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Quantity of Light, 광량
Seoul, Apr. 2018, Nexus 5x
나는 야간 산책을 참 좋아한다. 빛이 모든 것을 고루 비추는 낮에 비해서, 선택적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의 빛이 자연의 영역이라면, 밤의 빛은 인간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별과 달, 별똥별, 가끔 새벽이나 초저녁에 보이는 행성들을 제외하면, 도시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빛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시골에서는 반딧불이 같은게 있겠지만.)
우리가 시신경으로 인식하는 빛과 스마트폰 렌즈가 인식하는 빛의 성질이 항상 같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강렬한 느낌의 색깔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칼라 사진을 흑백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RGB 기준으로 각 색상의 강도(intensity)를 1:1:1의 비율로 평균내서 섞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공식은 여기를 참조하자. 녹색의 색상이 생각보다 많이 섞인다.) 우리의 시각은 선택적이고, 빛의 색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야간의 광경을 담다보면, 광량의 부족에 시달릴 때가 있다. 애초에 빛이 많은 환경이 아닌 경우에는, 스마트폰은 보통 조리개를 넓히곤 하는데 - 왜냐하면 애초에 조리개가 작기 때문에 넓힌다고 해서 초점이 매우 어그러지는 것은 아니다 - 그래도 해결이 불가능하면 어쩔 수 없이 셔터스피드를 늘린다. 센서에 충분한 수의 광자를 닿게 하기 위해, 노출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삼각대 같은 것을 쓰지 않는 한, 사진의 렌즈 또한 흔들려서 약간은 뭉개진 사진이 나오곤 한다. 그래서 야간 사진을 찍을 때엔 어디를 기준으로 측광을 해야하나, 그래서 괜찮은 사진이 나올 정도로 셔터를 여러번 눌러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한다. 시야에서 빛이 나오는 어딘가를 선택하고 그 어딘가가 사진 전체로 보았을 때, 균형적인 지점이라는 것을 확신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들 쓰는 표현 중에, 사회의 '명암'이라는 것이 있다. 당연히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나타내는 용어일 것이다. 이 때 밝은 면은 긍정적인 것으로, 어두운 면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밝음과 어두움은 가치와 결부되기에 앞서서, 사회의 어떤 부분에 집중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빛이 그만큼 충분했는가의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다. 어두움은 아직 그다지 조명되지 못한 것들, 밝음은 이미 많이 조명되어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 사회의 요소들은 이러한 밝음과 어두움 사이에서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충분한 빛이 센서에 닿을 수 있는가, 닿아서 명확한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거창한 사회의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고서,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나의 삶, 그리고 내 주위 삶에 있어서 충분한 광량을 가지고 살펴보았냐고 되물어본다면, 항상 최선을 다하였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다. 빛이 그정도 있기에, 그정도의 빛 만큼을 인식하였을 뿐이지, 내가 직접 그러한 광량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잘 해왔냐고 하면,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 것은 정말로 사소한 관심, 사소한 안부, 사소한 만남 같은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인데 말이다. 우리는 선예도가 좋은 깔끔한 사진을 좋아하지만, 아예 사진에 드러나지 않는 것과, 셔터스피드가 길어 약간의 뭉개짐이 발생하는 것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후자이지 않을까. 찬찬히 살펴보는 것, 자세히 관찰하는 것, 그것들은 사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살펴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광량을 반영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충분한 광량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 기대하는 것. 눈을 감지 않는 것.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찬찬히 둘러본다.
빛이 부족하지 않은지 유심히 살펴보면서.
태초의 빛이 존재와 존재의 마주함과 부딪힘으로 이루어졌다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글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닿아서 다행입니다. :)
충분한 광량으로 삶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네요.
우선 그러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글 잘 봤습니다~^^
네. 사실은 충분한 광량이 확보될 만큼 우리가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러한 기회들이 부여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명부를 터치하면 암부는 더 어두워지고, 암부를 터치하면 명부는 날아가서 못 알아볼 지경이 되죠. 적정 노출을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물론 핸드폰 사진 얘깁니다. ㅎㅎ
맞습니다. 적절한 노출이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가모든 사물들을 '대비/대조'에 의해 파악하는지도 모릅니다. 대비와 대조가 없다면 경계가 뭉뜽그려져서 아무래도 어떠한 형체의 존재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겠지요. 물론 역시 핸드폰 이야기입니다. :)
선택적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참 공감합니다.
낮에는 어쩌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보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나지요.
그 매력 때문에 저는 밤을 좋아합니다. :)
밤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조리개를 넓히고 셔터스피드를 늘려야 하듯, 우리 삶에서도 노력과 기다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러한 의미에서 밤을 좋아합니다. 밤에는 오롯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존재를 파악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노력과 기다림이 결국 명암을 가르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밤을 반짝이게 하듯이 말이지요. 좋은 시선 감사드립니다.
정말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닿아서 고맙습니다.
명암에 대해 말씀하시니
저는 그림자가 떠오릅니다
그림자는 어둠에 가깝지만 빛이 없으면
실현되지 않는 어둠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해서요
저도 빛과 어둠의 '관계'적인 측면을 참 좋아합니다. 가장 멀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니, 정말로 기묘한 일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부족하게 혹은 뭉게지면서 숨겨져있다가 혹은 드러나기도 하면서 충분하고 적절한 빛을 비출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게 우리의 일상이 되면 좋겠네요 :)
이 관점에 매우 동의합니다. 제가 말하고싶은 것을, 굵고 강하게 짚어주셨네요. :)
적은 광량을 극복하기 위해 셔터스피드를 길게 해야 할 때 숨조차 쉬지 못하고 맥박도 약해지게 온 몸에 힘을 빼죠. 그냥 사진 찍을 순간의 해프닝 정도로만 생각을 그쳤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것, 누군가를 느끼는 것에 닿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야간 사진은 안 찍으려고 하는데(찍어도 쓸 수 없을 정도인 경우가 많아서...) @qrwerq님 사진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나오나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도 스마트폰 야간 사진은 참 어렵습니다. 가급적 광량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거나, 부족한 광량대로 - 셔터가 열리는 순간을 짧게 하게끔 하고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시선들은 결국 빛을 주고 받는 것이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빛이 필요하고 반사된 빛을 다시 보게되는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빛은 한정적이라서, 이러한 광량을 얼마만큼 조절해야할지,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게 주지 않을 지 걱정을 하곤 하지만요.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세심해서, 광자(photon) 10개정도면 충분히 인식이 가능할 겁니다. 물론 광자 10개의 색 마저도, 애초에 비추지 않는다면, 드러나진 않겠지요.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세심할 수 있는데 결국은 생각, 즉 마음이 문제겠지요. 볼려고 노력하고 그 작은 광량 받아들이려 민감하게 기울이는 마음요. 적은 광량에서의 야간 사진을 찍어 내는 것도 결국 스마트폰의 한계도 있지만 마음에 달린 것이라 생각이 되기도 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사진 앱 설정 부분도 만져보고 찍기위한 노력을 해봐야겠어요. 한번도 설정을 따로 건드려 보지 않고 그냥 촬영 버튼만 눌러보곤 '어, 안되네' 하고 말아버렸던 거 같아요. ^^;;;
광자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기에 광자 10개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옵니다만, 아예 없지 않은 이상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군요.
이 말씀이 정확합니다. 광자 10개는 아주 미약한 신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0^23 정도 되는 아보가드로수에 비하면, 정말로 미약한 정도이지요.
지혜를 빛이라고도 표현하지요. 心光明이라고 불교 수행자들은 말하더라구요. 광량의 비유를 들어서 기가 막히게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아. 그러한 관점이 있었군요. 부족한 제 글에 좋은 주해를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心光明이라는 단어를 마음 한 켠에 두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