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22. <신과 함께 : 인과 연> 이름값을 하는 속편

in #kr6 years ago (edited)

1.jpg
Feelroom.22(film)


<신과 함께 : 인과 연>, 이름값을 하는 속편


*본 글은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리뷰를 선행해서 보아도 무방합니다.


2.jpg

"이번엔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 다음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 (2018)

1. 이름값을 하는 시나리오


실망이 컸기 때문일까. 전편과 달리 속편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확실히 단단히 벼르고 나온 느낌이다. 전편에서 문제 됐었던 조악한 인과관계와 신파에 기댄 허술한 철학, 그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허접한 현실 묘사는 상당 부분 해소 됐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점들이 몇몇 보이기는 하지만, 크게 관람에 방해될 수준은 아니다.

먼저 이번 작품에서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시나리오의 힘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을 재구성하고 재구성된 부분에 영화 역량을 집중하는 기술이다.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전작과 똑같이 플래시백(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에서 사건을 시작하는 방식) 기법으로 서사를 이끌어 간다. 전작의 플래시백은 진행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부연에 불과한 느낌을 준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담은 퍼즐 조각이 되었다.

어떤 시나리오든, 정보통제는 중요한 요소다. 부동자세로 두 시간 남짓 앉게 될 관객에게 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압도적인 미학이 담겨있거나, 뒷내용이 궁금해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거다. 정보통제가 과하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허술하면 핵심이 금방 탄로나 남은 부분이 뜸들이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 플래시백을 이용한 정보통제는 적절했다. 시네필들이라면 익숙한 패턴에 금세 뒷이야기들을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눈치를 챘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손상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탄로 나더라도 ‘정녕 그렇게 되는 것인가’ 라는 긴장이 자리 잡는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진실들처럼, <신과 함께 : 인과 연>의 진실도 관객들 스스로가 덮어버리고 싶은 진실이다. <HER.>(2013)나 <남한산성>(2017)에서 묘사된 것처럼, 알면서도 접근하는 ‘불편한 진실’ 말이다. 불편한 진실은 자꾸만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핵심을 미리 알아채든 알아채지 못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진실은 이조차도 반전시켜버리니까.

단단한 시나리오의 흐름을 타고 작품이 전달하려는 주제의식도 깔끔하게 전달된다. 전작에서 지옥은 ‘그냥 그런 세계가 있나보다’ 한 것에 지나지 않고, 죄와 벌에 관한 철학적 논고가 없어 지옥의 의미가 유야무야 흘러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지옥의 존재 이유와 그 ‘참된 의미’가 비로소 드러난다. 진짜 지옥은 무엇인가. 우리가 상상하던 세계? 불과 화염이 뛰놀고 인면어가 영원히 살점을 뜯어먹는 그런 세계인가? 이번 작품에선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준다. 가장 지독한 지옥과 그 속의 감옥. 인간의 양면성과 그럼에도 부정한 내면이 이끄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 그리고 죄악을 다루는 지옥의 본모습은 전작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사유의 화음을 만들어낸다.


3.jpg

조금씩 '불편한 진실'을 알아가는 원맥과 덕춘. *사진 : 다음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 (2018)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들처럼,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부정을 목격하고 오염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겪는 문제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빚어내는 것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의 죄악처럼 ‘인연’ 또한 끈질기게 영겁의 세월을 윤회하며 떠돈다. 결국 영겁에 걸친 이 죄악은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인 것인가? <신과 함께 : 인과 연>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성주신(마동석)의 대답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계에 작지만 강한 희망을 낳는다. 나쁜 상황은 인위적인 것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 걷어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실로 그렇다. 모두에게 완벽한 선의로 다가갈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나가도, 교회를 싫어하는 누군가에겐 꼴보기 싫은 일이 될 수 있다. 구청 직원이 그 스스로는 재개발 단지 철거를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해서 직장을 잃게 되는 등의 여파로 가족들의 생계가 위험해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곤 할 수 없다. 적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개인의 양심으로는 가능하지만 국가와 가족에게 해가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안중근 의사가 자국의 범죄 행위를 참회하던 간수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말을 전달한 것도 같은 이치다.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성주신의 에피소드가 결국 서사의 핵심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이 사유는 영화가 최종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막연한 믿음이 아닌 ‘이해’를 구한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꽤나 믿음직스럽다. 단점들이 있다곤 해도, 확실히 이 작품은 전작은 압도적으로 뛰어넘었다.


79d44d9f4c3ac65e45617b3cacfe124edd9906fd.jpg

수홍은 그래도 튄다. *사진 : 다음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 (2018)

2. 짚고 넘어가야할 것들


꽤 괜찮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우선 배우들의 활용이 아쉽다. 필자가 전작에서 “말하는 기계”로 표현했던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나아졌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나아졌다기보다, 비로소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봐야겠다. 확실히 삼차사로 등장하는 강림(하정우), 하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의 활용은 제대로 포지션을 찾고 연신 골을 터트리는 프로 축구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설명이 과한 성주신과 캐릭터를 100% 소화하지 못하는 수홍(김동욱)의 모습은 아쉽다. 특히 이 둘은 서사의 진행을 돕는 산파 역할을 하는 캐릭터인데, 수홍의 환생을 포기하려는 의지, 그로 인한 강림과의 대립이 너무 조악하게 연결된 나머지 캐릭터의 연기도 통통 튀며 오락가락한다. 아마 이 작품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첫째는 수홍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지옥묘사가 서사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수홍이 귀인인가 아닌가 하는 논전을 벌일 수 있음에도, 최종적으로 살인지옥에서 강림의 변호가 탁월하게 빛나는 것 말고는 다른 지옥에서 여전히 재판관은 허수아비 같고, '다음으로 넘긴다'는 식으로 여전히 지옥을 활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불의지옥에서 설전이 오가기는 하지만 크게 사유할만한 것은 못된다. 이 작품이 지옥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와 '궁극의 지옥'을 보여주기는 하나, 지옥은 여전히 배경에 그친다.


4.jpg

성주신이 등장하는 현실 에피소드도 계속 파열음을 내긴 마찬가지. *사진 : 다음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 (2018)

그런가하면 이 영화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재개발 현장에서 살아가는 서민들과 이를 둘러싼 탐욕을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사실 영화 전체로 본다면 붕 뜨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현실의 에피소드를 가져오려면 되도록 삼차사의 이야기와 접점이 많은 사건을 들고 오는 게 좋다. 현실은 터전을 잃을 위기의 힘없는 할아버지와 손자 이야기인데, 저승의 플래시백은 고아와 이를 둘러싼 이들의 갈등을 그린다. 유사하긴 하지만 크게 접점이 없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설령 어떤 전략에 의해서 이렇게 서사를 짰다고 하더라도, 성주신의 에피소드에서 이들이 겪는 고통은 전달하려는 현실에 비해 그렇게 세밀하진 못하다. 실제로 재개발 현장에서 추진 업체와 지역주민들이 겪는 주요한 갈등 중 하나는, 업체가 재개발 주민들의 낮은 생활수준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때로 재개발 단지의 건설사들은 당사자들의 어려운 형편을 이용해서 누가봐도 손해인 불리한 계약을 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단지 폭력배들이 와서 괴롭히고, 오랫동안 정든 터전을 떠나야한다는 것에 그친다. 심지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 제3자인 성주신이 사채를 끌어 쓴다는 설정은 큰 무리수다. 진정 돕고자하는 이가 사채까지 끌어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겠는가? 그것도 무려 3억씩이나 말이다. 차라리 분양권을 담보로 돈을 투자했다가 모조리 날리게 됐다는 설정이면 더 나을 뻔했다. 그래서 어떤 부당함이나 불합리함에 동조하려고해도 김이 샌다.

그렇다고 해결방식이 그렇게 맘에 드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한탕주의’가 아닌가. 어떤 투자든 투자란 때에 따라 누군가의 손실을 담보로 나의 이익을 챙기게 만든다. 그런데 현실 에피소드에 놓인 이들이 타인의 손해를 담보로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추구하는 주제와 핀트를 어긋나게 만든다. 결국 전작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밀하지 못함은 김용화 감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봐야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사두용미’ 일지언정 ‘사두사미’로 끝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다만 그의 다음 작품에선 ‘용두용미’를 볼 수 있길.


*지나간 필룸(최근 3편)

필룸 21. <인크레더블 2>, 변화한 시대 속의 영웅들
필룸 20. <컨택트>,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필룸 19. <마녀>, 번잡하게 뭉뚱그렸다

Sort:  

기대보담 즐겁게 봣던 영화였습니다

저도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지 꽤 괜찮았어요 :)

리뷰 퀄리티가 대단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는 훌륭하지만 영화화 함에 있어서 욕심이 좀 과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삭제할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편집도 좀 더 속도감있게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네요

수홍의 캐릭터 역시 불우한 유년기를 밝은 모습으로 감추려는 캐릭터를 좀 더 잘 살리려면 어두운 부분에서 좀 더 어두워질 필요가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구요.

다큐도 아니고 나레이션이 너무 많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네요.

그래도 말씀대로 이름값은 충분히 해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리뷰 기대하겠습니다^0^

저도 시나리오의 힘은 꽤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블로그에선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좋진 않더라구요. 그런데 어딜가도 대체로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이 수홍과 성주신이 등장하는 현실 에피소드 더군요. ㅎㅎ 마동석의 연기나 해학으로 풀어내는 솜씨는 좋지만 그 에피소드 자체는 큰 걸림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두용미로 이름값은 했으니 다행이지요

앞으로도 기대작은 되도록 보고 계속 리뷰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멋진 영화 비평 잘 읽고 갑니다~ ㅋ 가즈앗!!

감사합니다 조선생님 :) 가즈앗~

신과함께 정말 멋진영화입니다.

제 개인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1편은 방콕에서 봤는데 2편도 기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속작이 더 낫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개털님 :)

잘 지내셨죠? ㅎㅎ

수홍의 연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저와 같군요.... ㅋㅋ 아마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 같네요

좀 격하게 말하면 보기 힘들었습니다 연기를 못 했다기보다는 캐릭터 세팅이 잘못된듯

반갑습니다 풍류님 :)

저는 수홍은 1편부터 2편까지 영화를 망친 주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연기도 연기지만 캐릭터나 설정이 영화를 지리멸렬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그나마 이번 편은 낫지만... 기회가 된다면 주호민씨의 만화도 대강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4
TRX 0.12
JST 0.025
BTC 52438.26
ETH 2303.72
USDT 1.00
SBD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