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케빈으로부터 (5)] 나의 댄스 타임

in #kr6 years ago (edited)

나의 댄스 타임

   S o u l  e s s a y   F r o m  K e v i n  


from kevin 대문.jpg

 케빈이 학교에서 열리는 연말 댄스파티에 함께 갈 파트너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맘에 든 여학생과 겨우 성사된 합의도 깨지고, 뒤늦게 위니에게 희망을 걸어보지만 위니도 이미 한 학년 위의 인기남과 함께 가기로 약속한 뒤다. 그 상황에서 폴이, 결국 넌 나와 함께 가겠구나, 하고 즐거워할 땐 폴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지만 결국 그게 현실이다.

 우리도 ‘가무’문화는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민족인데, 미국처럼 어릴 적부터 참여하는 댄스파티 같은 건 없는 걸 보면 춤의 생활화가 다른 양상으로 정착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춤을 추는 건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학예회나 운동회 같은 행사에서 보여주기 위한 단체 댄스고, 나머지는 학예회나 여타의 발표에서 보여주기 위한 그룹 내지 개인의 댄스다. 주로 유명한 댄스곡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토양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댄스 그룹이나 아이돌은, ‘누군가가 봤을 때 카타르시스를 주는’ 칼 군무나 각 잡힌 댄스에 능하다.

케빈댄스.jpg

 나 역시 척박한 댄스의 환경에서 자랐지만, ‘보여 주기’식이 아닌 사교를 위한 댄스 타임을 가졌던 적이 있다. (나이트클럽이나 콜라텍, 댄스 클럽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볼 땐 코웃음을 칠 일이다. 참고로 난 그런 ‘댄스’를 기반으로 하는 클럽을 직접 가본 적이 없다. 통탄할 일이다.)

나의 댄스 타임



 먼저 생각나는 일화는 중학교 체육 시간이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합반은 아니었고 남학생 교실에서 꽤 먼 거리에 여학생 교실이 있었다. 함께 소풍을 가는 날 아니면 여학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꽤 신경 써서 분리시킨 환경이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남녀공학을? 할 정도였다.

 우리는 준비 체조를 하고, 여느 때처럼 선생님이 공을 던져주길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나타난 건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 무리였다. 여학생 반을 지도하는 체육 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우리 체육 시간에 합반을 하게 된 것이다. 사춘기가 한창 무르익었던 우리들은 여학생들을 보고 바짝 얼어버렸다. 내게 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그 반에 내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밝고 활달하여 교회에서 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그 애는 소심하기 짝이 없었던 날 보면 인사를 건네주던 교회 친구였다. 난 속으로 그 애를 흠모하고 있었다. 인사를 받으면 그 한 마디와 그 순간 그 애의 표정을 리플레이해 가며 한 주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곤 했다. 그런 그 애가 함께 체육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서구의 아이들이 즐기는 댄스파티를 동경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자신이 댄스스포츠나 어두운 뒷골목의 작은 카바레를 드나들었던 것일까. 그 활동이 사춘기 아이들의 왕성한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배출시켜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 수업의 주제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움직이는 전통 댄스였다. 이름 모를 어떤 나라의 민속 사교 댄스였던 것이다. 선생님은 대강 키에 맞춰 파트너를 정해주었다. 태양빛이 작렬하는 운동장 한 쪽에서 우리는 대열을 맞추어 상대의 손끝을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붙잡고 선생님이 안내하는 동작을 따라하며 사교댄스를 추었다. 음악도 없었고, 소리라곤 아이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와 선생님의 구령 소리뿐이었다.

 난 중학교 때 지독히도 작았다. 그때 아마 150cm 중반 길이의 키 정도 됐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일 년에 10cm씩 폭풍 성장하여 고등학교 졸업 후에 몇 센티미터를 더 보태 180cm를 넘기긴 했지만, 중학교 때만 해도 반에서 키 작은 걸로 1,2위를 다투었다. 물론 그 여자애보다 작았다. 난 그 여학생의 반에서 제일 작은 애의 손을 잡고 뻣뻣한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내가 짝사랑하던 그 여학생은 내 뒷줄에 있었다. 난 그걸 알고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듯이 행동했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선은 그쪽을 향하지 않았지만, 내 온 신경은 그 쪽을 향했다. 그녀가 자의든 아니든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수업 시간 내내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 반이 아니고 다른 반이었다면 그 때의 춤동작 한두 개는 아직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수업 시간 갑작스레 벌어졌던 그 날의 댄스 타임은 짝사랑의 갈증만을 더 깊게 느끼도록 했을 뿐이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댄스 타임은, 대학 시절의 스포츠댄스 강의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은 교육대학의 특성상, 남학생은 전부 여학생과 짝이 되었다. 몇몇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짝을 했다. 자이브와 차차차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강좌였다. 수업 끝날 때까지 한 명의 짝과 춤을 배우고, 시험까지 치는 과정이었다. 난 다행스럽게도 같은 과의 제일 친한 친구와 짝이 되었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어서 춤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난 자이브와 차차차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수업의 백미는 시험이었는데, 시험은 댄스 대회 형식으로 치렀다. 시험 날에 체육관은 거대한 댄스홀이 되었고, 우린 정장과 구두, 그리고 여학생들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채 등번호를 붙이고 댄스홀로 나간다. 1~3라운드를 거치는 동안, 최종 라운드까지 살아남으면 A+점수를 받는다. 20개의 커플 중에 1라운드에서 14커플이 살아남는다. 2라운드를 거치며 최종 라운드에는 여섯 커플만 올라간다. 1라운드에 머문 학생들은 C학점, 2라운드는 B학점을 받게 된다. 무척 흥미로운 시험 방식이었다.

 시험을 며칠 앞두고 기숙사 곳곳엔 춤판이 벌어졌다. 기숙사에 1학년 학생들이 제일 많다보니, 댄스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기숙사 구석구석 스텝을 밟을 수 있는 공간은 춤을 추는 커플들로 복작거렸다. 우리 커플이 선택한 곳은, 기숙사 지하 세탁실이었다. 커다란 타일이 박힌 바닥에 한쪽엔 세탁기가, 한쪽엔 탁구대가 있는 큰 공간이었다. 눅눅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 많이 띄지 않고 작은 소리로 음악을 틀어놔도 잘 들린다는 이점이 있었다.

 우리가 내려가니 이미 한 커플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남학생은 키가 작았고 나보다 어렸지만 한 5살은 많아 보이는 노안이었다. 어깨 뽕이 한껏 들어간 아버지의 정장을 입고 연습 중이었다. 그의 눈빛은 이글거렸다. 차차차 스텝을 밟을 때마다 골반이 몸에서 분리되지나 않을까, 할 정도로 현란한 몸놀림을 보였다. 상대 여학생을 보니, 남학생의 열정이 이해되었다. 평소 예쁘고 참한 모습이 눈에 띄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남학생보다 큰 키고, 볼륨감 넘치는 몸이었지만 무척 민첩하게 움직였다. 우린 그 커플의 댄스에 매료되어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남학생의 작은 키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눈빛과 현란한 골반은 그를 실제보다 더 큰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우리 커플은 댄스 아마추어에 불과했지만, 그 커플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할 거라는 확신을 갖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 세탁실에서 피어나는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댄스의 불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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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껏 풀이 죽은 채로, 우리도 곧 연습을 시작했는데 그 커플이 보여줬던 댄스의 수준에 압도된 탓일까, 생글생글 잘 웃던 내 파트너가 나의 잔 실수를 지적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내 파트너는 망신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시험 점수에 대한 걱정, 댄스를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뒤섞여 극도의 긴장 상태로 빠져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말다툼을 하고 각자의 방으로 갔다.

 주말이 지나고 우린 다시 만나 화해를 했다. 그리고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댄스로 인해 우린 평소에 서로에게 보지 못했던 면을 보고 놀랐지만, 그런 갈등이 우리 관계를 해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사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드디어 댄스 대회가 시작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 멋지고 아름답게 꾸민 스무 쌍의 댄서들이 댄스홀에 모였다. 우린 지급 받은 등번호를 서로의 등에 붙여 주였다. 첫 번째 라운드는 자이브. 노래가 끝날 때까지 다른 커플과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차근차근 스텝을 쌓아갔다. 1라운드 통과 명단에 호명되었다. 2라운드는 차차차였다. 몇 커플이 탈락한 탓에 공간이 좀 넓어졌다. 2라운드가 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우리의 스텝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2라운드 진출은 우리에게 분명 B학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의 스텝엔, 서로를 의지하며 익숙하지 않은 리듬과 동작에 몸과 마음을 맞추며 보낸 시간들이 녹아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의 지하수가 오랜 시간 떨어지며 만들어낸 석회 동굴의 석순처럼 한 동작 한 동작은 희열과 갈등이 산화와 풍화의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점수와 걱정을 벗어 던지고 우린 그 순간 춤에 빠져버렸다. 음악이 끝나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열정은 춤사위에 녹아 산화되어 버렸고, 그래서 우린 홀가분했다. 이대로 끝나도 괜찮았다.

 최종 3라운드로 올라갈 6팀에게는 선생님이 한 팀씩 간단한 심사평을 덧붙였는데, 우리 팀에겐, “표정이 예술인 팀이에요.” 라는 평을 해주셨다. 나와 파트너는 춤에 몰입한 나머지, 춤을 추는 내내 웃음이 날 정도의 무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3라운드는 각 팀의 창작 안무를 넣어 만든 댄스를 추는 라운드였다. 우리에게 점수는 별 의미 없었다. 그저 즐길 뿐이었다. 세탁실에서 봤던 그 커플 옆에서 우린 우리만의 춤을 추었다.

 춤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다른 목적과 동기가 섞여들곤 하지만, 춤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그것들은 모두 풍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폴이 댄스파티에서 억지로 칼라에게 끌려 나가 춤을 출 때) 그건 저녁 뉴스에서 내가 본 것만큼 슬픈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폴이 스스로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세 번째 펀치를 마실 쯤엔, 폴은 그의 일생 중 가장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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섈위댄스 너무 재미나게 봤는데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장면이었겠습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영화 장면처럼 채색되기도 하죠ㅎㅎ

춤을 즐길때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정말 그때의 즐거움에 충실해지는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씩 음악틀어놓고 막춤을 추곤 합니다

라나님의 막춤이라! 상상만해도 즐겁네요ㅎㅎ

옛날 kbs2tv에서 하던 케빈 다시금 재방송은 안하겠죠..

네 재방송은 안할 거 같아요. 화질도 워낙 떨어지고 해서요. 전 예전에 구해둔 파일로 다시 봅니다ㅎ

학창시적 춤에대한 추억을 다 하나씩 가지고 있군요..ㅎ

레이첼님도 춤에 대한 추억이 있나봐요ㅎ

중학교 음악시간에 댄스스포츠가 너무 스트레스였던 추억이 있습니다..ㅋ 제가 너무 몸치여서ㅜㅠㅋㅋ

ㅋㅋ 즐기지 못하면 춤이 아닌데 말이죠. 강제 댄스였군요ㅎ

하하핫 눈은 두지 않지만 온 몸의 세포가 신경쓰는 그거 어떤건지 딱 와닿아요!!!!!
대학다닐 때 나중에 나이들면 크루즈 타고 춤을 춰보겠다는 꿈을 갖고 남편이랑 스포츠댄스 수업 신청을 했었는데 제 남편은 지독한 몸치더라고요 ㅜㅜ 정말 매번 혼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스트레스 받길래 같이 삭제했어요. 지금이라도 같이 배우면 좋겠는데 혼자 배우라고 해서 어쩌라는건지 ㅡ.,ㅡ
결론은.. 부럽습니다!!!

하하. 춤에 선천적으로 소질없는 부류가 있더라구요. 저같은 부류요ㅋ 소질없어도 댄스스포츠는 반복하면 봐줄 정도까진 되더라구요. 남편분과 꼭 함 더 도전하시길요ㅎ
크루즈 위에서 춤이라! 멋진 소망이네요^^

자이브와 차차차라니. 쏠메님의 또다른 매력을 알고 가네요. :)

지금 그 스텝들, 다 생각이 나지 않네요ㅋ

즐거운 스팀잇 생활하시나요?
무더위야 가라!!!!

네 무더위 안녕!!^^

글을 보면서 크게 두가지에 놀랬어요.
먼저 최종라운드까지 갈 정도의 춤을 춰내셨다는 것이 놀라웠고, 150cm의 키가 180cm까지 컸다는데 놀랬어요.ㅋ

전 가무엔 젬병입니다.ㅜㅜ

최종라운드까지 간 건 저도 놀란 일이구요, 고1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고3때 복도에서 만나면 무척 놀라워했지요. 고1때 164cm로 두번째로 작았었는데 고3때 178cm이 되어 있었으니까요.ㅎㅎ

어 정말 저 사진 보니 쉘위댄스 다시 보고 싶네요.. 참 재밌게 봤었는데..ㅎ
저도 중학교때까지 제일 첫줄에 있다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키가 쑥 컸답니다. 키가 너무 빨리 크면 홍채가 못 따라가서 눈이 나빠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구요.ㅋㅋㅋ
정말 여유가 좀 있으면 춤은 좀 배우고 싶어요.. 왠지 기분이 넘 좋을 거 같은.ㅎ

키가 갑자기 자라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있지요. 홍채 얘긴 처음 접하네요. 전 폐가 몸이 자라는 속도를 못 이겨서 무리가 간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마르고 키 큰 남자에게 많이 나타난 다는 폐기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장동건이 걸렸던 이 폐기흉을 저도 겪었지 뭡니까.ㅋ
때때로 춤에 몸을 맡기고 세상사는 다 잊고 싶어지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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