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21. <인크레더블 2>, 변화한 시대 속의 영웅들

in kr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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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room.21(film)


<인크레더블 2>, 변화한 시대 속의 영웅들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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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redible 의 'i'를 표현하는 슈퍼 슈트. *사진 : 다음 영화, <인크레더블 2> (2018)

1. 변화한 시대 속 영웅의 기준


영웅들은 달리 ‘변신’ 따위를 하지 않아도 모습 그대로 영웅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웅물의 영웅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잔뜩 뽐낸 슈트를 입는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단순히 옷을 갈아입은 수준에서, ‘엑스맨’과 ‘헐크’ 같은 신체의 강화, 혹은 ‘아이언 맨’처럼 하이테크 슈트로 무장한 경우까지, 영웅은 그들만의 ‘전투복’을 입었을 때 진면모를 발휘한다. 이는 <인크레더블> 역시 마찬가지다. ‘일라스티걸(홀리 헌터)’과 ‘미스터 인크레더블(크레이그 T. 넬슨)’, 그리고 그들의 귀여운 자녀들까지 ‘슈퍼 슈트’를 입었을 때라야 영웅의 모습이 된다.

영웅이 자신의 외피를 걸침으로써 영웅이 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영웅은 영웅이 아니게 되는 건가? 앞서 언급했던 영웅들 대부분은 굳이 슈트를 입지 않아도 자신들의 능력을 쓸 수 있다. 물론 슈트가 영웅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어떤 보조를 해주기도 하지만, 영웅들은 항상 자신의 ‘옷’을 입었을 때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

여기서 영웅들이 자신만의 옷을 걸친다는 건 단순한 능력 문제가 아니다. 영웅들이 사용하는 무력은 대부분 위험하다. 정의를 위해 사용해서 다행이지, 악의를 가지고 사용한다면 누구나 꺼릴 능력들이다. 그러므로 영웅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슈트를 통해서 대중의 허락을 구한다. 영웅들의 겉모습이 화려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하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웅들의 슈트엔 항상 자신의 심볼이 있기 마련이다. 슈퍼맨은 가슴에 커다란 ‘S’자를 새기고, 배트맨은 이름그대로 박쥐 형태의 날개를 사용한다.

영웅이 화려하게 악당을 처치하는 데는 그 능력 이상으로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넘쳐나는 악당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골머리가 아픈데, 민심까지 신경써야하다니. <인크레더블 2>는 기존 영웅물들이 ‘으쌰으쌰’하며 열심히 세상을 구하는 일에 방점을 둔것과 다르게, 런 타임 내내 세상과 영웅의 교묘한 줄다리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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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숨어지내는 모텔에서 갈등을 폭발 시키는 헬렌과 밥 *사진 : 다음 영화, <인크레더블 2> (2018)

영웅이 금지된 세계에서 <인크레더블 2> 속 영웅들은 ‘위법’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갈 위기를 겪지만,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호의적인 개인에 의해 풀려난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 가족에서, 졸지에 언제 모텔에서 쫓겨날지 모르게 된 인크레더블 가족은 모텔에서 신랄한 자기갈등을 겪는다.

무법자들이 판을 치는데도 이를 저지할 수 없는 법을 지켜야 하는가, 혹은 비록 무법자들이지만 이들을 응징하는 과정도 위법이니 법을 준수해야만 한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최후를 앞두고 그의 제자들과 설전을 벌이는 듯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토론이 대의의 영역을 관통하지만 개인들의 입장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밥은 ‘미스터 인크레더블’로서 바른 일에 쓸 수 있는 훌륭한 힘을 가지고도 쓰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낭비라는 입장이지만, 헬렌으로서 ‘일라스티걸’은 개인의 삶조차 유지할 수 없으면서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보여준다.

사실 이 같은 사유는 <인크레더블 2>만이 꺼내놓은 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2016)에서도 묘사된 내용이고, <다크 나이트>시리즈에서도 영웅을 향한 대중의 반응 그리고 ‘영웅이 영웅이 아니게 되었을 때’를 묘사한다. 다만 후술한 두 작품이 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철학적 논의를 거쳤다면, <인크레더블 2>는 헬렌의 시선으로 이들보다 더 세세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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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세상 속에서 영웅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자질은 '유연함'이다. *사진 : 다음 영화, <인크레더블 2> (2018)

“골방 철학만으론 세상을 지켜낼 수 없어!”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역시 일라스티걸 헬렌이다. 헬렌은 성역할 관념의 반전을 꾀하기도 하지만, 기존 영웅 서사가 고지식하고 신념으로 똘똘 뭉친 영웅들의 의지로 뭉쳐있다면 이 작품에서 헬렌은 영웅이면서도 적절한 타협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성역할 반전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의 모습도 바뀐다. 위기가 닥쳤다고 법과 질서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판단하고 날뛰는 영웅은 이제 (특히 슈퍼 히어로가 존재하는 가상 세계에서)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실로 기존의 영웅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작은 피해쯤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겨왔다. 대부분의 영웅 캐릭터를 차지한 남성의 강인함이 일을 신속하게 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누군가가 또 피해를 입었다면 여론이 마냥 호의적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윈스턴이 일라스티걸에게 먼저 기회를 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은 이제 ‘유연한 영웅’을 원한다. 그건 실제로 ‘몸이 쭉쭉 늘어나는 능력’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사고의 유연함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돌입하는 직선적인 해결방식보다 유연하고 다각적 사고가 수반되는 해결방식이 요구되는 세상이다. 실로 그러하지 않은가. 이제 배움은 끊임없고, 세상이 복잡해져 갈수록 수용해야하는 건 점점 늘어난다.

그래서 일라스티걸이 마냥 남성들을 무시하며 ‘여자인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식이 아닌, 세상의 부름을 받아 나온다는 설정은 매력적이다. <인크레더블 2>에서 여성을 세상에 호출하는 방식은 ‘남녀 역할이 고리타분하니 이제 그만 깨자’가 아니라, 세상에 이런 사고가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서 여성의 역할도 커지게 됐다는 식이어서 세련되게 다가온다. 실제로 <인크레더블 2>는 남녀의 성역할 반전을 꾀하는 게 아니라, 둘의 균형 잡힌 협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밥 역시 처음에는 헬렌의 영웅적 능력을 의아해하다가 이내 받아들이게 되고, 헬렌 역시 밥의 가정적 역할에 의구심을 품다가 이내 받아들이게 된다. 진정한 영웅은 이런저런 관념에 휩쓸리느라 사태를 악화시키지도, 능력을 썩히지도 않는다. 결국 이 ‘인크레더블’한 가족도 그 구성원이 모두 서로를 도울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어쨌든 헬렌의 유연함이 이룬 타협은, 인크레더블 가족이 골방에서 서로를 헐뜯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라도, 그 능력을 활용할 세상과 조율되지 않으면 언제든 무용해질 수 있다. 그건 영웅들 당사자에게도, 세상에게도 과연 좋지 않은 일이다. 다만 ‘모텔=불행’, ‘대저택=행복’으로 이어지는 단순 묘사는 아이들이 관람하는 영화치고는 위험할 수 있다. 그 부분의 요철만 제거한다면 영웅에 대한 <인크레더블 2>의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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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과 이블린. 이들은 세계를 선도하는 통신 IT 기업을 운영한다. 이들은 실제 세계의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으로 알려진 IT 기업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진 : 다음 영화, <인크레더블 2> (2018)

2. ‘유연한 영웅’이 보게 될 세계.


이 작품은 헬렌의 ‘걸 크러쉬’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다른 사유들이 있다고 해도, 고정된 성역할을 ‘잘’ 부순다는 건 여전히 신선한 일이니까), 그 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인크레더블 가족을 구원하는 윈스턴(밥 오덴커크)과 이블린(캐서린 키너) 남매의 모습들도 흥미롭다. 이들은 변화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을 상징하고, 변화된 세계를 그 자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방식을 따른다는 건, 변화된 세상의 방법을 따른다는 것이기도 하다.

윈스턴은 이블린의 표현에 따르면 “우주의 기원을 발견했어도 발 마사지기로 팔 수 있는 사람”이다. 비즈니스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윈스턴은, 온 세상이 등을 돌린 영웅들마저 상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탁월한 비즈니스맨은 제로섬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승패(勝敗)적 사고로는 언젠가 내가 ‘패’ 당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승승(勝勝)’할 수 있는 게임을 즐기며, 확실히 승승은 멀리 내다보면 긍정의 연쇄를 일으키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야기가 샜지만 어쨌든 윈스턴은 영웅들의 궁색한 사정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려고 한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지만, 윈스턴의 전략은 헬렌의 입장과 맞물려 제법 ‘현실적인 영웅의 면모’를 그려낸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골방에서 ‘이 세상은 잘못됐어’라고 철학만 하고 있어서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분명 그럴 수 있는 물질적인 조력이 필요하지만, 누구에게나 끼니를 거르지 않는 수 있는 능력은 벅차다. 특히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통신, IT업을 주력으로 삼는 윈스턴은, 영웅의 조력자를 자처하며 능력을 활용할 무대와 미디어의 활용을 권한다.

통신 사업을 쥐락펴락하는 윈스턴이 영웅에게 미디어의 활용을 권하는 건 그럴싸하다. 실제로 대중들은 편집된 미디어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미디어는 어떤 의미로 대중들에게 진실을 가져다주는 매체가 아니라, 거짓을 가져다주는 매체다. 세상의 그 어떤 뉴스도 날것의 배달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쓴 것이라 할지라도, 발화된 시점, 맥락, 논조 등 여러 형태의 사견이 개입하면서 교묘하게 대중들의 사상을 흔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를 잘 이용하면 대중들에게 손쉽게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불법 영웅’을 한순간에 ‘우리의 영웅’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고, 그와 동시에 ‘영웅을 지원한 기업’이라는 선의까지 덧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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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스티걸의 적대자로 등장하는 '스크린 세이버'. 그의 발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진 : 다음 영화, <인크레더블 2> (2018)

후에 일라스티걸의 적대자로 등장하는 ‘스크린 세이버’의 선동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확실히 대중들은 편안한 일상에 취해 스스로 사고회로의 작동을 정지시켰다. 편안해지면 질수록, 두통만 불러일으키는 복잡한 생각은 멀어진다. 그사이 위협이 도래하고, 그 위협이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지경이어도 스크린 세이버의 말처럼 ‘영웅이 나타나서 알아서 구해주겠지’라는 생각조차 하게 된다.

어쨌거나 일라스티걸은 윈스턴의 제안을 뿌리칠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그의 방식(변화된 세상의 방식)에 편승하지만, ‘미디어의 조작을 믿은 죄’로 자승자박에 빠지고 만다. 그건 미디어를 활용한 모두 다 그렇다. 영화의 본격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갈수록 편해지는 세상에서 사유의 끈을 놓은 이들’에게 주는 악당의 경고는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다. 사유의 끈을 놓고 미디어만 믿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피자배달부’가 될 수 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그러니까 다가올 시대에서 영웅은 유연함을 갖춰야할 뿐만 아니라, 그 유연함에 숨어있는 '독'도 가려낼 줄 알아야한다. 스크린 세이버의 계략에 빠져버린 헬렌과 밥을 그 자식들이 구한다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아이들은 앞으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테고, 그 속에서 타협하게 될 내용들을 자각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려있다. 마냥 스크린 세이버의 안경을 쓴 채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결국 아이들도 사유의 끈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결국 우리부터 사유의 끈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창하게 교육과정을 손대니 마니 하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당장 이 영화부터,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와 재미있다’로 끝낼 게 아니라, 영화관을 나와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고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지나간 필룸(최근 3편)

필룸 20. <컨택트>,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필룸 19. <마녀>, 번잡하게 뭉뚱그렸다
필룸 18. <셰이프 오브 워터>, '혐오의 눈'을 찾아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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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보러가는 소형 멀티플렉스에서 꼭 보려했는데, 왠지 개봉 첫주에 안보면 그 다음주에 나오는 미션임파서블과 인랑에 밀릴것 같단 기분은 느꼈었지만, 진짜 현실이 되버렸더라구요.. 그래서 아직도 못본 인크레더블2를 이렇게나마 공감하고 갑니다.ㅠㅠ 보고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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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애니메이션은 봐야할 실사 영화가 있으면 항상 후 순위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긴 합니다. 사실저도 미션 임파서블을 볼까하다가 미션 임파서블은 전편을 보질 못해서 인크레더블을 선택했죠. 나쁘지 않았습니다 :) 기회가 된다면 꼭 관람하실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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