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y의 샘이 깊은 물 - 해후(邂逅)

in zzan4 years ago

img085 대문.jpg

사람이 길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 사람이 길을 지우고 또 새 길을 만든다.
지워지고 묻혀있던 길을 중장비의 거친 숨이 찾아낸다.

붓꽃, 엉겅퀴, 애기똥풀 같은 들꽃들이 쓰러지는 거친 발자국을 따라
석물이 갖추어진 묘소에 이르렀다.

절을 하고 물러나자 중장비의 억센 손이 육중한 석물을 가볍게 들어
한 곳에 모으고 봉분 한 가운데를 찍어 백년에 가까운 깊은 잠을 흔든다.

내광을 열자 할머니의 유골이 아직 쓰지 못한 노잣돈을 그대로 지니고
반듯하게 누워계시다. 아직도 떠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노자 없이도
갈 수 있는 곳이었는지 모르겠다. 옆자리에 더 오래 계시던 할아버지도
햇볕아래 누런 골격을 보이신다. 생전에 그렇게 엄하셨다던 분이 손자들
앞에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신다.

작은 상자에 한지를 깔고 수습한 유골이 차례대로 닮기고 손자들이
한 분씩 품에 안고 새로 조성한 묘역을 향해 산을 넘는다. 길섶에 예쁜
엉겅퀴를 꺾어 할머니께 꽂아드린다.

젯상 앞에 세울 손자 하나 못 보고 가신다는 한을 품고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는 이렇게 소원을 이루셨다. 장손의 품에 안겨 형제들 곁에
마련한 새집에 묻히셨다.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잠시 포도밭 고랑을 따라 마을이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오다 걸음을
멈춘다. 포도밭을 에워싸고 있는 철망이 앞을 막는다. 지난겨울에도
다니던 길이 막혔다.

포도밭을 빠져나와 좁은 밭두렁위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침에 보았던 배추흰나비가 마중을 나온다. 춤사위가 마을로 이어지고
사람이 막은 길을 나비가 열어준다.

마을 어귀에서 산을 바라본다.
“어이구, 이쁜 우리 강아지...”

꿀풀을 들러온 바람이 달다.

20200606_13514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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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큰일을 마치셨군요.
저희도 이 비슷한 일을 해야 하는데 약간 걱정입니다.
보라색 엉겅퀴 꽃이 참 인상적입니다.

시작하면 다 하게 되어있습니다.
장비도 있고 워낙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니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따라 다니는 게 일이었어요.

할아버님이 좋은 세상에서 더욱 더 좋아하실 💙
고생 많으셧어요~

항상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2020 스팀 ♨ 이제 좀 가쥐~! 힘차게~! 쭈욱~!

우리 할아버지
손자는 못 안아보셨어도
손자 품에 안기셨으니
소원 이루셨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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