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 기묘한 이야기

in #zzan3 years ago (edited)

"오늘 누나 집에서 잘래?"
"얘는 어제도 너랑 있었잖아! 오늘은 누나랑 있자 맛있는거 해줄게"

'저기 제 의견은요??'

"얘 다칠라 당기지 마"
"그러는 너야 말로 손에서 힘 빼"

'아니!! 저기 누님들 말로 좀..'
"하악!"

깜짝 놀라 손을 놓는 누나들을 피해 나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난다. 그리고 뒤 돌아서 한마디 해준다.

"냐~옹"

그렇다 나는 이 동네의 인기남 아니 인기묘다.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길고양이라 불리지만 뼈대있는 도둑고양이 가문에서 태어나 사람은 항시 경계 또 경계 하라는 가훈 밑에서 자라왔기에 뛰어난 판단력과 날렵함, 예민함은 필수요 덕목이었다.

어릴때 아빠는 사고로, 엄마는 누가 음식에 약을타서 그렇게 떠나보내고 남은건 형과 나 둘 뿐이었다. 어린 날 먹이고자 형은 동분서주했고 그런 형을 무척 따르며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커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먹이를 구하러 나간 형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형이 다른 고양이와 정분이나서 하루 이틀 안보일 때가 있어서 그러려니 넘어가려는데, 예감이 너무 좋지 않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부모님때 처럼 보내줘야 하는건가 포기하고 있던 때에, 멀리서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형이다. 비틀비틀 걸어오는 모습이 위태롭다. 비쩍 여윈 몸에 어디서 싸우고 온건지 귀 한쪽 끝이 잘려서 피와 고름이 한데뭉쳐 굳어있다. 상처고 뭐고 그저 살아있다는 반가움 마음에 형에게 한껏 몸을 부빈다. 형도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는지 편하게 기대어 눕더니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우리 개체수의 증식을 막겠다고 무작정 잡아가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그 표시로 귀 한쪽 끝을 자른다는 사실을 나중에 도망쳐나온 다른 고양이게서 들었다. 형도 아마 붙잡혀가서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도중에 도망쳐 나온것 같다. 귀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서 온갖 오염에 방치되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보니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고 겨우 버티며 돌아온 형은 나를 보고서야 안심하고 세상을 떠났나보다.

'경계 또 경계'란 가훈이 괜히 생긴게 아니란것을 어린나이에 깨닫고, 인기척이 없는 곳만 돌아다니며 생존하는 법을 익혀나갔다. 하지만 먹이 구하는게 쉽지만은 않은 현실. 예전에는 사방에 널린게 쥐며, 음식들은 쓰레기 봉투를 할퀴면 쉽게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쥐는 커녕, 음식물 조차도 이상한 통에 담겨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자동차 밑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배가 무척 고팠으나 본능이 그러지 말라고 시킨다. 경계 또 경계. 거리를 두고 숨어서 다른 고양이들이 그것을 맛있게 먹고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살짝 경계심을 풀고 다가가 한입. '냐아아아아옹'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다. 그렇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놓이는 음식에 익숙해져가면서 경계심은 눈 녹듯이 사라져갔다.

매일같이 먹이가 놓이다 보니 냄새를 맡은 비둘기들이 한두 마리씩 찾아오더니, 전기줄 위에 수십 마리가 매의 눈 아니 비둘기의 눈을 하고 먹이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한 마리 정도면 겁을 주거나 잡아먹기도 하겠지만 떼로 뭉쳐 다니니 여간 무서운게 아니다. 그렇게 주도권을 빼았겨 눈치만 보는 나날이 이어졌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수십 마리의 비둘기가 한곳에서 머물다보니 동네 차들이 비둘기 똥에 범벅이 되었고, 화가난 차주가 먹이에 독을 탓던 것이었다. 떼로 죽어있는 비둘기와 몇몇 고양이들의 주검에 너무나 무서웠던 하루 였다. 그날밤 밤새 사람들끼리 말다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뒤로는 먹이가 놓이지 않기 시작했고, 또다시 보릿고래가 시작됐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던것 같다. 눈을 떠보니 사방이 막혀있고 앞에 사람이 보인다. 사람. 놀란 마음에 '하악' '캬아아옹' 온갖 위협을 가하려는데 비틀. 비틀?? 응? 비틀?? 몸에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을 피하는게 먼저라서 사방 팔방 뛰어다니며 난리를 치는데 힘도 안들어간다. 아.. 생각해보니 며칠을 굶었던게 생각이 난다. 아마 굶어서 쓰러져 있는걸 저 사람이 데려왔나 보다. 먹지 못해서 힘이 안들어가는건 이해하겠는데, 웬 비틀? 균형이 안잡히다니?? 그러다 문득 창에 비친 내모습이 보인다. 역시 잘생겼어. 감탄하던 찰나 귀 한쪽이 잘려져 나가있다. 귀 한쪽이.. 내 귀 한쪽이.. 내가.. 내가.. 고자라니!!!! 뼈대있는 도둑고양이 가문에 하나 남은 핏줄인데! 내가 고자라니!!!!!!!!!!!!!

고자가 돼서인가 아니면 고자가 된 내가 무언가를 놓아버린 탓인가 내 성격은 날이 갈 수록 온순해 졌고 먹이도 없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고자 점점 사람들의 손을 타게 됐다. 그래도 아직 야생의 본능은 남아있기에 봄 여름 가을은 그럭저럭 혼자 지냈고 겨울에만 유독 살갑게 구는 내가 밉다가도 귀여웠는지 사람들은 날 품어주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이불 속을 경험하고, '츄르'란 신세계를 맛본 뒤에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종족번식의 본능을 포기하고 아니 포기 당하고 얻은 영화로운 묘생에 흠뻑 취한 나날을 보내며 또 다시 찾아온 겨울. 유독 추운 겨울의 초입이었다. 슬슬 야양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혀로 털을 정갈히 하고 사람들을 찾으러 갔는데, 동네가 조용하다. 사방에는 깨진 유리조각과 굳게 잠겨진 문들. 인기척이라곤 하나 없다. 누나들을 찾아 '냐~~~~~~~옹' '냐~~~~~~~~옹' 열심히 목청껏 울어본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스산한 바람소리뿐. 한참동안 동네를 돌아보았는데 없다 아무것도. 그 흔한 쓰레기 봉투마저. 슬슬 밤이 저물어 가기에 일단 누울 곳을 찾아 헤맸다. 사람들의 손을 타기 전에 늘 다녔던 보일러실을 찾았다.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했던 행동이 아직 몸에 남아있다. 살짝 문이 열려있는 보일러실에 들어가 바람을 피했고 그마저도 없으면 막 시동이 꺼진 차 속에 들어가 겨울을 버텨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보일러실의 온기도 차의 열기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바람을 막아주던 보일러실은 쌓이고 쌓인 냉기에 오히려 바깥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그동안 너무 편한 겨울을 보냈었나보다. '경계 또 경계' 본능을 포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달콤한 유혹에 빠진 댓가가 이렇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음 봄을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기 猫 한 이야기-

Sort:  

아 비록 초반 몇줄에 어그로가 끌리긴했는데, 재미있네 ㅋㅋㅋ

이 글의 교훈
찾는 사람이 있을때 거부하지 말라.
아주 배가 불러가지고 어딜 팅겨.

수능 문제 출제자이신가? 원작자는 그렇게 생각안하고 썼는데 아주 ㅋㅋㅋㅋㅋ

후.....첫 6줄까진 굉장히 흥미진진했는데...뉴무룩..ㅎㅎㅎ

어그로를 끌어야해 초반에 무조건 ㅋㅋㅋㅋ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글보고 생각해보면 사람은 참 잔인함!
강제로 거세라니...
누가 날 고자 만든다고 생각만해도 소름돋네...

고자 만들고 밥먹여주고 재워주고 다해주면 음.. 가능 할수도 ㅋㅋㅋㅋㅋㅋ

오~ 기묘한 이야기. 푹 빠져서 읽었네요~^^

제가 또 할땐 합니다 ㅋㅋㅋ 이걸 읽다니 정말 친절한 파워님 ㅠㅠㅠ

오이형 관찰력이 상당함.
필력도 일취월장해서 조만간 책 내야겠음. 사인해서 한 부 부탁해.

아이고 형의 필력에 비하면 아직 조족지혈 ㅎㅎ

글 좀 써줘 벤치마킹하게 ㅋㅋ

기묘하지만 기이하지않은 일상적인..그러면서 눈에잘들어오는 글입니다 근데 일본여자는 어디있나요 흐흐

오 이걸 읽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흐흐흐 일본여자는 ㅋㅋㅋㅋㅋ 코로나때문에 격리중입니다 ㅋㅋ

하다못대 고양이의 그것까지 상상했는데......응?!!

고양이의 그것이라니?????? 응??

저는 문학작가입니다만 ㅋㅋㅋ

이걸 내가 왜 못봤지
오이형~~~ 오!!!!
원래 멋졌는데.. 필력이 장난아니구만!!!!
오!!! 멋져부러

므흐흐 얻어걸렸음 ㅋㅋㅋㅋ

이것은 네가 읽은 소설책이니?

아니 이것은 나의 소설이다.

맙소사, 넌 너무 잘 써

Coin Marketplace

STEEM 0.27
TRX 0.12
JST 0.031
BTC 61673.68
ETH 2904.63
USDT 1.00
SBD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