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다 써버린 인생의 행운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회사 사람들과 '병원'에 입원한 기억들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약 한 달간 사단의무대에 입실한 적이 있었다. '봉화직염'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행복한 한 달이었다. 당시 입실 덕분에 나는 군대의 꽃이라는 '유격훈련'을 한 번도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유격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은 '훈련소'에서 하는 유격훈련은 유격훈련이 아니라고 하니, 나는 1급으로 현역을 갔지만 유격훈련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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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군인은 군생활 동안 많게는 3번, 최소 1번의 유격훈련과 마주한다. 피할 수 없는데, 피할 수 없다고 즐길 수도 없는 그런 훈련이다. 나에게도 3번의 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두 번은 GOP에 배치되면서 지나갔다. 마지막 한 번은 정말 ‘빼박’의 경우가 있었다. 박격포 사격대회를 앞두고 있던 때라 중대장이 연대장에게 건의해 우리 중대는 유격훈련을 안 뛰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격을 제끼면서까지 준비했던 사격대회마저 나는 봉화직염으로 사단 의무대에 입실하면서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유격에 비할 건 아니지만, 박격포 사격대회도 나름 빡세다.)

물론 한 달 후 자대로 돌아왔을 때 고참들의 갈굼이 있었다. 심지어 동기들도 나를 갈구었다. 후임병들도 나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그때는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제대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 그런 갈굼따위 아무것도 아닌 기억이다. 어쨌든 나는 유격도 안하고, 사격도 안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위의 유격훈련 경험자들은 ’군대 생활의 꽃’을 경험하지 않은 자가 뭐가 자랑이냐고 하는데... 자랑스럽지 않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 정도의 행운을 갖기란 쉬운게 아니다. 유격훈련도 제끼고, 사격대회도 제끼고, 다른 군인들이 갖다주는 식사를 하면서(봉화직염이 심한 경우에는 깁스를 해야한다), 낮에는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을 읽고, 밤에는 전광렬과 황수정이 나왔던 드라마 ’허준’을 보고, '허준'이 끝난 후의 새벽에는 (서로를 아저씨라고 부르는)환자들끼리 모여앉아 ’마피아 게임’을 했던 2000년의 여름은 지금 돌이켜 볼 때 더 행복하다. 너무 무료한 탓에 글이라도 쓰자 싶어서, PX에서 노트와 펜을 구입해 밤새 글을 썼던 것도 그때 뿐이었다. 오늘처럼 무지막지하게 더운 날에 떠올리니, 더 그리운 시간이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여름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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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is impossible ^^: 5분뒤에 무슨일이 날줄을 새까맣게 모르면서도 여직껏 살아왔다는 .....

저도 한번. 팔에 봉화직염에 걸려서 기브스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무지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입니다. ㅠ

저도요... 제 경우엔 심지어 의료사고로 생긴 봉화직염. 이었다죠... 부들부들;;; ㅠㅠ

진짜 요새는 어딘가에 갇혀있고 싶을 때도 있어요. ㅋㅋㅋㅋㅋ 폰 금지 인터넷도 쓰기 어려운 데라면 어디든...

저랑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네요! 글을 정말 잘 쓰십니다. 배워갑니다.

간만에 콜라보래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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