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단면; 정신지체아 B에 대한 기억
어릴 때 같은 단지에 살던 정신지체아 B가 있다. 나는 정신지체에 대해 알기 이전부터 B와 친했다. 하지만 또래들은 B와 친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B와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단다. 나는 지금도 그렇듯, 그 때도 순수했다. B를 꺼리는 분위기를 알았지만, B는 착한 아이라서 무슨 문제냐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B는 나에게 사탕을 사주었다. 그리고 그 사탕을 물고 집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그 사탕은 누가 준 것이냐 물으셨다. 나는 6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B를 꺼리는 분위기를 알았기에 답할 수 없었다. 내 부모님은 그래도 좀 나은 분들이셨는지 B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답할 수 없었다. 아마 내 부모님도 B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까 두려웠던게 아닐까. 나에게 B는 사탕을 사주는 착한 친구인데.
나는 답할 수 없다며 버텼고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 하니 내가 부정한 방법으로 사탕을 손에 넣었다 생각하셔서 화를 내셨을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무슨 고집이었기에 계속해서 버텼다. 계속 추궁하시기에, 억울해서 울었다. 나는 신생아일때부터 울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아이였기에 더욱 답하지 않는 내가 이해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계속 펑펑 우는 나를 달래주시며 어머니가 다시 여쭈셨다. 왜 답하지 않냐고 친구가 주었으면 친구 이름을 말하면 되지 않냐고 하셨다. 마음을 조금 추스리고 말씀 드렸다. B와 가까이 하지 말라 하실 것 같아 도저히 답을 할 수 없었다고.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아버지께 전하셨다. 아버지가 사과하시며 말씀하셨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네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숨길 일이 아니며 오히려 B와 친하게 지내는건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하셨다. 참 다행이었다.
B와 나는 초등학교를 같은 곳에 가게 되었다. 반경 1km 내에 초등학교가 6개였으니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진학하고도 B를 많이 챙겼다. 초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그래도 어느정도 부모의 품에서 벗어났다. 동네에서 당했던 차별을, 학교에는 당하지 않았다. B는 친구가 많아졌다. 물론, 가끔 미숙한 일들도 많았다. 친구가 많이 생겨도 B에게는 이웃인 나에게는 각별하게 의존했다. 내가 다른 반에서 놀고 있어도 꼭 나를 찾는 것이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이 나와 B의 책상을 이상하게 배치했다. 교탁 바로 앞도 아니고 교실 가장 앞에, 섬처럼 우리 둘의 책상을 놓아두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1년 내내 B와 짝이었다. 내가 B를 가장 잘 챙긴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 선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비교적 증상이 약한 B를, 가까이 특수학교가 있음에도 굳이 다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어 지내게 하신 B의 부모님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행동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받을 대접에 대해서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B에게 잘 해준건 B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같은 아파트, 그것도 바로 아랫층에 살고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은 착한 아이라 생각했기에 B와 친하게 지낸 것이지, B에 대한 동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생의 행위는 B를 아예 다른 아이로 규명하는 행동이었고, B에게 잘 해주는 나 또한 반에 있는 다른 학생과 다른 아이로 규명한 것이다. 이성친구와 친하게 지낸다고 놀림 받는게 10살짜리 아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여 나와 B를 다른 아이들과 분리했는지 모르겠다.
B는 더 이상 그저 친구들 사이에 섞여있는 '학습이 느린' 친구가 아니었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명백한 약자가 되었다. 더 이상 B에게 잘 해줄 수 없었다면 나는 나쁜 아이였을까? 하교 후에는 살갑게 대하더라도 학교에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대하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찾던 B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그 이후로, B는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들에게 판단 능력이 모자란 B는 시키는 일을 다 하는 재밌는 장난감이었다. 으레 그렇듯 불량한 아이들은 선생 앞에서 '척'을 잘한다. B와 정말 친한 척을 하고, 선생들은 그리 믿는다. B에게 나쁜 일을 시키고 선생은 B는 '아픈 아이'라며 용서한다. 선생은 이걸 배려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교육을 포기한 태도이다. 교육의 의지가 있으며, 다른 아이와 다를 것 없는 아이라 생각했다면 따끔하게 꾸짖어야했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배려라는 탈을 쓰고, 오히려 차별을 강화하곤 한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 더 이상은 못 쓰겠습니다. 그냥 즐거운 글이나 쓰면 좋았을텐데... 읽는 분들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Cheer Up!
B... 배려랍시고 명백하게 동정이 필요한 약자로 만들어버린 선생님.. 본인은 선의라고 생각하시고 한 행동이겠죠? 음...
책에서 본 "선의 반대말은 선이 아니라 선의이다."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B와 어울렸을 때 사탕을 받았을 때 다른 부모님들처럼 B와 놀지 말라고 혼내지 않으셨던 kmlee님의 부모님도 훌륭하시다고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동급생들의 시선이 가장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어찌 10살짜리 꼬마들에게도 그리 약육강식의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를 조장하고 방치한 것이 공교육의 현장이라니...
감사합니다.
맞아요 열살짜리 사회에서도 약육강식이 있더라구요...
오히려 아무것도 몰라서 어릴 때가 더 잔인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남자 아이는 가정에서부터 '때려도 좋으니 맞고 오지 마라'고 교육 받지요. 이 또한 의도는 당한건 되갚아 주라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가해자가 될지언정 피해자는 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아이를 만들어내는 양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가 답일까요? 선생님도 나쁜 의도에서 그런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몰라서 하나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모르니 생각없이 한 행동이 아닐까요? 둘 다 큰 의미를 부여해서 한 행동이 아닌데 하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와 좋은 평가를 받고, 또 다른 행동은 나쁜 결과를 가져와 의도치 않게 나쁜 평가를 받게 되잖아요. 그 선생님이 과연 나쁜 의도로, 너무 생각이 없는 행동을 해서 일까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의도는 나쁘지 않겠지요. 어지간히 미친 사람 아니고서야, 10살짜리 꼬마 2명을 골탕 먹이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랬겠습니까. 선생 나름은 배려라고 생각해서 B를 가장 잘 돌보는 저를 B의 보호자 비슷하게 배치한 것이겠지요.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건, 저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는 것이겠지요. 어려운 학생을 돕는건 선생의 역할이지 10살짜리 꼬마의 역할은 아니거든요.
왕따 사건들을 보면 피해자와 친했던 아이가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계속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 자신에게도 '왕따의 친구'라는 낙인이 찍혀 피해자가 되니까요. 다양한 매체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왕따도 아니고 친구도 많았던 B에게 한순간에 '배려가 필요한 아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지요. B의 친구인 저도 덩달아 낙인을 얻었구요.
평등에 대해 사회전체적으로 더욱 깊은 사유와 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교육기관에서는 더욱 중요하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특히 학창시절과 관련해서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몰라서 상처를 주는 일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맞아요. 저도 나쁜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계속해서 고민하며 진정한 평등에 다가가야지요.
하나의 역차별이 아닐까요...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역차별이었으면 나았지요. 오히려 차별을 강화시켜버렸으니...
저도 어린 시절 심장에 이상이 있어 늘 입술리 파란 친구가 있었지요....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생을 달리 했었는데....
조용하고 나의 주위에 앉아 늘 웃기만 하던 친구 였답니다.....
그 친구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아이고... 또 무거운 기억을 끄집어냈군요... 죄송합니다.
ㅎㅎㅎㅎ 아닙니다....
가끔은 무거운 기억으로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거든요..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공유해 주신 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흔히 겪을수 있었던 어쩌면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때에 범했던,
우리 사회나 학교의 무궁한 실수가 조금은 우리나라의 성숙을 방해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편안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배려가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정말 좋은 말인 '배려'가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로 또는 생각으로 나누는 '배려'도 행동 못잖게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중심을 잘 잡도록 이끌어 주시는 배려에 늘 감사합니다.
그 선생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정신지체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인 대처만 할 수 있었겠죠. 사실 동네에 있었던 다른 학부모와 그 선생은 같은 '류'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단지 교사라는 이름의 '역할'을 하려 했던 것 같네요.
사실 이런 차별의 교육은 교육현장에 계신 분들 먼저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모든 교육의 시작일테니까요.
입법부, 행정부부터가 별 생각이 없는데 말초에 속하는 현장의 교육자들은 무슨 책임이겠습니까. 사실 선생을 비판하는 것도 다 아쉬워 그런 것이지요.
그것도 그렇군요. 그런것들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입법부, 행정부가 먼저 나서야 할 텐데 말이죠. 그 기관들이 결코 약자를 고려하는 기관으로는 보이지 않네요...
다른이야기보다 저도 아이를 가진 엄마여서 그런지.. kmlee님이 아버지 어머니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저도 그런 부모님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부족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말보다는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아버지가 멋지십니다.
어릴적의 kmlee님두요..
물론 학교생활하면서는 그잘해줬던 부분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을듯 합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선생님께서 친구 B 와 kmlee님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셨다면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텐데요..
처음부터 소리를 막 지르고 안 하셨어야 좋은 아버지지요! 아무리 걱정을 하셨더라도 미취학아동에게 샤우팅이라니... ㅋㅋㅋ
선의로 한 일들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서로의 소통이 필요한 것 같구요... @kmlee님은 어릴 때 부터 참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그럴리가요... 저는 스물셋 전까지는 짐승이었다고 생각하는걸요 ㅎㅎ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