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뒤를 보시고, 나는 앞만 보고 달린다.

in #kr6 years ago (edited)

주말에는 대구 부모님댁에 다녀왔다. 날이 너무 더워, 마당에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작은 풀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놀고 있으니, 어느새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아이들 곁에 오셨다.


IMG_1631-horz.jpg


"할비~~~"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할아버지를 부른다.
할비...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는 은퇴를 하셨다. 은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다니시던 진빵가게에서 짤리신 것 뿐이다. 최근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다행히 일을 조금 쉬셔서 그런지 살이 조금 찌셨다.

위선종이라고 들었는데, 부모님은 스트레스에 민감한 내가 신경이 쓰일까봐 병원에서 진료 받은 얘기를 하지 않으신다. 어머님도 자궁경부암 주사를 맞으셨다고 한다. 진료중이라고 하는데... 역시나 나에겐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으신다.

부모님은 그렇게 무거운 짐을, 항상 본인들만 지고 가려고 하신다. 나도 이제 두 아이의 아빠인데, 부모님 눈에는 나도 아직 아이인가 보다.

만감이 교차한다.

첫째가 두살, 세살 때에는 명절에 집에가도 할비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남들이 쉬는 날에도, 진빵집에 돈을 벌러 가셔야 했다. 그 사장이란 놈은 병원 진료 때문에 며칠 빠진 아버지를 명퇴시키고, 실업급여도 지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얼마나 손녀와 놀고 싶으셨을까...
.
.
.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날것 같다.

몸이 아프고... 강제 명퇴를 당하고, 이제 막 삶의 후반에 접어들고서야 손자, 손녀를 보신다.

아버지는 둘째 손자를 좋아하신다. 거리낌 없이 자기에게 궁둥이를 내밀며, 할아버지 품에 앉으려고 한다. 삼일 동안 짧은 방문이었지만, 아버지는 내내 손자를 찾으셨다.

여전히 반지하 미싱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도, 수시로 손자를 안고서 이리저리 동네에 마실을 다니신다. 손자가 놀러왔다는 걸,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으신것 같다.

나는 아버지 나이가 되면 무슨 재미로 살까?
저렇게 손녀, 손자 보는 재미?

직장에서 10년차. 이제는 이런저런 실적들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는 나이다. 나는 솔직히 일이 재미있다. 책도 쓰고 강의도 하러 다니면서, 왠지 주변에서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에 대해 칭찬 받는 기분이다.

남자란 그런 동물인가.

조직에서 인정받으며, 앞만 보며 달리게 되는 존재. 나도 아버지처럼 일만하다, 제일 중요한 가족들과의 시간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과 가족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술과 일만 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것 같다.

아버지는 뒤를 보시고...
나는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
.
.

앞으로 나는,

어디를 보고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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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부모마음이야 비슷하지요

그렇더군요.. 마음이 짠했습니다. ㅠ

왜 부모님들은자기 아프다고 얘기를 안해주실까요 ㅠㅠ 부모님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거 같아요
그 사장놈움 어떻게 먹일 방법이 없을까요 괴씸하네요

그렇지요? 사장놈은 잊었습니다. 하... 있는 놈들이 더 하더군요.
돈도 상당히 많은것 같던데... 참... 말이 안나오더군요.

부모님들은 저희가 더 다가가야 하는것 같네요.
그럼 못이기는척 해주시는 경우가 많으니 ^^

같이 효도 이어가기 함 할까요? ㅎㅎ

아버지들은 다 비슷한거 같네요
저도 나중에 같은 길을 걷겠죠

예~ 더 좋은 아빠, 더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네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공유해요~

한손에 자녀분들, 다른 한손에 부모님을 잡고
어부인을 따라 전진하시면 될듯합니다.
만고에 진리 중 하나는 아내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ㅋㅎ

명답이네요. 아내 말을 필기를 할까봐요;;;;
출판을 해볼까요? ^^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일들일테고...
너무 멋지게 표현해주셨네요. 뒤를 보는 시간..

^^ 감사합니다.

좋은 영감들을 많이 받으셨다면

저도 행복합니다 :)

요즘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가 앞만 보고 달리시다가 멈추신 모습을 보니 너무 외로워 보입니다 .. 잘 해드려야겠어요 ...

그렇지요~

잘해드려야지요~

함께 할 날들이 많이는 남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할비가 되셨더라구요.... 아버지께서...

나이드신 부모님 보면 짠하죠....
자주 가셔서 아이들 많이 보여드리세요..
그게 젤 큰 효도일듯 싶어요..

그런가요? ^^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효도를 지금에라도 많이 해야겠습니다.

그게 아버지의 인생인 듯 합니다.
저희 가족도 똑같네요.

그렇지요? 항상 알면서도 못하는게 효도일까요?
몇 번이라도 더 가족에게 잘해야겠습니다.

균형잡힌 삶을 사실거라 생각됩니다
8월의 첫날도 화이팅입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달리는데 뒤돌아볼 필요가 있을까요?
결승점이라고 보이는 곳이 있다면
뛰어가고 봐야지요.

그렇지요.

일단 저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가족들도 조금씩 챙겨보며 여유 있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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