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빌런과 화해할 수 있는가?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edited)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물로 기상청을 단순히 벽지로 쓴 게 아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사투를 꽤 자세하게 그려 나름 참신하게 봤는데 끝까지 보고는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빌런과 화해할 수 있는가?"

여기선 빌런 셋이 나온다. 약혼녀를 배신하고 바람피운 여자와 결혼한 한기주, 그런 한기주랑 결혼한 채유진 역시 남친을 두고 바람을 핀 빌런이다. 바람과 배신은 흔히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문제는 배신한 이와 배신 당한 이들 모두 다 기상청에 엮여서 매일 얼굴을 보고 오히려 잘못한 사람들이 뻔뻔하게 군다는 것이다. 이들은 빌런이 맞다. 물론 빌런에게도 사연은 있다. 성급하게 시작한 빌런 커플도 삐그덕거림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 까진 괜찮다. 눈눈이이를 주장하며 그들의 파멸을 바랄 정도의 엄격한 도덕성을 가진 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뒷통수를 그렇게 세계 후드려갈긴 빌런 전애인과 조언을 주고 받으며 조력자의 관계를 유지하는 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뢰가 가장 끔찍한 형태로 무너진 관계에서 그 얼굴을 다시 보는 것 조차 지독한데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성장을 도모한다는 건 내 세계에서는 없다. 나는 친구건 연인이건 동료이건 실망하더라도 유예의 시간을 주고 관계를 지켜가려고 노력하거나 기회를 주는 편인데, 신뢰가 무너지면 끝이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빌런은 남주인 이시우의 아버지이다. 늘 도박판을 전전하고 아들에게는 관심도 없고 돈타령만하는 그는 최강 빌런이다. 기상청에 와서 난동을 부르면서 비밀 연애를 까발리고, 남주가 다쳤는데도 보상금만을 언급하기 바쁘다. 남주는 이런 아버지를 증오하며 치를 떠는데 '암투병'이라는 치트키를 사용, 화해를 암시하며 끝이 난다. 나는 이 갑작스럽고 서사 없는 화해의 무드가 너무 불편했다. 가족이니까, 라는 말로 품을 수 없는 빌런도 마지막 순간에는 변화하고 가족이라 품는다는 메세지는 진부하고 폭력적이기까지하다. 빌런은 빌런이다. 빌런은 빌런으로 두어야 한다. 빌런은 개과천선할 수 없다. 빌런과는 화해할 수 없다. 빌런과는 거리를 둬야한다. 다 떠나서 난 빌런과의 화해가 불편한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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