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 - 1948. Post 30steemCreated with Sketch.

웨더스비 교수 씀

트루만과 스탈린.jpeg

웨더스비 교수께서 오랜만에 포스팅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독일문제에 대한 미국과 소련이 입장에 대한 것입니다. 독일통일에 대해 소련과 미국의 입장이 각각 다 달랐던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분할도 결국 독일문제와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패전국이라서 그런 상황에 놓였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무슨 죄인지 모르겠습니다. 패전국은 일본인데 일본이 분할되지 않고 우리가 분할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상황을 잘 살펴보고 우리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전쟁이 끝나고 1년정도 지난후에 소련과 미국이 독일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했고, 이는 새로운 초강대국의 경쟁의 결과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모스크바는 독일이 통일되어 소련이 서독지역의 산업지역으로부터 배상금을 얻을 수 있기를 고대했다.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자신들의 지역에서 협력적인 점령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단계에 들어갔으며, 소련은 이러한 방법이 3개의 서독지역에서 분리된 국가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매우 합당한 걱정을 했다.

서방국가들의 독일 분단을 저지하기 위한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모스크바는 독일의 여론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미 1946년 여름에,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모스크바의 강력한 징벌적 점령정책을 갑자기 바꾸었으며 대신 독일의 통일과 회복을 방지하기 위한 서방국가의 책략을 고발했다. 그는 미국은 독일의 석탄과 철 생산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독일의 산업 잠재력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가 루르산업지역을 독일에서 분리하려는 프랑스의 요구를 비난하면서 단일 독일 정부의 수립을 요구했다. 소련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독일공산당이, 독일영토의 1/3이 새로운 폴란드 국가에 속하게된 폴란드와의 전후 국경문제를 제기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독일 민족주의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전쟁이 끝나고 이 국경을 재설정한 것은 소련이었으며 이는 모스크바가 폴란드 동쪽의 땅을 차지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리하여 소련이 독일국민의 진정한 참피온이라고 자신들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현실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시도에 대한 반응으로, 국무장관 번즈는 1400여명의 독일 고위관리가 모인 슈트트가르트에서 연설했다. 그는 독일인들이 “자유 및 평화애호국들 가운데 명예로운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독일의 경제적 부흥을 요구했다. 그는 루르분리에 대한 프랑스의 제안은 이루어지 지지 않을 것으며 전 독일 임시정부의 즉각적인 구성을 요구했다. 국무장관은 독일이 소련이 그어놓은 폴란드와의 새로운 국경에 대해 독일의 항의를 지원했다.

독일 통일지지에 대한 공식적인 성명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의 지역을 합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7년 3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외무장관 회담 위원회에서, 그들은 서부에 별도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독일 점령정책에 대해 소련과 합의를 위한 마지막 노력을 하였다. 서방동맹국들의 우선관심은 모스크바가 동부의 풍부한 농업지역에서 서부지역으로 식품을 보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의 납세자들은 서부지역의 독일대중들이 필요로하는 식량과 여타 기초 생필품을 제공해야 했다. 미국과 영국은 독일을 자족적인 국가로 만들 수 있는 통치기구를 수립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러나 동시에 소련과 전세계적인 정치적 경쟁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독일의 분단에 대한 책임으로 비춰질 수 있는 정치적 데미지를 감당하고자 하지 않았다.

외무장관 위원회에서 독일을 위한 전국적인 규모의 통치기구를 어떻게 수립하며 누가 이것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한편, 원칙적으로 국가통일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춰지고자 했기 때문에, 소련과 미국은 28번째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 처럼 서울에서 공동위원회 회담의 재개에 합의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1947년 늦은 봄에 미소공동위원회 회담이 재개된다는 뉴스에 대해 한국내에서의 반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자료]
독일 문제에 관한 내용은 아래의 자료를 참고함.
William R. Keylor, A World of Nations: The International Order Since 1945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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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이권...
그에 움직이는게 세상사인가보네요ㅠㅠ

정말 저 당시는 전세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때였던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도...흑...ㅠㅠ
얼마전 끝난 이산가족 상봉 영상 보는데 가슴이 먹먹 하더라구요...

the work that tells the story of ancient hero figures,@wisdomand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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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씩 제 블로그에 오셔서 보팅해주시고 가셨는데 감사의 인사로라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글쓰시는 주제가 현대 전쟁사여서 그런지 제게는 다소 부담스럽고 잘 읽혀지지 않았던 점도 있어서 몇번 읽으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보팅도 하지 못했던것도 같습니다. 오늘은 차분히 읽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남북분단의 영향이 독일과도 연관되어있다는게 처음알게된 내용이네요.

독일의 분단이나 우리나라의 분단도 결국 강대국의 이권으로 생긴 현상이군요.

우리 나라의 일을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는
정말 힘 없는 나라
단순히 오래전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는 느낌입니다.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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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현실과 겹쳐서 보여요
참 씁쓸하다고 하기엔 끝나지 않은 사건이고
현재진행형이라...
힘이 없으면 개인이든 국가든 너무 서럽습니다..
오늘도 감사히 보았어요
웨더스비 교수님 존함을 오랜만에 뵈니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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