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나의 24시간은 얼마일까?
이번 나의 여행은 여정이 좀 복잡했다. S의 결혼식이 주 목적이라 런던행 비행기표를 끊어야 했으나 그 가격이 상당했다. 코로나가 느슨해져 사람들이 보복 여행의 여파로 유럽 여행을 어마어마하게 가는 것과 동시에 여름 휴가철과 겹쳤으니 이해하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써도 되지가 않었다. 런던행 직항은 진작에 포기했고 경유 조차 200만원에 육박했다. S가 비행기표로 100만원을 보태기로 했지만 그래도 200을 내고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미친듯이 검색을 했다. 검색은 예로부터 나의 장기이자 특기이다. 제일 싼 유럽 어딘가에 떨어져 저가 항공으로 런던으로 가고자 했다.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가 140만원선 런던 왕복 비행기가 20만원대였는데, 이것이 최선이었다. 폴란드는 가본 적이 없는데다가 내 목적지가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이라서 바르샤바의 물가가 저렴한 점도 마음에 들어 기꺼이 비행기표를 샀다. 억눌렸던 여행 욕구가 폭발하며 불거지는 항공 대란에 나는 여행 내내 초조했다. 특히 저가항공이었던 위즈에어가 갑작스러운 항공편 취소로 유명했기에 나는 길 위에서 미아가 되지 않을까 마음이 늘 종종거렸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서 터졌다.
여행의 끝에서 나는 한껏 이완된 마음으로 바르샤바를 누리고 있었다. 꽤나 고급스러운 브런치를 먹고 쇼팽의 나라답게 클래식 음악을 곁들이며 럼한잔과 시가를 피며 여유를 부리고, 저렴하고 퀼리티가 좋다는 화장품을 막 사고 나온 참이었다. 전화가 왔다. 로밍을 한 상태라 한국에서 오는 전화는 전혀 받지 않았는데 카타르 항공이라 떠 있는 핸드폰 창을 보고 직감적으로 '뭔 일이 터졌구나.'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헬로우. 미스 재은 킴인가요?"
"네, 무슨 일인가요?"
"죄송하지만 우리 비행기편이 딜레이가 되어서 바르샤바에서 도하로 간 뒤 당신은 24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네? 24시간을요???"
"우리가 다른 비행편을 연결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자리가 없었어요. 옵션이 없어요."
"아니, 그럼 다 떠나서 제 신속항원 서류는 어쩌죠?"
"아. 물론 그 부분이 걱정이시겠죠. 그 부분을 포함해 곤란한 부분을 저희가 최선을 다래 처리해드릴게요. 도하에서는 호텔을 연결해드릴 수도 있고요."
"제가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아서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아요. 이 모든 처리에 대해서 혹시 이메일로 다시 전달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 공항에 가서 카운터에서 이야기하세요. 그들이 처리해줄거예요."
마음이 급했다. 쇼핑몰에서 호스텔로 재빨리 돌아갔다. 하필 교통 체증때문에 시간도 배로 걸렸다. 최근 비자 문제로 비행기를 한번 놓치고 난 다음에는 출국 트라우마가 생겨 이런 종류의 위기 상황에 상당하 약해졌다.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었고 심호흡이 가빠졌다. 공항에 2시간 전에 도착해 공항 와이파이를 보니 도하에서 인천 가는 항공편 예약이 원래보다 24시간 뒤로 확약되었다고 메일이 와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체념 할 수 밖에 없었다. 카페 라다크 미니북 글을 써야했지만 못쓰고 있어서 오히려 호텔에서 글이나 마음껏 써야겠다 싶어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공항에 도착해 한켠에 있는 사무소에 문의하니 콜센터에 전화하란다. 큰소리를 쳐도 마땅한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어 마음껏 항의하지도 못한다. 우물쭈물 콜센터 전화번호만 적힌 종이를 들고 속으로 항의했다. '난 유럽 번호도 없고 로밍이라 전화를 하면 얼마나 비쌀지도 모른다고요!!!'
도하 가능 비행기를 체크인 하려고 보니 3시간 지연이었다. 난리가 난건 나만이 아니었다. 델리가는 카타르 항공도 딜레이가 되었든지 화가 잔뜩 난 인도인이 큰소리 내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그들 뒤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는 항의했다. 내 여권을 가져가 정보를 확인한 직원은 말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당신은 이 항공 지연으로 compensation을 받을 수 있어요.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고 이메일을 보내보세요."
"compensation이요?"
"네, compensation이요."
종이를 받아들고 바로 compensation을 검색했다. 보상금. 카타르 항공에서는 유럽에서 출발하는 항공의 경우 지연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서 보상금을 주는데 나의 경우 최대 보상금 600유로를 받을 수 있었다.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하던 마음 '600유로 보상금.' 앞에 사르르 녹았다. 2시간 뒤에 도하로 가는 항공편 체크인을 하러 갔을 때 당신은 내일 낮에 에어프랑스로 파리에 가서, 파리에서 아시아나를 타고 인천으로 갈 것이다는 갑작스러운 비행편 변경에도 난 너그러웠다. 왜냐면 600유로 보상금을 받을 것이니까. 다시 바르샤바 시내로 가면서 24시간을 잃은 대가로 얻은 600유로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24시간은 얼마일까? 회사를 다닐 때 하루 일당은 10~15만원 선이었을 것으며 외주 작업으로 글을 하나 쓰면 많으면 20만 원 정도를 받는다. 내가 벌 수 있는 돈이 내 시간의 값어치는 아니겠지만, 그런 셈 외에는 하루의 가격을 책정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치면 하루를 잃어버린 대가로 80만원을 받는 건 큰 보상이었다. 비행기가 지연되어 오히려 좋다고 쾌재를 불렀다. 심지어 공항에 갇혀있었던 것도 아니라 바르샤바에서 그 날 저녁을 온전히 썼으니. 호의든 돈이든 뭐든 쓰는 만큼 다시 돌고 돌아온다고 믿고 살았다. 그 순환에는 의심해본 적 없다. 문득, 이 보상금은 비자 문제로 출국하지 못해 추가로 결제해야했던 인도 비행기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두 달, 두 번 해외를 나가며 공항에서 곤란을 겪었는데 한 번은 잃고, 한 번은 얻었다. 잃은 것보다 더 후하게 되돌아온 마법, 이래서 인생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