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쿠바, 15,000원이에요?

in #zzan10 months ago (edited)

책을 만들며 결정해야 많은 관문 중 '단가'는 유독 미지의 세계였다.

어릴 적 교회 '달라스' 시장은 물론 요즘은 꽤 흔해진 플리마켓 아니 하다못해 중고나라에도 한 번 판매자로 참여해본 경험이 없었다. 처음으로 창조한 무언가에 내가 직접 가격을 매겨야 했다.

일단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니 가제본을 잘 뽑아내는 게 중요했다. 가격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막상 가제본을 출력하고자 견적을 내며 무척이나 놀랐다. 328page 책 한 권의 가격은 배송비를 제외하고도 40,000이었다. 단 권이라 비쌀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비쌌다.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졌다.

내용을 쳐내고 또 쳐냈다. 그러나 더 이상 쳐내기가 미안해졌다. 사진을 넣을 자리가 많지 않았다. 여행에 관련한 책인데 사진을 더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마음의 소리는 단가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행히 편집을 하며 공백의 자리가 생기면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 한 장을 넣었다. 정말이지 억지로 만든 페이지는 단 한 페이지도 없이 꼭꼭 눌러 담은 셈이다. 글자 크기를 더 줄이면 페이지 수야 많이 줄겠지만 "이 책의 사이즈에는 이 크기가 잘 어울리고 가독성도 좋은데요."라는 진심 어린 조언에 너무나 공감했기에 더 줄일 수가 없었다. 책에게 더 좋은 옷을 벗기고 덜 좋은 옷을 입히는 기분이랄까.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


내 책을 얼마에 판매하면 좋을까?

인쇄비만 고려했을 때 만약 100부를 뽑고 18,000에 판매해도 수수료를 고려해서 한 권당 약 1000원씩 손해가 났다. 200부를 뽑으면 18,000에 판매해서 본전 치기였다. 300부 이상부터는 인디고보다는 차라리 옵셋 인쇄 비용이 저렴했다. 300부를 뽑으나 500부를 뽑으나 1000부를 뽑으나 큰 인쇄비 차이는 없었다. 300부 이상부터는 단가가 꽤 저렴해져서 내가 처음 생각한 가격으로 팔아도 천 원 남짓의 이득이 떨어졌다. 재고부담이 있더라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무조건 300부 이상 뽑아야 했다.

옵셋 인쇄. 충무로에서는 CPT출력(인디고 출력)하는 인쇄보다도 옵셋 인쇄를 취급하는 인쇄소 찾기가 10배쯤 더 어려웠다. 35도가 넘어가는 오후 뙤약볕을 견디며 이 곳이 아까 왔던 곳인가 긴가민가하며 충무로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며 수많은 허탕을 쳤다. 약 15곳을 직접 찾아 가 문의했고 그중 원하는 견적을 내주는 적합한 곳은 단 세 곳이었다. 그마저도 한 곳은 손님이 많다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라고 했다. 간절했다. 나의 소심한 피곤함 더움 불편함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단가를 낮추려면 제대로 옵셋 인쇄를 해줄 곳을 꼭 찾아야 했다. 그런 내가 기특했는지 3시간 넘게 발품을 판 후 우연히 운명처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기쁜 마음으로 나왔다. 좋은 책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행히 처음 생각한 견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가장 저렴하게 만들면 15,000원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15.000원으로 판매하나 18.000원으로 판매하나 아니 어쩌면 20.000원으로 판매해도 크게 상관없이 이 책을 구매해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매우 이 책의 가격탄력성은 비탄력적이다. 왜냐하면 분명 이미 이 글을 읽었거나 혹은 나를 믿고 아니면 나를 응원해주기 위한 지인 분들의 구매가 대부분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속 가격은 15,000원이었다. 일단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알찬 내용으로 가득 차고 너무 만족했던 페이지 수도 유사한 '퇴사는 여행'이란 책이 15,000원이란 점도 작용했다. 이 책도 이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으니 나도 그 가격에 맞춰보자. 책 한 권 값이 최대한 부담이 덜 되는 쪽이 좋았다. 아니 적어도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든 누군가에게 가격이 부담이 돼서 이 책을 내려놓게 하는 상황은 만들면 안 될 것 같았다.(정말 낮은 확률이겠지만..) 고작 나의 3000원이라는 이익 때문에 이 책이 누군가에게 읽힐 기회를 뺏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가격은 무엇일까? 가격의 실체는 무얼까? 물론 원가도 고려되어야겠지만 본질적으로 돈은 가치이다. 얼마만큼의 가치를 책에 부여하는가는 철저히 원작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누구도 판단하거나 부정할 수 없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만 거래가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만큼 책의 가격, 특히 독립출판물의 가격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몇몇 책을 보면서 나의 단가가 억울하고 슬퍼졌다. 모든 책이 얇다고 별로이거나 비싸다는 건 절대 아니다. 가끔씩 이건 책을 만들려고 만들어진 책이구나. 억지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욱여넣은 페이지구나. 이런 책도 이 가격에 판매되는데 삶을 뒤흔들만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꺼내기 위한 용기를 냈고 10개월 넘게 다듬고 만들어진 이 책에 조금 더 가치를 부여해도 되는 게 아닐까? 아니 적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너라도 이 가치를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평가 절하하고 있다란 억울함.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누구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거야.


마지막 독립출판 강좌에 참여했다. 텀블벅 펀딩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내 페이지를 본 대표님이자 강사님이 물었다.

"우와, 쿠바 15000원이에요?"
"네. 돈 벌려고 만든 책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기뻤다. 책을 만들게 도와주신 분이 나의 노고와 고민을 알아주신 것만 같아서. 적어도 나 말고 세상에 단 한 명 더 이 책이 이 가격에 판매되는 게 의외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최근 들어 결국 무언가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연결성'이 아닐까 싶다. 성과나 실력도 당연히 좋아야겠지만 얼마나 많은 타인의 관심과 응원, 사랑을 받느냐가 성공에 직결된 핵심이 아닐는지. 아마 무언가의 성공의 여부는 그게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연결성'에 그다지 강한 사람도 연결을 하려고 노력해 온 사람이 아니라서 아마 이 책은 세상에 나온지도 모른 채 자취를 감출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억울하다거나 슬프지는 않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작가가 되려고 혹은 유명해지려고 만든 책이 전혀 아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책은 나의 욕심이 배제된 채 만들어졌고 이런 나의 진심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 나는 무척 억울했다. (저 단가에 억울한 건 책을 만든 저자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나였다)

며칠이 지나고 그 웃긴 감정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저자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나 역시 단가에 대한 입장 정리는 완전히 끝이 났다. 다음번 가격 책정에는 조금 더 쿨하고 담백해지는 좋은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지금 와서 보면 참 귀엽다.

p.s 다음 책은 에고를 듬뿍 담아 경제를 공부한 개인으로서 팔리든 안팔리든 마음껏 비싸게 판매할거라고 다짐해봅니다 ㅋㅋㅋㅋ

Sort:  

새하얀 백지같은 무수히 많은 생각의 더미 속에서 한 편의 책을 집필하기까지도 평범한 사람은 쉬이 갈 수 없는 길인데 그 이후에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딱뜨리게 되네요. 함부로 뛰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어쩌면 모굴님이 인고의 시간이라 생각했던 이 길이 후에 돌아보면 꽃길을 생성하는 창조의 행위로 평가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역시 즐거움의 끝은 현실과 닿아있네요. 사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저도 제가 왜그런 지 모르겠어요 처음이라 그려려니 다음엔 더 잘하리라 생각해요 헤헤

욕심(?)만 안부리면 노력과 시간이 조금 들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재밌고 뿌듯하답니다 ㅋㅋㅋ

어느날 마음이 내키면 재빈님도 도전해보세요!

물론 다음에는 더 잘하실거라 생각해요! 저도 도전해보려구요! 하다못해 일기라도 제본하려구요!! 혹시 아나요 재빈의 일기가 명작이 될지~ 깔깔깔~ 아 물론 일기는 개인 소장입니다. ^^ 그리고 저는 판매까지는 생각 안해봤어요 그냥 스스로의 흔적을 책으로 만들어 가지고 싶었어요 ㅎㅎ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1쇄 완판하고 2쇄는 18000원 갑시다~!! ^^
2쇄는 구매해서 다른 분 선물 드릴게요 ㅎㅎ

ㅋㅋ 1쇄 완판을 위해 달려봐야죠 제 생각에 1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당 쿠바노는 무조건 15000원으로 정했어요
다음책은 딱 한 권 오만원짜리 만들어서 혼자 소장하려구요 ㅋㅋㅋ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분들에게 100% 페이백 이벤트한번하시죠

글쎄요.... 힘들 것 같지만 생각해볼게요. 좋은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너무하단 생각이 드네요 ㅠㅠ....

출간하면 스팀잇에도 한번 풀러주세요 ㅎ

감사드립니당! 호돌박님
텀블벅 펀딩 소식은 이미 올렸고 차후 진행되면 알려드릴게요 +_+

아 소식을 모르고 살았네요 ㅠㅠ

억 혹시 41번째 후원 호돌박님이신가요? ㅠ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 아니에요 ㅠㅠ

앗 ㅋㅋㅋㅋ 오해했네요.. 쨋든 감사드려요

우와!!
Mi Cubano에 소책자에 마그넷에 후원자 기재까지 해 주시는데
20,500원이예요??!! 대박!! ㅎㅎㅎ

한 번 더 기쁘시라고. 'ㅡ' ㅋㅋ

ㅋㅋㅋ 뉴위즈님 덕분에 웃네요 감사해요
아이 기뻐랏 ㅋㅋ

책 제작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드네요.
출판사는 보통 1쇄에 2,000부 정도 찍는다고 들었는데, 발행부수 때문에 단가차이가 나는 걸까요?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

아 그렇군요 2000부 이상 찍으면 확실히 단가가 꽤 내려갈 것 같아요.
저도 이번 기회에 새로 알게 되었어요 ㅎㅎ 감사해요 화이팅할게요 gluer님 :D

어떻게 했어도 마음의 갈등이 오긴 왔을 거 같아요. 이 책도 많이 읽힐거예요.^-^

처음이라 더 갈등했던 것 같다는 핑계를 헤헤 사실 많이 안 읽혀도 괜찮아요 이미 생각보다 많이 읽어주신 게 맞아요 고마워요 따뜻해라 미미별님

와아!!! 기대됩니다 ㅎㅎ
대박나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요 ㅋ

Posted using Partiko iOS

크읍 이와이님 텀블벅 펀딩은 이미 시작되었답니당 혹시 참여해주시지 않으렵니까? ㅠ ㅋㅋ 부담드리는 건 아니고요 ㅎㅎ!

대박만 난다면 당연히 ㅋㅋ

책의 가치가 가격으로, 발행부수로 매겨지는 것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재단이 되는 것 같네요.
책 안에 숨겨진 가치있는 메세지의 값이 더 클텐데 말이죠 ㅠ

아마도 세상 모든 창작물과 예술이 그러하겠져 - 일상인인 저로서는 처음 겪는 묘한 기분 rbaggo님의 따뜻한 말씀이 위로가 되어요. ㅎㅎ

어디서 살 수 있나요?ㅋㅋ

아직 책이 나온 건 아니라 구매하실 수는 없고요. 요기 가시면 미리 예약겸 후원해주실 수 있어요. 한국 핸폰 번호나 네이버 혹은 페북 아이디가 필요할거에요. 구경해주세요! ㅎㅎㅎ

https://tumblbug.com/micubano

만약 더 궁금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봐주세요

Congratulations @fgomul!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distributed more than 5000 upvote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6000 upvotes.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인쇄 제본 다 결정된 건가요?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 ^^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닌데 마음 속으로는 혼자 결정한 상태에요. 나하님 아시는 곳 있나요?

견적만 받아볼까요? ^^ 제 소설은... 1도 흑백에 1000부 120만원이었어요. 책날개 없고요. 견적 받아보셔서 아시겠지만... 올칼라면 4도라서 인쇄비는 4배 들어가요. 120에서 종이값 빼고 4배라고 보시면 돼요.

으어 그럼 그냥 제가 알아본곳에서 진행하는 걸로 ㅋㅋ

더 저렴하군요. ^^

고물님의 고민과 노력이 그대로 담겨있는 글이라 마음에 와 닿습니다. 책 한 권 나오는게 정말 쉽지 않죠. 더구나 일인출판, 독립출판 등 자신이 직접 디자인을 하고 인쇄를 하는 작업은 말할 것도 없죠. 인새 출력소 엔지니어들 또 정말 마음을 쉽게 안여는 사람들이라 설득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고 말이죠. 고생하신 만큼 멋진 결과물이 나올거라 기대합니다. 스팀잇에서 활동하시는 한 @li-li프로젝트의 '평론가들의 도서리뷰'는 @fgomul님을 영원히 저자로 대우합니다.

이제야 li-li님 댓글에 댓글을 다네요. 어린애같은 응석을 따스히 어루어만져주시는 따뜻한 댓글과 응원 너무 감사했어요 ㅠ 으헝 저자라니 너무나 영광입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