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새로운 연결 - 순간의 만남에서 건져올린 이야기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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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결 

순간의 만남에서 건져올린 이야기 네번째



    철도가 연결되면...  

곧 탄광마을에 표준궤도를 사용한 철도가 놓이게 된다. 이제 이곳의 석탄은 전국으로 퍼지게 된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탄광에는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게 된다. 광부들은 작업의 강도가 더 쎄지는 것을 느낀다. 매 주마다 새롭게 들어오는 신입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신입들이 함께 투입된 작업조는 무척 긴장해야 한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막장에서 2시간만 일하면 탈진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철도가 연결되다는 것, 그것은 탄광마을에, 작업장에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매일 시장거리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철도가 연결되는 것은 진정 무엇을 연결시켜놓은 것일까?



어찌 보면 다 같은 처지의 사람일텐데...



정순은 시장에 나갈 때 명은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탄광마을에 온 외지인들이 늘어서 그런지 시장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순은 노상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갈 수록 장사하는 것에 적응하게 되고, 제법 살림이 보탬이 되는 것에도 흥이 났다.
가끔 급하게 자리를 비울 때라도 되면 명은에게 자리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단단히 이른다. 자리를 비웠을 때 찾는 손님이 오면 명은이 급하게 엄마를 찾아와 부른다.
이제는 시장에서는 하나 둘 단골이 생겨났다. 어찌보면 다 같은 처지의 사람일텐데, 사람을 한번 두번 만나다 보니 그 속에서 탄광촌 생활의 고달픔을 이해하게 된다.
먼저 탄광마을에 자리를 잡다 보니, 뒤 이어서 마을에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탄광 마을의 소식들을 이것저것 전해주곤 한다.

명은은 시장 한 쪽에서 나무막대기를 땅에 글씨를 써 본다. 학교에 가는 형, 누나들을 보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시장 바로 옆에 학교가 있어서 호기심에 학교 주변을 서성이기도 한다.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받고 공부를 하는 동네 형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땅은 훌륭한 공책이 된다. 글씨를 썻다가 지우고 다시 써보고 지울 수 있으니.
명은은 땅에 아빠, 엄마의 이름을 적어본다.

'이용현, 박정순.... 이명은... '

가족의 이름을 다 적을 즈음 땅바닥에 그림자와, 낡은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명은은 잠시 위를 올려다본다. 깔끔하게 양복을 입은 노신사가 얼굴에 미소를 띄며 말을 건넨다.

"얘야. 글씨를 쓰는구나. 아직 학교에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똘똘하구나. 그래 그 이름은 누구를 쓴거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아빠하고 엄마, 그리고 내 이름이요. "

이 말을 들은 노신사는 다시 한번 땅의 글씨를 유심히 살펴본다.

"용현... 정순....."

노신사는 이름을 나직히 불러본 후 뭔가 알수 없는 혼자말을 해 본다.

"그래. 명은아. 글씨 잘 배우고 있거라. "

명은은 시장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노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글씨 잘 배우고 있거라' 하고 전해준 말에 뭔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시장에서 자기가 글씨 쓰는 것을 보고 말을 걸어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 용현이 잠깐 사무실로 와 봐."

광업소의 직원이 작업을 마치고 쉬고 있는 용현을 부른다.
사무실에는 사장이 있었다. 무슨일일까?

"듣자하니 자네가 탄광마을 선생님이라는 소문을 들었네. 한자도 잘 알고, 글도 잘 쓴다고 하고.. 다음 달에 우리 광업소에서 철도 개통식이 열릴 예정이네. 도지사, 군수님들이 모두 이곳을 찾을 건데. 자네가 개통식 준비하는데 필요한 일들을 좀 도와줬으면 하네. 이미 군수님이 와서 행사 할 때 필요한 부분들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을 하고 가셨네."

해야 할 일은 면 서기가 광업소를 찾을 때면 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행사에 필요한 서류, 소식지 등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식순에서 광업소 사장의 인사말을 글로 쓰고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탄광 일은 일대로 진행하면서 행사 준비를 하는 것이어서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한달 뒤, 드디어 탄광촌에 정식 철도가 개통하게 되었다. 역사에는 이미 화물열차가 출발할 준비를 마쳐 놓았다. 철도 개통식. 중앙에서 높으신 분들도 내려오고, 인근 지역의 도지사, 군수, 면장 등 많은 사람들이 광업소 식장을 찾았다. 이 날만큼은 탄광작업도 중단하고 개통식에 참여를 하게 된다.

용현이 신경써서 준비한 인사말을 사장이 비교적 부드럽게 읽어나간다. 이어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진다.

" 여러분이야말로 이 어려운 시국에 나라를 살리는 불굴의 산업용사들입니다. 여러분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러분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밝게 빛날 것입니다."

내빈들의 축사에 광부들의 마음은 자부심으로 가득찼고 박수소리는 광업소 가득 울려펴졌다.

그리고 개통식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기차가 큰 기적소리를 울리며 역사를 떠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로를 따라 탄광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서서 기차를 향해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개통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장으로 향한다.
용현은 한달 동안 신경썼던 일이 잘 마치자 홀가분 해진 마음으로 한 숨을 내 쉬었다.
이런 용현의 어깨를 누군가 다독여준다.

"어? 은사님!! ."

"자네가 이번 일에 수고를 많이 해 주었다고 들었네. 참 고생많았네."

용현의 은사님.. 용현이 어렸을 때 학문을 가르쳐주었던 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몇 지역의 군수를 지냈다.

" 어쩌면 군수 생활에 이번 개통식이 마지막 행사가 될 것 같네. 시장에서 자네 아들을 보았는데, 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벌써 글씨를 배웠더군. 참 기특하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자네 아들이었군."

용현은 말 없이 미소짓기만 한다.

"어디 가서 잠깐 담소 좀 나누세. "

용현은 생각지 못했던 만남에 은사님을 모시고 시장으로 향했다.

철도 개통식이 오랫동안 추억 속에 담아두고 있던 은사를 만나게 했다.




 연결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온다.


 연결은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오기도 한다.
 인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일은 또 어떤 인연이 만들어 질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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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번째 이야기를 연재하게 됩니다.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상상을 더하여 소설로 스팀잇에 적어봅니다. 이름은 가명이며, 세부적인 사건들에는 상상이 가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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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광촌 꿈이 시작되다. https://steemit.com/kr-pen/@jsquare/66vya7-1
#2 현실 그 이상의 가치를 바라보며 https://steemit.com/kr-pen/@jsquare/6ww8b6-2
#3 장마가 지나가면 https://steemit.com/kr-pen/@jsquare/3qbca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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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이군요. 지금 세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시대일텐데 이야기를 잘 진행시키고 계시군요^^

안녕하세요. 지인의 이야기 가운데 어린 시절 이야기인데..그 시대의 상황들을 살펴보게 되네요. 생각보다 많은 일들과 의미들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 관심가져주시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TV프로그램에서 탄광촌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삶, 사람들의 이야기, 땅의 이야기..
모두가 흥미롭더라구요. 그때의 탄광과 지금의 탄광.
그 빛나는 시기는 다르고, 지나가기도 했지만..
그안에 있던 사람들의 검게 빛나던 얼굴과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았으면 합니다.

글을 써가면서 탄광촌이 전쟁이후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꿈과 아픔이 공존한 곳이 탄광촌 아닌가 싶습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탄광촌에는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겨 있을거라 생각되네요.

와.. 이전글로 가서 봐야겠어요~~~ 1회부터~~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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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용현이 새로운 일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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