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사진
사진@jjy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기위해 갤러리를 클릭하는 순간 조그만
글씨가 튀어나온다.
좋지 않은 시력으로 실눈을 뜨고 읽어 보니 디바이스에 저장 공간이
부족하니 파일을 삭제하기 바란다는 경고 메시지다. 일단 급하니까
무시하고 다음에 하면 될 거 같아 메시지를 취소하고 다시 시도한다.
그러나 기계도 더 이상 양보할 뜻이 아닌지 똑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하는 수 없이 몇 개의 파일을 삭제한다. 우선 다운로드한 한글 파일과
클립보드 그리고 메모지에서 몇 가지를 삭제하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지
갤러리도 순순히 빗장을 열어준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고 핸드폰에 설치된 카메라가 성능이 좋아지면서
사진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필름을 사용하던 시절 같으면 신중하게 한
장을 찍을 일도 그냥 몇 번을 눌러 대면서 같은 사진이 몇 장씩 된다.
지금은 그렇게 넘치는 사진도 예전엔 무슨 날이 되어야 찍었다.
아기의 돌 백일 사진이나 약혼기념 결혼식 사진이 거의 전부였다.
시골집 안방이나 대청마루에는 커다란 액자에 가족구성원들의 한 때를
말해주는 사진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르신 근엄한 표정을 하신 할아버지와 반듯한 가르마에 쪽을
찌신 할머니의 흑백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우리 형제들에겐 남들 다 있는 돌 백일 사진 한 장이 없었다.
내 위로 태어난 형제들을 다 잃고 손이 귀한 집에 겨우 붙들었다는
나를 사진기 앞에 절대 못 세우게 하신 할머니 덕이었다.
그 사진이라는 게 원래 혼을 쏙 빼 간다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똑같이
나오는 거야. 사진사가 시커먼 포장 속으로 들어가서 한 손에 네모난
쇳경을 들고 여기 보세요 하잖니? 그때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나면서
귀신도 모르게 혼이 빠지는 거란다.
그리고 나는 국민학교를 들어갔고 할머니의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다.
그 결과 할머니 돌아가시고 막내 작은아버지네 사촌들만 돌쟁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도 소풍을 가서야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평안남도 순천이 고향인 백성연씨는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다녀왔다.
이번 상봉에서 백씨는 남동생의 부인, 여동생의 남편과 조카를 만났다.
백씨가 찾던 남동생과 여동생은 지난 2000년도에, 여동생은 올해 초에
사망했다. 이번 방북에서 죽은 줄 알았던 백씨의 오빠와 피란 와서
헤어진 언니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날마다 기억 속에 그리던 고향집엔
지금은 조카가 살고 있다.
이번에 받아온 서너 장의 사진 백씨 아버지, 여동생 부부와 오빠의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버지와 여동생은 백씨와 똑같이 닮았다.
그 사진들 중에 누렇게 빛이 바랜 사진을 집어서 들여다보는 팔순을 넘긴
딸이 “우리 아버지”하고 낮은 소리로 가만히 불러본다.
저도 필름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생때라 필름 한통 사서도 아껴 찍고 신중하게 찍었었지요.
지금과 정말 다른 그 무언가가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그립기도하고 지금이 감사하기도하고 그렇습니다.
그땐 셔터 한 번 누르길
신중하게 했지요.
필름값도 있고 사진관에 맡기면
금방 돈 올라가는 소리가 났지요.
예전 흑백사진이 그리울때가 많네요~^^;
왜 그렇게 지나간 시절
오래 된 물건은 정이가는지요.
물건이 오래되고 아껴주면 영혼이 깃들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예쁜 요정이 깃들어서 더 정이가는듯~ㅎㅎ
빛바랜 사진 몇 장을 간직한 이는
나름 행복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행복은 그렇게 작은 것에
깃들어 있답니다.
드러나지 않게
사진은 바래도 추억은 바래지 않지요.
오히려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추억에 세월의 무게가 실리면
더 귀한 보물이 되지요.
빛바랜 사진을보면서 그때 시절을 가끔 생각하곤한답니다^^
왜 지나간 것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지요.
아쉽기도 하고
뭉클 합니다~^^
팔순이 넘어서야 손에 넣은 아버지 사진
얼마나 애통할까요.
헤어져 사는 동안 맘 조리셨던 아버지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