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수상할 거라 확신했던 공모전에서 떨어진 후 정신줄 붙잡고 쓰는 따끈따끈한 글

in #zzan5 years ago




수상할 거라 확신했던 공모전에서 떨어진 후
정신줄 붙잡고 쓰는 따끈따끈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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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니들한테 좋은 대학교를 가라는 건 그냥 허투루 말하는 게 아니야. 당시만 해도 어른의 정점처럼 보였던 선생님이 수업 도중 딴소리를 꺼냈다. 흐트러진 수업 분위기를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이 화장을 멈추고 갸웃했다. 그러니까, 니들 힘으로 한번 성취를 경험하면 아, 내 힘으로 되는구나, 한다고. 성공이 뒤따라오는 노력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거지. 대학생을 대상으로 물어봐라. 지금도 대통령 되고 싶은 사람 있냐 하면 서울대 애들이 가장 많을 거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다소 비약적인 말이었지만 교복을 입은 내게는 무엇보다도 살갗에 와 닿는 조언이었다. 스물이 가까워질 즈음, 가장 처음 얻었던 성취는 어중간함이었다. 최 상향으로 지원했던 학교에서는 떨어지고 안전하게 썼던 학교는 빗나간 어중간한 성취. 그래도 대학에 붙기는 붙었으니까, 라며 기쁨을 누리려 할 무렵 불현듯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이 어중간한 성취에 안주해 기쁨을 누린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중간 정도의 성취만 이뤄질까 겁이 났다. 그저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 목적으로 말한 것뿐이었을 말이었을지도 모를 텐데. 이후로도 작디작은 성취를 이룰 때마다 그 말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항상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노력이라는 말이 오로지 단어로 따졌을 경우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슬픔을 슬픔으로만 마주하기 위해 열렬히 힘썼다. 그로 뒤따라오는 절망이라거나 자책 혹은 자괴감에 매몰되지 않는 것.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열정을 바친 만큼은 실낱같은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무려 오늘까지도.

꿈과 현실을 확실히 골라 하나의 쪽으로 타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상대적으로 문예창작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일찍 선점했고 그로 인해 취업의 반절과 로망의 반절을 지니게 되었다. 문예창작과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그렇게 하나씩을 공부하는 이들은 서로에 대한 동경이랄까 부러움이 있었고 나는 상대를 향한 미묘한 감정을 모두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즐겼다. 마음속 어디선가 겸손을 잃은 내가 떵떵거렸다. 교사의 말대로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노력한 결과가 점점 생기는구나, 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마음들. 사실은 어느 정도 안주했던 중간의 결과물일지도 모를.




누군가의 물음에 동화작가를 꿈꾼다고 말했다. 오, 그렇다면 꿈을 위하여 노력한 게 있나요. 그는 자동응답기처럼 예상 질문을 했고 나는 면접 보듯 술술 답했다. 네, 제가 동화를 좀 쓰거든요. 나름 동화 수업에서 수석도 하고, 장학금도 받고. 아는 동화작가분도 있고요. 아이들이 좋기도 하고. 사실은 동화를 쓰지 않은지 두 달이나 지났음에도. 겸손을 잃은 게 분명했다. 아니, 겸손만 잃었으면 차라리 나은 편이지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시선만 그대로 유지하며 손가락은 가만히 멈췄으니 그로 인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떵떵거리기만 하니 자괴감도 서서히 옅어지더라.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정말 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부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데, 그리고 과거에 칭찬도 꽤 받았었는데, 지금은 잠깐 쉬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나는 나를 잠식했다.

이제는 어중간한 성취조차 이루지 못하게 된 것 같다.

황홀했던 과거의 기억만을 곱씹으며 그로 인해 삶을 유지하는 노인이 되었다. 나름 에세이를 규칙적으로 쓰고 평소에도 많이 읽으므로 내 또래에서는, 아니 적어도 대학생에서는 손에 꼽는 사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정하면 확신. 그것도 아주 굳고 단단한 확신이었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를 애매한 재능이라 칭했음에도 속으로는 아니라 생각했다. 몇 번의 주요한 에세이 공모전에 번번이 떨어졌다. 매번 심사위원을 탓했다.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과 한국 심리 상담 센터 수기 공모전, 그리고 이후로도 작고 많은 에세이 공모전에서 장려상조차 받지 못했다.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심사위원들을 욕했는지.

질투로 인해 타인을 비난하는 건 비단 심사위원뿐만이 아니었다. 대상을 받은 이, 최우수상, 우수상을 받은 이들의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만약 고등학생의 나였다면 그들의 글을 읽으며 배울 점에 형광펜을 쳤을 텐데. 나는 별로인 문장만을 꼼꼼하게 짚었다. 결론은 하나로 귀결됐다. 내가 쟤보다 나은데. 자존감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은 좋았으나, 그 목적이 도리어 단단한 울타리를 형성했다. 2019년 9월 27일의 금요일 오후, 이제야 나를 감쌌던 울타리를 조금씩 파괴하려 한다.

오늘 오후의 예상했던 일정으로는, 당장 3일 뒤 마감인 창비 신인 청소년 문학상에 60매짜리의 청소년 소설을 응모하는 것. 세세하게 줄거리를 짜두지는 않았지만 인물이나 결론은 구상했기에 키보드에 손만 올려놓으면 자연스럽게 나올 줄 알았으나,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그간 정해진 것은 열 자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제목. 그마저도 가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참으로 지난 성과에 힘입어 겸손한 척만 했구나. 그래, 그렇게 찬양하지 않고 배길 과거의 나였다면 지금 이미 청소년 소설 두 편 다 쓰고 퇴고까지 마친 뒤 맞춤법 검사를 돌리고 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꿈과 가장 맞닿은 공모전에, 제목 하나마저 써버린 초라함뿐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데 시험은 속으로 몇 번이나 준비했던 중학생의 나처럼 디데이를 맞추고 그 안으로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웠다. 총 60 매니까, 하루에 10매씩 쓰면 일주일도 안 되어서 금방 쓰겠네. 그렇게 하루에 10 매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었던 날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다가와서 하루에 30매를 써야 하는, 그마저도 맞춤법 검사를 돌릴 시간은 있을지 말할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의 나는 오늘의 나를 떠올리며 5시에 발표될 공모전 결과에서 자신감을 얻고 이를 이어 청소년 소설까지 쓰리라. 했건만.

참으로 겸손하지 않은 마음가짐이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수상을 확신했을까. 내가 일했던 회사였으므로 당연히 그 회사에서 열리는 공모전의 가치를 꿰뚫었다 생각한 건가. 당연히 장려상 안으로는 들것이라는 그 안일한 마음과 확실한 기대가 합쳐 큰 좌절이 생겼다. 이제야 보이지 않았던 그 단단한 울타리의 크기를 가늠했다. 오늘 그 울타리를 드디어 보았고, 만졌으며, 부수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근 ‘오글’이라는, 다섯 명이 모여 2주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브런치 소모임에 들어섰다. 오늘이 마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두 개의 예상 중 하나가 무너져 내렸으니 나머지 하나, 청소년 소설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구상하지 않은 이 맨땅에서 밤을 새워 써보았자 성과가 나올 리가 없다. 무시하려 했던 현실을 직시했다. 나는 열정뿐이다. 그 열정 역시, 말만 번지르르한 가치로 변모했다. 그래도 그간 썼던 미니픽션이 있기에, 혹은 에세이라거나 영화 평론이 있으니 그 글들을 다듬어 낼 수 있음에도 울타리를 알아챈 탓에 차마 고칠 수가 없었다. 과거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로서, 9월 27일의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렇게 피하려던 좌절과 자책감이 똘똘 뭉친 글이지만 드디어 과거의 성과에서 벗어났다는 마음에 한결 마음이 괜찮아진다. 나는 프로인 척했던 아마추어에서, 겸손한 척했던 습작생에서, 다시 겸손을 갖고 습작에 몰입하는 아마추어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기대를 해도 떳떳할 만큼의 노력을 한 뒤, 동정보다는 자신감을 가진 글을 쓴 뒤, 너무나 확고했던 가치관과 취향의 벽을 낮추고. 자문하고. 반성하고. 말뿐만이 아닌 초심으로. 배우는 마음으로. 뼈저리게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을 안고서. 스물의 나로, 열살의 나로.

2019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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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큰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이제 한 발짝씩 내딛기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파치아모님 =)

오늘도 진솔한 글이 참 좋네요.
마흔이 코앞인데 세상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배우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죽기 전에 마스터할 수 있을지? 그런 기대를 갖는 것조차 거만하게 느껴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솜씨가 정말 어마어마하시네요!

답장이 늦었습니다 ㅠ_ㅠ 진솔한 글이 자칫 부담스럽게 다가갈까 매번 우려스러운데, 좋다는 말씀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어마어마하다는 말도요!! =) 매번 감사해요 록키님! 응원하겠습니다. 배우고 또 배우며!

건투를 빕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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