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페미니즘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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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알라딘



페미니즘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과 이유 모를 죄책감을 덜어준, 소중하고 고마운 책. 생각해보지 못하고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재현하던 현실의 일부를 바로 보게 만든 부지런한 사유가 담긴 책이다. (시의성 측면에서 약간의 아쉬운 점 있지만!)

모든 페미니스트의 입장과 견해가 동일하지 않고, 하나의 집단으로 바라보던 편견으로부터 일깨워주고, 결국 페미니즘이란 남성 언어로 표현되는 이분법적 힘의 논리, 우월성을 가르고 권력의 힘을 지향하고, 적을 찾는 관점 밖으로 나아가 존재론적 다양성을 존중 포용하는 방식으로 이 세계를 새로이 해석하는 인식론이라는 점. 그 점에서 앞으로도 개인으로서 페미니즘에 관련한 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주눅들 필요 없고, 우리가 원하는 게 결국은 다르지 않는다는 것. 결국 페미니즘도 감사와 사랑과 존중의 언어라는 점이 나를 기쁘게 한다.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고 모르는 것을 배우고 겸허하자. 머리가 아프고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묵살하거나 단순화 시키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자. 나 역시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진 오만하고 무지한 자가 언제든 될 수 있으니!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목소리’의 잠재적 주인공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머리말, 11p


첫째, 성별 분업에 대한 문제 제기로서 여성주의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성주의는 대게 성별 분업, 즉 성차별에 대한 자유주의적 평등 차원의 문제 제기다.

두 번째는 사회, 인간, 자연을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요소 혹은 분석과 파악의 원리로서 젠더이다. 우리가 관계, 사회, 학문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인식할 때 젠더는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젠더 시각에서 사회를 분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여성주의의의 문제 의식이다.

세 번째 접근은 성별을 ‘초월’하여 새로운 대안적 인식론으로서 여성주의다. 새로운 세계관, 인식론, 인식 방법론으로서 여성주의다. 대안적 인식론으로서 여성주의는 기존 사회의 궤도 밖에 존재하면서도, 사회의 궤도 수정을 돕는다. 인식 방식을 선택된 언어 외부에서 찾는다. 선택 밖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14~15p, 머리말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현실에 ‘반대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현실을 살 수 있다.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p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사고는 낡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현실을 파악하기에도, 변화시키기에도 불가능한 체계(paradigm)이다. 기존의 모든 국가, 공동체, 종교 등 정치적 행위자의 갈등은,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들 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이제 더 이상 남성의 시각으로는 성차별 문제는 물론이고, 빈부 격차, 환경 파괴, 폭력, 인종 증오, 근본주의 같은 인류가 직면한 고통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남성 중심 사고의 기본 구조는, 세상을 인식자를 중심으로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이분법이다. 이분법 사유에서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타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타자성은 동일성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고, 우월한 것만이 자율적으로 기능한다. 2, 3, 4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모든 정체성은 차이를 가로질러 형성된다. 여성주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미 체계 중 하나이며, ‘여성주의자’ 역시 나를 설명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여성주의는 세상 모든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며, 그럴수도 없다. -28p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성차별적 언어들이 개선되고 있다. 이는 단지 개별 단어의 표현뿐만 아니라 문장 구조, 사유 방식의 변화까지 동반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대개 남성들은 인과 관계나 의사 전달 위중의 말하기 방식에 익숙하지만, 여성들은 원칙적이기보다는 맥락적이고 공감하는 말하기 방식에 능하다. 이제까지 여성들의 말하기 방식은 열등하건나 비논리적, 사적이라고 비하되어 왔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여성적 방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3~84p


인간의 개념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인간의 권리인 인권은 특정한 사회가 어떤 조건을 지닌 사람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 역사의 진보는 인간의 범위가 확대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인권이 부여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인권은 사회적 투쟁 속에서 경합하는 매우 정치적인, ‘움직이는’ 역동적 가치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 인권 의제로 상정되고 논의되는 것은, 피해 당사자들의 지난한 투쟁의 산물이다. -154p


기존 나의 세계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현실이 나타났을 때,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 하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된다’. 다른 방법은 자기 단절을 통해 자신을 현실에 개방하는 것이다-214p


역사와 문화를 초월하여 분석 과정에 선행하는 동일한 집단으로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여러 사회 관계의 현장에 진입하기 전에, 이미 성적, 정치적 주체로 구성된 남성과 여성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와 관련된 지식에 대한 판단 역시, 그 지식이 구성된 사회에 대한 맥락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성에게 성은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거나 동일한 방식으로 억압적인 것이 아니다. 이 입장은 성매매는 근절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매매를 젠더 모순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234p


폭력은 원래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사회 운동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파악해 그것을 ‘제거’하고 제약하는 것이다. 사랑과 폭력은 원래 같은 의미지만, 특히 상대방의 상태와는 무관하든 점에서 더욱 비슷하다. -274p


나의 실천 대상 범위는 기껏해야 나 자신이다. 여기서 ‘나’는 사회와 대립되는, 동떨어진, 독자적인 개인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 지점으로서 ‘나’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서로에게 굴복당하거나 서로를 선택하는 자아들의 연속체다. 삶은 언제나 막다른 그러나 꺾어진 골목과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고유한 생물학적인 몸이 아니라 물이 끓듯 매순간 의미를 생성하고 휘발하는 투쟁의 장소이며 외부와 구별될 수 없는 존재이다. 사회가 내게 ‘각인’하는 것, 이에 대한 나의 수용, 저항, 협상, 반응 사이에 내가 존재한다. 바다 위에서 세상을 보면 인간은 서로 상관없이 각자의 섬에 살지만, 바다 밑에서 보면 섬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몸은 세상과 타인에게 열려 있다. 생물이 사회에 적응해 왔다면, 이미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은 개별적이지 않다. -288~289p



마지막 나의 코멘트는
'두려워하지 말아요. 슬픔과 분노는 기대하고 나아갈 곳이 있다는 의미니 좋은 거에요. 타인의 진화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화와 확장에만 책임이 있어요.


p.s. 저녁은 걸렀지만, 독서모임하고 행복이 솟아나는 밤

-2022년 3월 6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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