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오후 @jjy

그제 저녁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컴퓨터를 끄고 살다보니
마치 외딴 섬에 혼자 떨어진 느낌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살짝 살짝 스팀잇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시력도 안 좋아
조그만 화면을 오래 보고 있지 못해 여간 불편하게 아닙니다.

덕분에 그동안 쌓아둔 책을 차례로 읽고 필사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면
접어두기도 하고 빗소리를 들어봅니다.

어떤 이는 빗소리를 가리켜
천 만말 옥구슬을 쏟아 붓는 듯
하다고 노래했는데 저에겐 불편함이 더 크니 아직 멀었다는 증거입니다.

어제도 물 폭탄 투하로 사람들 왕래도 별로 없고 잠시 비가 멎으면
빼꼼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소나기의 기습에는 스위치를
끄는 거 말고는 겁쟁이에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조종천은 순한 흐름을 잃고 황토 빛 급류가 휩쓸고 지나갑니다.
그동안 곁에서 함께 자라던 갈대들도 허리춤을 낚아 챈 물살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립니다.

산그늘에서 한 발씩 다가오는 가을 마중에 조심스럽게 물이 들던
단풍도 놀라 떨며 주춤거리고 여름부터 하던 교량공사도 일단 멈춤
입니다.

농사짓는 이웃들도 비가 멎으니 잘 익은 고추 떨어진다고 걱정이고
김장배추 주저앉기 전에 영양제 주어야 한다고 서둘러 일어섭니다.
밀린 빨래 세탁기도 돌리고 우산도 펼쳐 널고 왠지 눅눅한 기분에
운동화도 바람을 쐽니다.

멎었던 하늘이 또 굵은 빗방울을 떨어뜨리다 멀리서 비치는 햇살에
어디론지 달아납니다.

마음 놓고 컴퓨터로 포스팅 하고 있으니 숨이 트이는 기분
삼년 가물엔 살아도 석 달 장마엔 못 산다는 말 요즘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은 이대로 날이 개면 좋겠습니다.
스티미언님들의 마음도 활짝 개인 날이기를 바랍니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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