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근황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차에서 내린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의 생존은 올라온 기사로만 확인된다. 오늘은 오후 3시 30분 현재 4꼭지다. 대략 2시간 간격으로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3시 28분까지 아내가 살아 있었다는 걸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지난주엔 수목금 3일 동안 28꼭지를 썼다.
회사여 저녁마다 눈이 푹 꺼진 좀비를 보내지 말고 내 아내 A씨를 돌려 달라.
아시는 분은 아실텐데, 우린 기자 부부다. 아내는 좀 더 업무강도가 높고 월급이 좀 더 나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가는 출입처마다 역대급의 사건이 터지는 유명한 '출입처 파괴자'로 알려져 있다. 아내는 웹툰 작가 주호민보다 먼저 '파괴왕'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A파산'이라는 별명도 들어 봤다. 최근 나와 아내의 이야기를 조금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바, 아내가 겪었던 역대급 사건들은 차차 포스팅할 계획이다.
그런데 만약 아내에게 일거리를 점지해 주는 '노(勞)신할매'가 있다면, 그가 나한테 옮겨 붙었거나 새끼를 깐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아내를 만나기 전과 연애 초기엔 대체로 사건사고를 피해다녀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편집부 막내 시절 천안함이 침몰했다. 선배들은 퇴근 중에 회사로 복귀했지만 수습을 갓 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동기들은 현장에 투입돼 르포를 쏟아냈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동기 하나가 현장에 특파됐다. 편집부에서 최소 국제면이라도 맡았으면 그와 관련된 일을 했을 텐데 지방면을 짜는 초짜는 지켜봐야만 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 일등신문 편집부장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이를 내세우며 편집국장과 딜을 한 지, 약 1년 뒤인 4년차 때 드디어 취재 부서로 나왔지만, 박박 기는 경찰팀에서 보냈던 기간은 특별한 이슈가 없었던 평화로운 기간이었다. 경찰팀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방출돼 국제부 내근직으로 들어오자 세월호가 침몰했다. 선후배, 동료들이 역사상 유래없는 참사 현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일하는데 나는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TV만 봐야 했다.
아내와 연애가 1년을 넘어설 무렵, 경찰팀 부팀장 격으로 발령이 나 1년을 일했다. 이 때부터 아내의 노신할매가 나를 슬쩍슬쩍 넘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전반기엔 네팔 대지진 현장에 파견됐다. 회사 규모 상 홀홀단신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후반기엔 설상가상 팀장이 바뀌었는데, 영구박제를 감안해 설상가상이었다는 말만 한 번 더하겠다. 메르스와 민중총궐기 연속 시위가 있었다.
경찰팀을 나와서 바로 정치부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총선을 치르고 다음해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났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탄핵안을 가결시키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자르는 걸 목도했다. 역사상 최초의 조기대선도 치렀다. 대선 뒤엔 청와대에 팔려갔다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를 전담했다.
대선 뒤 새로 온 정치부 차장이자 국회팀장과 너무 안 맞아서(여기서도 이 정도로만 표현한다) 편집국장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차장과 맞지 않고, 이제는 정치 사회가 아닌 긴장도가 좀 덜한 부서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게 요지였다. 국장이 나를 보낸 곳은 이곳 산업부다.
산업부에 와서 삼성, LG 그룹 등을 맡게 되자, 구속됐던 부회장이 풀려났다. 정부와 언론은 삼성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네이버 댓글, 공감수 조작 사건이 불거졌다. 네이버도 내 담당이다. 어느새 내게도 노신할매의 기운이 완연했다.
포스팅 맨 위와 같이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아내 글을 썼다. 물론 아내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은 노신할매도 질세라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주 노신할매가 내게 옮겨 붙은 것 같았다. 부장의 필생의 역작이라는 대형 기획을 준비하고 있는데 네이버가 실적발표를 하더니 갑자기 댓글, 뉴스 정책 개선안을 발표했다. ICT와 가전에 관한 고정면 메인 순번이 돌아왔다. 몇 주 간 밀려서 이제 신선하지도 않은 주말자 기획이 갑자기 부활했다.
지난 수요일에 네이버가 뉴스정책을 발표해서 역삼동에 갔다가 바로 회사 내야근을 들어가 ICT면을 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자잘한 광고국 민원기사까지 내게 떨어졌다. 목요일 오전엔 ICT 메인 기사 12매(200자 원고지 기준)를 출고했는데 팀장이 외조부상을 당해 그날 기사를 혼자 다 썼다. 카카오 1분기 영업이익 급감(5매+표), 엔씨는 리니지M 대박으로 영업익 570% 증가(4매+표), SKB 2.5기가 인터넷 첫 상용화(5매+그래픽) 등 3꼭지를 혼자 막고 금요일 오전까지 출고해야 하는 주말자 17매짜리를 쓰기 시작했다.
금요일엔 보통 일이 없는데 그날따라 다음도 모바일 첫 화면을 바꿔서 6매를 썼다. 물론 오전엔 주말자를 마무리했다. 주말자도, 다음 기사도 출입처에 조금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저녁 내내 홍보맨들 전화가 왔다. 금요일에 혼자 일했으니 일요일엔 쉬는 건줄 알았는데 또 혼자 일했다.
이것은 넋두리나 엄살이 아니다. 지난주 포스팅을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일 뿐.
저는 출퇴근 하는 시간 1시간 짬짬히 글을 완성시켰더라지요.
참 빡쎄더라고요. 일이 편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인정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네요.
가즈아
스팀 10만원 가즈아
변명도 자주 해주셈! 시호님은 변명도 재미나니깐 ㅎㅎㅎ 풀봇으로 환영해요.
ㅋㅋㅋㅋ 옴메 고맙습니닷
엄청 바쁘셨던것이 느껴 지십니다.
계속사건 사고들이 많다보니 매우 바쁘신가 봅니다.
흥미롭습니다. 고생이 많아요 기자분들.
단조로운 삶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한달만 단조로워 보고 싶다는 ㅋㅋㅋ
바쁘게 사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안 바쁘게 살고 싶습니다 ㅋㅋㅋㅋㅋ
글을 굉장히 잘 쓰신다고 새악했는데 기자셨네요^^
부부가 기자시라면 서로 공개안하는 기사꺼리도 있겠어요.^^
서로 물먹이는 일이 없도록 다른 분야를 맡고 있지요 ㅋㅋ
부부 두분이 모두 실력파이시군요 ^,.^
업종을 불문하고 실력파에게 일이 몰리는것은
어쩔수 없는 현상인가 봅니다 ㅠㅠ 고생많으셨습니다 ㅎ
음 어떤 조직은 실력보다는 만만한 사람에게 일을 몰아줍니다 ㅋㅋㅋ
이거 멋진 아내분 자랑인거죠
두분다 멋진게 바쁘게 사시네요 ㅎㅎ
넋두리면 어떤가요! ㅎㅎ 글 자주 올려주세요^^
아내분께서 파괴왕이라니...ㅎㅎ 뭔가 포스가 느껴지는데요~
나중에 파괴왕의 역사를 써 보겠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노신할매의 기운이 제 스팀잇에 올까봐 차마 리스팀은 못하고 ㅋㅋㅋㅋㅋㅋ 보팅하고 갑니다.
서운합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