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연대 따위는 없단다

in #stimcity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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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하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_ 야고보서 2장 15절∼16절



잃어버린 미래, 연대



이게 뭐라고 감동적인가? 보이스 피싱을 당한 할머니가 길을 잃었는데 <심야식당>의 단골손님들이 합심하여 길잃은 할머니의 잠 잘 자리를 챙기고 헤어진 아들을 찾아준다?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요즘은 보기 드문 이야기. 일본에서도 그런가? 그러니까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었겠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연결되고 개입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새롭고 감동적일 줄이야.



그런 건 오지랖을 넘어 사생활 침해라고. 함부로 남의 일에 껴들었다간 사단이 나거나,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오해를 받을 일이다. 그래서 연민과 동정이 생겨났다가도 '아서라, 그러다 욕볼라.' 마음에 빗장을 닫아거는 것이 요즘의 정서가 아닌가. 그렇지만 불과 몇십 년 전, 십수 년 전만 해도 우리의 일상이었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응답하라1988, 전원일기 등을 굳이 소환하지 않아도) 그러나 얼마나 지났다고, 지금의 우리는 그런 것을 드라마로 영화로 억지로 소환해 내어 옛 기억을 짜내고는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지.'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커뮤니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모두가 안다. 걱정은 할지언정 뭘 어떻게 복원해 볼 생각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변화하는 세상에도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고 또 이렇게든 저렇겠든 어울려 살겠지만, 그 변화하는 흐름을 유유히 관통하는 본질 같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연대, 교류와 사귐, 마음을 나누고 정성을 들이는 행위에 관한 본능적 감각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이 지금은 모두 왜곡되어서, 자신의 치부와 트라우마를 감추고 해소하는 방식으로 소문과 사건을 따라 과격하게 흥분하거나 저간의 사정에 대한 헤아림 없이 마구 발산되어, 제2, 제3의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고 있다. 어른이 사라진 사회에서 누구도 나서서 중재하고 이해를 모으거나, 새로운 관점,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나누어 주는 이가 없이, 모두가 폭발하거나 동조하며 모두가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연대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이벤트고 과시이고 소동일 뿐이다.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 된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홀로 떨어져 있다가 어디선가 불타오르는 횃불을 보고는 마구 달려들어 불타는 덤불을 넘고 뛰고 집어던진다. 불놀이 함부로 하면 오줌 싼다고 어른들이 그랬는데. 억눌린 감정과 억울함을 마구 배설하고는 시원해졌는지, 뒷처리와 당사자로서, 책임자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감당해야 할 그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스리슬쩍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재만 남아 버린 광장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쓰인 팻말만이 나뒹군다.



이런 걸 연대라고, 이런 느슨하다 못해 바닥에 질질 끌리는 연결을 연대라고 하는 거냐? 그런 연대를 어따 써먹냐? 보호하고 끌어주고 당겨주는 연결이 아닌, 여차하면 목덜미를 탁 잡아당길 요량으로 느슨하게,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투명 끈으로다가 고리를 걸어놓구서는, 조금의 실수라도 보이면 '너 잘 만났다!'하고 탁 잡아 끌어 올리는 거다. 어려울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이웃들이 나서서 마녀사냥을 시작하는 거다. 대중의 광기로 마구 속력을 끌어올리는 유세차량에 묶고서는 광장으로 내던져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이다. 무엇이? 그 '느슨한 연대'라는 비겁한 거짓말이 말이다.



느슨한 게 연대야?



느슨한 건 연대가 아니다. 연대는 단단하다. 견고하고 탄탄하다. 묶지 않은 것을 연결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묶이지 않은 것은 부유할 뿐이다. 연결은 우리를 묶고 연대는 우리를 가이드 한다. 때로는 가두고 때로는 경계를 확정한다. 그것이 없으면 그건 그냥 둥둥 떠다니는 먼지일 뿐이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지나친 결속과 목을 조여드는 'tie'에 질식할 뻔한 인간들은 겁이 나 도망치면서도 무리에서 조직에서 배제될까 두려워 '느슨한 연대'를 들고나왔다. 비겁하게 도망은 치고 있지만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건 싫어. 그러니 나를 아주 버리지는 말아줘. 제 발로 개목걸이를 길게 늘어뜨려 최소한의 연결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걸 가만두겠니? 이 늑대 같은 주인장들은 지들의 필요에 따라 여지없이 목줄을 당겨버리고는, 필요가 없어지면 무책임하게 한없이 늘어뜨려 방치하는 거다. 니가 그랬잖아. 느슨한 연대가 좋다고.



억압과 소외 사이에서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 조직이 주는 억압은 숨막혀 피하고 싶으나 혼자만 배제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입장권은 그럴듯한 이미지뿐이다. SNS에서 나 혼자 살지만 '별일 없이 산다'와 '그럴듯하게 산다'를 아무리 시전해 봐라. 그런다고 너와 연결되는 이들은 'sponsored'들 뿐이다. 자신들의 물건을 구매해 달라는 구걸들뿐이다.



연대는 책임과 관심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상호 간의 책임감 있는 연결. 너의 줄을 잡아주고 나의 줄도 내어주고. 줄과 줄을 묶었으니 우리는 2인 3각. 너가 넘어지면 나도 넘어진다. 그러니 너를 붙드는 일은 나를 붙드는 일이다. 이 2인 3각으로 묶이지 않은 관계는 연대가 아니다. 너가 넘어졌는데 내가 아무 일도 없다면. 내가 넘어졌는데 너에게 아무 피해가 없다면. 그건 그냥 '남'인 거다. 그러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의 잠 잘 자리는 나의 잠 잘 자리인 것이다.



할머니의 잠 잘 자리



<심야식당>의 청춘은 할머니의 잠자리를 찜질방으로 모셔다드린 어른들에게 크게 한 소리한다. "마스터, 제가 갈 곳이 없을 때는 방을 내어 주시더니 할머니를 왜 그냥 보내신 거죠?" 청춘은 할머니를 자신의 방으로 모신다. 자신의 잠 잘 자리는 침낭으로 대신하면서. 할머니가 잘 곳이 없어지면 청춘도 잘 곳이 없어진다. 길 잃은 청춘의 잘 곳을 이 <심야식당>의 이웃들이 보살펴 주었다. 그런데 그 연대가 끊어지면 청춘 역시 잠 잘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니 못 본 척하는 일은 미래를 저당 잡는 일이다. (아, 마스터에게는 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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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서 그런 연대를 빼앗아간 것은 자본주의도, 변화하는 사회도, 미친 듯이 밀어붙이는 기술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멍청하게도 완전한 개인이 되겠다면서 상호 간의 연결을 모두 끊어버렸다. 소외가 두려워 단톡방 나가는 것도 겁을 내면서, 내 욕할까 봐 대화 자리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참는 인간들이 뭐 그리 자신 있다고 연결을 다 끊어버렸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오늘 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할 그 누군가가 있는지. 너 말고 너에게 말이다.



이 이상한 말, '느슨한 연대'라는 말은 'Weak Tie'라는 비즈니스 용어에서 시작되었다. 채용 추천과 관련해서, 주변의 친한 지인보다 한 단계 떨어진 느슨한 관계의 사람을 추천하는 일이 더 빈번하다는 통계를 설명하는 용어이다. 그게 뭔가? 친한 지인을 소개하자니 잘못되거나 하면 관계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으니, 비교적 친밀함이 떨어지는 안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추천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면서 프로젝트에 따라서 쉽게 모였다 헤쳤다 할 수 있는 조직의 유연성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게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식으로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는 걸까?



느슨하면서도 단단하려면



느슨한 것은 연대가 아니다. 연대는 단단하고 견고하다. 다만, 단단하고 견고한 연대와 연결을 바탕으로 성숙한 배려와 존중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때의 '느슨한 연대'는 '배려 깊은 연대'의 다른 표현일 수는 있겠다. 상대의 자존심과 사정을 헤아려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가리고 조심하는 것.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무책임을 가장한 거짓일 뿐이다. 책임지기는 싫고 소외되기는 더 싫은 개인이 자신을 방어하는 바보 같은 개념이란 말이다. 그게 왜 바보 같냐고? 기득권의 입장에서 보자. 얼마나 쉬운가? 아랫것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관리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예전에는 노조니, 단체니 뭐니 하며 집단으로 몰려와 반기를 들고는 하던 것들이 모두 '느슨한 연대' 어쩌고 하며 뿔뿔이 흩어졌으니 필요한 것은 선동뿐이다. 소속감 없는 개인이 기댈 것은 대한민국, 국민뿐이다. 빨갛고 파란 태극기와 조국기 아래에서만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다 개차반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야식당>의 커뮤니티는 '느슨한 연대'가 아닌가? 그들이야말로 '느슨한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소속도 없고 의무도 없지만, 밤마다 식탁에 둘러 앉아 소소한 일상과 고민을 서로에게 나눈다. 아, '소소하다' 표현하면 안 된다. 그건 심각한 얘기는 닥쳐로 들리니까. 어두운 얘기는 닥치고,당신의 고민 따위 관심 없거든으로 들리니까. 그들은 거창한 삶의 고민을 나눈다. 이성의 관심을 받고 싶어 그나마 잘 어울리는 상복만 입고 다니는 노처녀 편집자의 이성 교제에 모두가 관심을 쏟고 잘되길 바라고, 우여곡절 끝에 나타난 피앙세에 모두가 기뻐해 주고. 아들의 15살이나 많은 며느릿감을 받아들이도록 세심하게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그러나 함부로 상대의 감정을 예단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이 도덕 교과서 같은 관계들이 우리가 원하고 경험하던 그것이 아닌가?



느슨해도 끊어지지 않는 연대라면 매우 성숙한 연대일 것이다. 풀 때와 조일 때를 지혜롭게 조절할 줄 아는 성숙한 이들의 연대라면 느슨하다 느끼면서도 안정적일 수 있고 단단하다 느끼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의 기반은 강력한 결속이 맺어지고 여물어가는 시간의 역사에서 나온다. 영화 <심야식당>의 배경이 된 도쿄 신주쿠의 '골든가이' 스트릿은 유명한 유흥가였다. 지친 회사원, 외로운 에로배우, 배고픈 스트리퍼, 쉼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이곳은 하루의 피곤을 쏟아내고 돌아가는 도쿄 시민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일본의 거품경제가 도쿄의 금싸라기 같은 땅에 위치한 이곳을 가만둘 리가 없다. 몰아친 재개발 광풍은 야쿠자 폭력조직들까지 합세하여 매우 거세게 이들의 커뮤니티를 해체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 '느슨한 연대'는 자신들의 터전을 그냥 내어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골든가이를 지키자> 모임을 결성하고 단결하여 거센 재개발 광풍에 맞섰다. 가게들에 테러가 가해지고 상점들이 불타는 와중에도 이들은 잿더미 위에서 술을 팔고 손님들을 모실지언정 터전을 버리지 않았다. 이 자발적 연대는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고 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러한 수고와 노력 덕에 지금의 거리가 완성되고 보존될 수 있었다. 시간을 이겨내고 연대를 지켜낸 이 거리는 수많은 작가와 편집자, 영화감독, 연출가, 배우와 저널리스트들이 모여들어 뜨거운 토론과 열정을 쏟아내는 문화인의 거리가 되었다. <심야식당>과 같은 문화 콘텐츠의 배경이 되고,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발신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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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즈덤 레이스> 중 만난 '골든 가이'의 시간의 역사



스팀잇은 골든가이가 될 수 없었을까? 고래전쟁에 패배한 스팀잇은 황금의 거리가 아니라 몰락의 거리가 된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핑계로서의 '느슨한 연대'로 할 수 있는 건 무분별한 마녀사냥과 미약하기 짝이 없는 각자도생뿐이라는 것이다.



시작은 사소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나눌 수 있다면 사소하고 소박한 식탁도 혁명의 테이블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느슨해서는 안 된다.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너와 내가 하나의 끈으로 묶이되 무책임하게 늘어져서도 안 된다. 술 취한 사람을 업고 얼마나 걸을 수 있겠는가. 서로의 손을 단단하게 마주 잡고 회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회전에 호응하여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면 회전반경은 더욱 커지고 더 강력해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야쿠자에게도 대적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짱짱한 연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에 많은 이들과 할 수 없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연결해 가다 보면 그리고 단단하게 서로를 마주 잡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강력한 커뮤니티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쩌지 못할 만큼 탄탄하게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스팀시티]의 심야식당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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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은 밤12시부터 아침7시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된장국 정식, 맥주, 사케, 소주
메뉴는 이게 전부다.
무슨 음식이든
주문이 들어오면
가능한 건 만드는 게
영업 방침이다.

손님이 있냐고?
그게 말이야, 꽤 많이들 와."

_ 영화<심야식당2> 오프닝 中



휘리릭~



[위즈덤 레이스+Movie100] 006. 심야식당2







[Human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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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고민해 보아야할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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