는 애들이야."

머핀을 주고, 오레가노를 받았다. 그들은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아주었고, 고마움의 표시까지 남기고 갔다.


다이와 제이미가 라다크를 떠나던 날, 그들을 버스에 태워보내며 나와 친구는 눈이 퉁퉁 부어 뜰 수 없을 정도로 하염없이 울었다. 다이와 제이미가 없는 카페 두레는 한동안 쓸쓸했고, 우리는 잠깐 외로웠지만 그들의 자리는 다른 이들이 곧 채웠다.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집에 있던 플루트를 전해 받았다. 10년 넘게 손도 대지 않았는데 라다크에서 나는 매일매일 플루트를 불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기타를 쳤다. 매일매일 굽는 카페 두레의 머핀은 누군가의 생일파티 케이크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떠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되기도 했다.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내가 라다크에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며 끝까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름의 시작,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던 그때의 나에게 거짓말처럼 나타났던 그들 말이다.


다른 공간에 이미 풀어놓은 이야기지만, 제가 살면서 경험한 많은 일들 중에 가장 아끼는 것이라서 스팀잇에 풀어봅니다. :-D
주변인들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반응이 대체로 '어. 그래 ^^' 거든요. 후후.
진짜로 걔네들이 제가 만든 머핀을 가져갔다니까요? 아... 정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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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팔로우 하겠습니다 ^^
스팀잇 가입과 알아 두셔야 할점들 간단하게^^
일단 1.팔로우먼저50-100명한다2.그리고 글을쓴다(이전에 글 써봐야 잘 노출이 안된다)3.보팅은하루에10~15 회정도만보팅 80%유지 4.다른사람 보팅 할때는 30분이상 지난 글에 보팅을 한다( 바로하면 보팅수익없음)5.제목 오른쪽에 온천 표시 안 나오도록, 1스팀이 1USD 이상일 때 보상은 50:50으로 설정6.댓글소통을 많이하라 스팀잇을누벼라~!!

짱짱맨 홍보요원 입니다.
@morning 님 께서 지원주신 SP의 힘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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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5번 팁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잘생겼다, 짱짱맨!

제가 스파가약해서 스파를 임대받앗거든요
그랫더니 활동에 제약이 줄어들었어요다운로드.jpeg

외계인과 최초로 물물교환한 지구인으로 기록에 남으시겠군요. 부럽습니다😂

아아. 믿어주시는 건가요!? 열중 일곱은 '그 일본애가 먹은 거 아냐?'라고 반응했거든요.
걔들이 지구의 단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kimthewriter 님도 외계인과의 조우를 원하신다면 한 번 시도해보세요! :-)

주머니에 초코바 하나씩 넣어둬야겠네요 :D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 생각도 해두시고요!

짱짱맨 태그에 답이 늦어지고 있네요^^
즐거운 스티밋!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오늘 봐도, 내일 봐도 언제나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

라다크라는 지명 이름이 참 좋습니다. 저도 인연이 닿으면 가고 싶은 곳이지요. 인도의 오로빌하고요. 혹시 라다크 도깨비가 다녀갔던건 아닐까요? 이젠 도깨비도 있을자리가점점 없어지니까요.

안녕하세요, 피터님! 세상에나! 제가 쓴 모든 글을 읽어주시고 모든 글에 댓글까지 다 남겨주시다니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하나하나 따라가며 댓글 남기려고요! :-) 라다크는 제가 정말 정말 너무 사랑하는 곳이에요. 2007년에 처음 갔는데, 가자마자 제가 전생에 라다크 사람이었다고 확신하게 되더라고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강렬한 느낌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만든 머핀 가져갔던 존재는, 외계인일 수도, 라다크 도깨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라다크에 크나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roundyround님의 글을 처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네요. 4달이나 되었는데 왜 이제 알았을까요. 흑흑. 보상이 지난글이니 보팅은 최신글에다가 하는걸로 하고. 반갑습니다.. 팔로우 하고 가요.

테리님! 저 아까 이 댓글 읽고 제가 아는 '테리'인 줄 알고 진짜 까암짝 놀랐어요. 제가 아는 다른 테리도, 라다크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여행자였거든요! 이런 우연이!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최근에 라다크 관련 포스팅을 하신 것을 보고 더욱 반가웠어요. :-) 게다가 지금 포카라에 계시다니! 소비따네 김치찌개는 아직 있나요? :-) 반짝반짝 마차푸추레도 보여주셔요! 소식 기다릴게요! :-)

한열님 글에서 라라님의 인도 카페 문구를 보고 혹시 글이 있을까하여 기웃거리며 들어왔는데 으아.. 서정적인 다큐 한편 본 느낌이 드는건....! :- )

피리부는 다이상 뒤에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부분이나...
칼날이 그리는 자취처럼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이... 라는 부분...!!

아.. 이 포스트 혹시 책으로 발간됐나요?!

이 포스트는 아니지만 라다크 이야기를 책으로 쓰긴 했지요! 부끄러워서 밝히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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