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만 가까운 사람들 1 - 신숙주의 유언

in #zzan5 years ago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 1 - 신숙주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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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두는 단연 일본의 무역 도발이다. 한·일 관계는 수교 후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것 같아. 한국과 일본은 참으로 묘한 역사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애증의 세월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솔직히 애(愛)보다는 증(憎)이 더 우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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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일본은 백제와 친밀했지만 신라와는 진저리가 나도록 싸웠지. 고려 말 창궐했던 왜구들은 고려 멸망의 원인으로까지 지목된다.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을 겪었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끝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어. 일본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젓는 건 조건반사에 가까울 거야. 네가 언젠가 “이유는 모르겠는데 일본은 그냥 싫어”라고 토로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한·일 사이에는 터무니없다 싶은 오해도 많이 도사리고 있어. 일본의 큰 서점마다 있다는 ‘혐한’ 코너에는 한국에 대한 어이없는 험담과 거짓말이 그득 쌓여 있지. 일본인들의 이런 모습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아빠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지닌 편견과 무지도 적지 않다고 봐. “우리가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해주었다”라는 자긍심은 가질 수 있지만 일본이 우리가 전해준 문물로 겨우 나라꼴을 갖추고 미개국을 면했다는 주장은 역사 왜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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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학식과 인품을 겸비한 분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그분이 “일본의 여성 기모노 뒤에 단 방석(?)은 언제 어디서건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 차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해서 기함을 한 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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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무지는 두 나라 사이에 놓인 거리를 더욱 멀고 험하게 만들 뿐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전쟁’으로까지 표현되는 최악의 한·일 관계에 즈음해서 양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 서로 간에 우정을 쌓으며 이해를 넓혀 벗이 되고 동지로 남았던 이들의 얘기를 몇 주간 들려주고자 한다.

신숙주(1417~1475)라는 이가 있어. 세종과 문종의 크나큰 신뢰와 간절한 당부를 배신하고 수양대군, 즉 세조 쪽에 가담해 그를 도왔던 사람이지. 세간에서는 배신자로 일컬어졌고 “여름철 잘 쉬어버리는 ‘숙주’나물의 유래”라는 얘기도 전해지지. 그러나 신숙주는 여섯 임금을 섬기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당대의 명신이기도 해. 우선 그는 언어 천재였어.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류큐(오키나와)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니까. 어려서부터 소문난 천재에다가 곤드레만드레 취해 집에 들어가서도 책을 읽는 노력파였으니 놀라울 것도 없겠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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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년 신숙주는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의 서장관에 임명돼 7개월 동안 일본을 두루 둘러보고 돌아왔어. 이 경험을 바탕으로 1471년 <해동제국기>라는 책을 완성하게 돼. 일본에 다녀온 뒤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신숙주는 자신의 일본 경험과 견문을 매우 상세히 기록했단다. 덕분에 <해동제국기>는 후대의 조선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본인들도 주목하는 자료로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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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 조선 사람들도 일본을 그리 크게 보지 않았다. 1402년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면 일본은, 큼직하게 그려진 조선 아래에 널브러진 작은 섬나라 같거든. 하지만 신숙주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당히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 “동해에 있는 나라가 하나만은 아니나 일본이 가장 오래되고 큰 나라라, 그 땅은 흑룡강의 북쪽에서 시작해 제주의 남쪽에 이르며, 유구국(류큐국)과 서로 접해 있고 그 세력이 심히 크다.”

이해는 정확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거란다. 일본과는 지극히 제한된 교류만 해왔고 왜구들의 습격에 지긋지긋해했던 한반도 사람들은 일본을 인의를 모르는 작은 섬나라의 야만인쯤으로 대했어. 신숙주 역시 일본을 “약속 안 지키고 사나운” 오랑캐로 대하는 관점을 버리지는 못했으나 <해동제국기> 서문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지. “무릇 국교를 맺고 서로 예방하며 풍습이 다른 나라를 어루만지고 접촉할 때에는 반드시 그 정세를 알아야 예를 다할 수 있고 그 예를 다해야 마음을 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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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사회·문화에 대해 두루 기록했어.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천황’의 위상을 상세히 설명하고 일본과의 외교 시 감안해야 할 점들부터 일본인의 사나운 기질, 이를 검게 물들이는 풍습,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사용하는 식생활, 일본 문자 가타가나까지 소개했지. 이를 설명하면서 그는 일본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해(하우봉 전북대 교수, ‘<해동제국기>로 본 신숙주의 일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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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 이전이나 신숙주 이후나 일본에 간 조선 사신들은 일본을 이해하기보다는 문화적 우월감에 빠지는 경향이 강했고, 성리학적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오랑캐의 나라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혔지만 신숙주는 달랐던 거야. 하우봉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어. “일본의 기이한 풍속에 대해서도 담담히 소개할 뿐 야만시하지 않았다. 이는 <해동제국기> 서문에서 언급한 ‘풍습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그 실정을 알아야 한다’는 자세와 서로 통하는 것이다. 일본 풍속에 대한 신숙주의 이러한 가치중립적인 태도는 각 민족의 문화적 독자성을 인정하려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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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신숙주는 일본 ‘천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의 연호(年號)를 그대로 써줬다는구나. 꼬박꼬박 중국 연호를 썼고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그 연호를 수백 년 동안 고수했던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선비로서는 매우 열린 자세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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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일본이 조선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를 다루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들을 도리로 대하면 예절을 차려 조빙하고,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표략을 했던 것입니다.” 도리로 대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교역 상대로 대접해주고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챙겨준다는 뜻도 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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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교역 장소로 공식 허용했던 삼포(三浦)를 통해 입국한 일본인들을 상경시켜 국왕을 알현하는 외교 절차를 밟게 함으로써 외교적으로 조선에 복속시키고, 그 대가로 무역을 허가해주면서 삼포를 무역의 장소로 활용하는(손승철 강원대 교수, 동아시아역사넷 ‘동아시아역사인물 신숙주 편’)” 방안을 제시했어. 이는 조선의 대일본 정책의 근간이 된단다. 약탈자를 교역의 상대로 순화하고 외교를 통해 평화를 가져온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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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면서 임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신숙주의 유언 역시 일본과 관련된 것이었어. “청컨대 일본과의 화친을 잃지 마소서.” 영의정을 지낸 홍윤성이 “이제 신숙주가 죽었으니 만일 일본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 나라 산천의 구부러짐과 바름, 습속의 좋아하고 숭상하는 바를 누가 알 것인가”라고 탄식했듯, 조선 최고의 일본통이었던 신숙주는 “일본을 모르게 될 때” 조선이 겪을 수 있는 환란을 내다보았을 거야. “반드시 그 정세를 알아야 예를 다할 수 있고, 그 예를 다해야 마음을 다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던 신숙주의 말은 지금도 유효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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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도발을 자행하는 일본에 대한 분노는 지당하고 그 역사적 만행에 대한 기억은 천추의 한이다. 그런 일본에 맞서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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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정확하게 알아야 예를 다 할 수 있다는 말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오만을 버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굴종보다 위험한 오만이
자신을 망각하고 상대를 바로 알려는 노력을 미루게 됩니다.

그 결과가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중 하나가 바로 신숙주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가훈을 인쇄한 얇은 책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신숙주가 직접 짓고 썼다고 하는데 본받아야 할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인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물며 국가간에는 그 무게가 더하겠지요.

일본을 알아야 선조들에 원수를 갚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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