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모처럼 도서관 2층 로비에서

in #kr-life5 years ago

아침에 수영장에 나갔다. 오랫만이라서 그런지 힘들었다. 오늘 처음 도서관을 찾았다. 열람실에 들어갔더니 너무 조용해서 컴퓨터를 칠 수가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뭔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무생각없이 노트북을 열고 몇자 치다보니 이게 아니다 싶어서 2 층 로비로 나았다.

로비에는

지혜의 숲에서 잠시 쉬어가다…

라고 씌여져 있다. 로비 가운데 긴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거기에 자리를 잡고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매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다. 한참을 글을 쓰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쇼파의 빈자리가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둘러보면서 조금 놀랐다. 난 도서관에는 젊은 학생들 몫인줄 알았다. 나도 학창시절엔 도서관에 자주갔다.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다. 언젠가 부터 도서관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퇴직을 하고 나서 사무실을 얻어서 공부를 한다고하니 아는 선배가 도서관에 가면 되지 왜 귀찮게 사무실을 얻느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말을 그냥 흘려 들었다. 1년간 사무실을 임대 했는데 편한 점도 있었지만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다. 나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나만의 공간을 가지려면 그 공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소니 관리니 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마침 지방에 일이 생겨 더 이상 서울에 사무실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져서 사무실을 나왔다. 그러니 오늘은 처음으로 고정적으로 가던 곳이 없어진 것이다. 예전에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나서 동네 주변의 도서관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아침운동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온 것이다. 회원가입을 하고 자리를 배정 받아서 앉았으나 열람실은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2층 로비의 긴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넓은 공간을 흐르는 차가운 공기가 다리를 서늘하게 지나간다. 서늘한 한기가 나를 묘하게 긴장하게 만들었다. 두어시간을 뭔가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 차있다. 내가 놀란 것은 나이가 든 사람들이 의외로 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로비에 앉아서 신문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바로 내 앞의 중늙은이는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어나 구석에 있는 자기 나이 또래의 사나이에게 가서 알은 채를 한다. 인사를 하더니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 쓰던 일을 계속한다.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 쇼파에 편하게 기대어서 아침 오수를 즐기는 것이다. 다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별로 갈데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시간나면 카페에 가서 책을 보거나 작업을 했는데 도서관도 괜찮은 선택인 듯하다. 자유롭다. 카페에서도 피곤하면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기가 어려운데 여기는 그럴 수 있어서 좋다.

노인들은 몇시간이고 한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한다. 제일 많이 보는 것이 신문이다. 두어시간은 앉아서 신문을 보는 것 간다. 그러다가 눈을 붙이고 쇼파에 기댄다. 가만히 보니 이들은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매일의 일과인 듯 하다. 한쪽 구석에서 연신 하품하는 소리가 들린다.

앉아 있는 노인들은 모두가 남성들이다. 그들은 어디 갈데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도서관 2층 로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그 나마 다행인 듯 하다. 이런 공간이 있기에 그들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닐 수 있는 것 아닐까 ?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자존심 말이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그래도 젊을때 뭔가 하나씩은 세상을 잡고 흔들었을 것 같다. 가만 보면 모두가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서로서로 방해가 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오랫만에 도서관에 와서 참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침묵 속의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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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남자분들 중에 일년 내내 고정 출근하듯 도서관에 오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시골도 그런데 도시는 더 하겠지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듯 합니다. 잘 나이들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우리사회가 아직 사람들의 능력을 모두 잘 활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도서관
사람들의 행동이나 이런것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더라고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도서관에서 따스함을 느끼는것도 나쁘지는 않을듯합니다~~책도보구~

그런 것 같아요

도서관의 정취가 눈에 그려지네요
갈 곳이 있다는 게 참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올드스톤님도 출근도장 찍으시나요?^-^
다리는 나아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다리가 좋아져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많이 갈 기회가 없는데
가끔 책을 빌리러 가면, 생각보다 나이드신 분들이 꽤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은 나이 드신 분들도 무엇인가 시험 준비를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부동산...?)
30평생을 직장이라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집에서 쉬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자신이 속할 부분을 찾는것 같아요 그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럼 소속감에 마음이 좀더 편해지니깐요...
도서관에 오시는 분들도 비슷하겟죠 다만 남성분 위주라는게 좀 의외네요......

그래서 도서관에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은 도서관이 다양해서 더 좋은 거 같습니다.
마을 가까이 작은 도서관부터 있으니까요

옛날보다는 살기 좋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퇴직후 다른 것보다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좋아보입니다.
예전에 다큐3일인가에서 방통대이야기가 나왔었는데 퇴직하신분이 방통대에 입학하셔서 졸업하시고 다시 다른과로 입학하시고 졸업하시고 그러면서 계속 다니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분도 날마다 도서관으로 등교를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럴까 생각중입니다

저도 퇴직하고 집 근처 도서관에 아지트를 차린지 2주 되었어요. ㅎㅎ. 정말 말씀하신대로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료실에는 책도 엄청 많습니다. 쾌적한 환경이 책보며 글쓰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편안하게 잘 보냈습니다

혼자만의 공간도 좋겠지만..
도서관의 그 특유의 적막함과 소음(?)때문에
더 집중할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듯합니다

저는 토요일마다 도서관에 가는데 대부분의 자리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차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할머니는 안보이시더라구요.
할머니들은 나름 바쁘셔서 그런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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