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야자 시리즈] 탈출 전문가
야간 자율 학습은, ‘1만 시간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례일 것이다. 대강 하루 야자 시간을 4~6시간으로 잡고 계산을 해보면, 고교 3년 동안 책상에 얌전히 앉아 저녁과 밤 시간을 보낸 건 5000시간 정도다. 법칙에 따라, 반쯤은 공부 달인이 된 아이들이 여럿 나와야 하지만, 내 생각엔 야자가 없어도 잘 했을 친구들은 있어도, 야자를 통해 달인이 된 친구는 거의 없다.
공부 달인이 된 친구는 거의 없어도,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시간’의 속박을 훌쩍 벗어나는 ‘탈출 전문가’들은 여럿 나왔다. 그들은 쇠사슬에 묶인 탈출 전문 마술사처럼, 멋지게 그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자신 만의 유희를 즐겼다.
소위, 야자를 빼먹고 땡땡이를 친 친구들 이야기가 아니다. 비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 공부도 곧잘 하는 고만고만한 수준의 새가슴들이 모인, 규율이 엄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땡땡이를 칠 정도로 담력이 큰 친구는 찾기 힘들었다. 가끔 운동장에서 어느 학년 전체가 정신 교육을 받는 소리, 비명에 가까운 기합 소리를 듣게 되면 그나마 있던 ‘담력을 동경하는 마음’도 싹 사라졌다. 우리는 교실 책상에 앉아서 바깥의 소란을 느끼며, ‘우리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안도감을 ‘평화로운 것’으로 여기는 착각과 마주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을 통해 양산된 ‘탈출 전문가’들은 책상에 앉아 수능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과 다름없이 보였지만, 실은 그 자리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껍데기는 속박되어 있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서 훨훨 날고 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탈출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반 이상의 친구들은 야자의 원래 목적인 공부에 충실했다. 그 나머지에서 반 정도는 공부와 ‘멍 때리기’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또 그 나머지에서 반은 책상에 속박된 걸 도무지 견디지도 못하고 책상 위에서 뭔가를 즐기지도 못했다. 이제 남은 친구들은 책상 위에서 어디론가 탈출하기로 작정했다. 야자를 다른 목적으로 즐기기로 작정한 친구들의 유전자는 빙벽에 갇힌 매머드처럼 16년을 가라 앉아 있다가 야간자율학습을 통해 발현되었다. ‘탈출 전문가’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도 놀 수 있는 능력을 그렇게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다른 세계로의 탈출은 주로 몇 가지 도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도구는 금서, 워크맨, 연습장 등으로 다양했다. 진정한 탈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도구를 숨기는 기술이 관건이었다. 기술이 부족한 친구들은 야자 관리 선생님에게 적발되어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당해야 했다. 한 번 적발된 친구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위축되어 탈출 시도가 더 눈에 띠곤 했다. 그 애들은 반복적으로 관리 선생님의 먹잇감으로 던져지곤 했다.
“또, 너냐?” 하는 얘기를 듣고 끌려 나가던 애들이 바로 그런 친구들이었다.
금지 행위인 음악 듣기나 라디오 듣기를 매일 하던 친구들이 있다. 그들에게 야자 시간은 자신을 옭아매는 구속복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이어폰과 워크맨을 몸의 일부처럼 다루었다. 상의 속주머니의 워크맨에서 뻗어 나온 이어폰은 그들의 팔을 통과하여 소매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얼굴에 밀착된 주먹 속엔 이어폰의 끝부분이 들어 있었다. 돌발 상황에도 이어폰이 길을 잃지 않도록 손목에 테이프로 고정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들의 손이 곧 이어폰이었다. 미래에 개발될 ‘생체 이어폰’의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까.
프로의 냄새를 풍기던 그들 중 누군가도 가끔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질렀다. 중요한 축구 중계를 듣다가 우리나라가 골을 넣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함께 “골!”을 외치다 끌려 나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던 것을 보면.
연습장을 탈출 도구로 삼는 부류는 비교적 엄폐에 유리했다. 연습장은 학습 도구이기도 해서, 웬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지 않는 한 공부를 하는지 딴 짓을 하는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사용하던 도구였다. 연습장에 시를 쓰고,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연습장에 끼적이고 있을 때면, ‘저녁’을 잃은 내 처지를 잊어버렸다. 오히려 그 시간이 풍요로운 ‘저녁’으로 변했다. 역설적으로 육체의 속박으로 인해, 예술을 흉내 내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나중엔 연습장을 탈출의 도구로 사용하는 다른 친구와 시(詩) 동호회도 결성했다. 1부 야자가 시작되기 전에 공통의 시제를 정해서 야자동안 시를 쓰고, 쉬는 시간에 서로의 시를 바꿔 감상하는 것이다. 우리 동호회는 야자 때만 활동했다. 야자 때 동호회 활동까지 했으니, 야자가 내 ‘저녁’을 빼앗아갔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하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P.S.
어쩌다, 야간 자율 학습에 대한 글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 쓸 얘기가 또 있으니, 한동안 시리즈 에세이처럼 쓰게 될 듯 합니다.
연습장에 시 쓰고 그림 그리는,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 되는 남고생 모습이 손에 잡힐듯 합니다.
그렇게 놀면서, 그럭저럭 그 시간을 나쁘지 않게 보낼 수 있었지요. ^^
이어폰을 이용한 탈출스킬은 어디나 다 비슷하군요 ㅎㅎㅎㅎ
캬 야자를 이용한 시동호회라... 죽은시인의 사회 같은데요 ㅎㅎㅎㅎ
네 이어폰은 언제나 탈출구가 되어주죠^^ 야자 시동호회, 대단한 시를 썼던 건 아니지만 즐건 추억이네요ㅋ
와- 제가 다닌 학교 얘기하는줄 알았습니다. 지금처럼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었으면 엄폐가 좀 더 완벽했을텐데 ㅋㅋ
그때 그 내공이 모여 오늘날의 솔메님이 탄생하신거군요 ㅋ
더불어 저와 제 친구들 사이에서는 편지쓰기가 대유행이 되어버렸답니다. 핸드폰 소지가 금지였거든요. 아날로그적인게 꽤 좋았죠-
자습 풍경은 그 어디에나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는군요ㅎ 귀 속에 쏙 들어가는 블루투스 이어폰,, 탈출을 위한 필수템이 되겠군요 ㅋ
편지쓰기로 건설적인 시간을 보내셨군요!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편지. 안 쓴지 오래돼서 조만간 시도해보고 싶네요. 흐린 가을에 편지를 써야겠어요ㅎ
옛날 생각이 막 나네요..ㅎㅎ
친구와 시를 써서 바꿔보며 품평을 했던것도..ㅋㅋ
그 시절 조악한 시를 썼지만, 함께 시를 나눈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던지요!^^
재밌네요
야자가 시동호회 회원들의 활동시간이였군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ㅎㅎ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한 시간이었지요ㅋ
감사합니다.
boddhisattva님의 TOP 200 effective Steemit curators in KR category for the last week (2018.10.08-2018.10.14)
굿잡ㅎ
시 동호회라니, 너무 고급진 탈출인데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죠ㅎㅎ 우리끼리 즐기는.ㅋ
저도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전 진짜 탈출(땡땡이)도 했었지요. ㅋㅋㅋ
혹시 브리님의 프로필 사진이 그 땡땡이 장면인가요? ㅋㅋ 놀 생각에 아주 신이 난 모습이네요.ㅎㅎ
으음, 워크맨도 금지가 되었나보군요. 공부할 때 들었던 음악 리스트가 몇 개 생각나는거 보면 저희는 금지가 아니었을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도 저도 제 교복 재킷 팔을 통해 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손으로 한쪽 얼굴을 받친 채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요. 설마..... 내내 그렇게 들었던 것인가 하는 ;;;;;
학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것들은 죄다 금지였지요.ㅎㅎ 써니님 이제 보니 음악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달인이셨군요. '한쪽 얼굴을 받친 채 공부....' 그렇게 해서 공부가 되었을까요? ㅋㅋ
ㅋㅋㅋㅋ탈출전문가라니...! 역시나 너무 재밌는 표현이네요-
전 디엠비로 스타 방송보고, 해리포터 책을 몰래몰래 읽었던 게 생각나네요 ㅎㅎ
올림픽 땐 야자실에서 다 같이 조그만 핸드폰에 디엠비 켜놓고 몰래몰래 응원했던 것도 떠올라요 ㅎㅎ
다양한 멀티미디어로 탈출을 감행하셨군요ㅋㅋ
그 전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ㅎ
그 긴장 속에서 봤던 책이, 그때 들었던 노래가
더 재밌고 달콤하게 느껴졌던 건 역시 사람 심리탓이겠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