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불온한 변화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장을 보러 가는 시간은 오롯한 나의 시간이었다. 주문이 들어왔는데 메뉴가 없는 급박한 상황을 제외하면 나는 늘 천천히 메인 바자르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샀다. 레의 정중앙, 잔스티 파킹에 있는 카페 두레는 장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천천히 메인 바자르로 진입하면 양 옆으로 자신의 텃밭에서 가꾼 채소와 500ml 야크 젖을 파는 아말레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말레들 사이를 지나가면 쿰쿰하면서 비린 젖 비린내가 코에 스쳤다. 라다크의 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민트티를 만들 민트와 샌드위치에 들어갈 상추를 샀다. 그 길의 끝에는 할아버지들이 말린 살구와 인도 군인들이 쓰는 립살브를 팔았다. 말린 살구를 앞에 두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검고 주름이 자글한 손으로 살구를 건네주었다. 메인 바자르를 걸을 때면 아는 얼굴 한 둘은 꼭 만났다. 레는 작디 작아 자꾸 마주치는 게 민망할 때는 한가한 뒷길로 걷기도 했다.

“너무 이상해졌어. 넌 많이 놀랄 거야. 정말 많이 변했어.”

공포 영화를 보기 전 심약한 사람에게 경고하듯 나보다 며칠 먼저 라다크에 온 춘자는 몇 번이고 그 사실을 상기시켰다. 얼마나 변했길래 저렇게 반복적으로 말할까 싶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봐도 변한 레의 모습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2015년 우리가 마지막으로 라다크에 왔을 때 이미 개발은 시작되고 있었다. 메인 바자르 길을 정비한다며 멀쩡한 길을 뒤엎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엎어 놓은 길은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정비될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당연하게도 길은 정리되어 있을테지만 길 하나 바뀌었다고 이상해지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가 않았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초모의 차를 타고 가면서 광활하면서 황량한 라다크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엥, 저게 뭐야?”
“로봇.”
“로봇??? 아니 왜 로봇이 저기에 있어, 거참 기괴하네.”

자동차의 부품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5톤, 7미터의 거대한 로봇은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생뚱 맞게 서 있었다. 7년 만에 만난 레 시내는 믿을 수 없이 바뀌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레 시내의 변화에는 불온한 구석이 있다. 차의 진입을 막고 벤치를 설치한 메인 바자르는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고 지나치게 높고 삐까번쩍한 신축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정겨운 야크젖 비린내도 까, 찌, 쭈, 된소리가 반도 넘게 차지해 귀여운 라닥말도, 라닥 사람도 길에서 종적을 감췄다. 길가에서 줄지어 야채를 파는 아말레도 확 줄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살구 파는 할아버지들의 가판대 역시 점포마냥 구획을 해버려 낯설다. 차가 다니지 않는 레 시내는 여행 온 인도인들이 와글바글 모여 휴식을 취하는 레트럴 파크가 되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메인 바자르 초입에 있는 I♥leh와 골목 곳곳에 설치한 l♥ladakh 로고이다. 그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자연 환경과 문화를 가진 레를 뉴욕의 짝퉁으로 만들어버리는 천박하고 화려한 그 로고 앞에서 인도인들은 앞다투어 사진 찍느라 바쁘다. 가뜩이나 어느 나라든 도시를 키울라 치면 그렇게 I♥ 00 거리는 통에 지긋지긋했는데 레까지 건드리다니. 이 정도면 전세계적으로 I♥ 00 금지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한다 말하지만 혐오를 부르는 그 로고 앞에 서면 난 무력해짐을 반복적으로 느꼈다. 사람이 살던, 사람 냄새 나던 레라는 공간은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거대한 세트장이 되어버렸다.

“믿을 수가 없어. 이게 뭐야? 너무 이상하잖아.”
“그래, 내가 말했잖아.”

내가 사랑하는 도시가 내가 오지 못하는 동안 철저하게 유린 당한 기분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렸다. 시내에 있는 사원을 비롯 라다크의 대부분 사원에 조악한 조명이 설치되었고, 레 시내 곳곳에는 라다크의 새인 두루미 동상도 몇 개나 있고 다양한 동상이 곳곳에 세워졌다. 레 시내를 벗어난 흙산에는 ‘ONE NATIO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라다크를 엉망으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 누군가의 장난질처럼 보였다.

“하나의 국가? 미쳤네. 저게 뭐야.”
“인도 정부가 요즘 하는 짓은 중국과 다름없어.”

초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초모도 귤멧 아저씨도 바뀐 레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 시내로는 발길을 잘 돌리지 않는다 했다. 레 시내의 진짜가 아닌 만들어진 느낌, 껍데기만 있는 느낌에서 자꾸 어디서 본 것만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중국화가 된 티베트 라싸와 풍기는 기운이 비슷했다. 2019년 8월, 인도 정부는 ‘하나의 국가’라는 슬로건 아래 잠무 카슈미르의 특별 자치권을 부여하는 헌법을 폐지했다. 잠무 카슈미르 지역은 더 이상 주가 아니게 되었고 잠무 카슈미르와 라다크로 나뉘어 두 개의 연방 직할령이 되어 인도 중앙 정부가 이 지역을 직접 통치 하게 되었다. 잠무&카슈미르로부터의 분리를 바랐던 라다크 불교도들은 이 사실에 크게 기뻐하고 축하 행사를 열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쁨이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라다크의 독립은 특별 자치권을 없애 카슈미르와 라다크를 각각 자신의 입맛대로 주무르고 싶었던 인도 정부의 계략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주에서 온 인도 주민은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서 취업도 할 수 없었고 토지나 부동산을 살 수 없었지만 연방 직할령이 되어 이제는 그 권리를 외부인에게까지 확대했다. 라다크 주민들은 자신이 주인이었던 땅을 라다크 안으로 침투한 인도인들과 인도 상인들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이미, 레 시내는 인도인들로 장악되었고 이 삐뚤어진 변화는 더 급속하게 라다크의 사람과 땅, 생태계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나와 춘자는 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새어나오는 한숨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어떤 기억이 스쳤다. 하루는 한국 대기업에 다닌다는 인도 친구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인도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친구의 주선이었다..

“난 인도 진짜 자주 갔어. 특히 라다크.”
“라다크는 인도 아냐 중국이야.”
“뭔 소리야. 라다크는 라다크야. 과거에 티베트 왕국의 일부이긴 했지만 독립했고 현재는 인도잖아. 중국은 절대 아니야.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인도 사람이 라다크를 중국이라고 여기는 것에 나는 어이가 없어 그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모르긴 몰라도 인도 사람들은 라다크를 중국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지금의 건강하지 못한 개발로 이어진 것만 같다. 이는 2019년에 있었던 인도 중국 국경의 분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도 총리 모디는 ‘소수 민족 및 사회의 모든 부분에 포괄적인 개발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말했지만, 조급하게 소수 민족의 자취를 지우며 발전시키는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라다크에 도착한 다음 날, 무리인 줄은 알지만 창스파와 가까이에 있는 산티스투파로 아침 산책을 나섰다. 매서울 정도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열기가 식은 볼의 차가운 감촉이 좋았다. 간질이는 빗방울은 점점 거세져 따가울 지경이었다. 멀리 보면 더 힘들다는 말에 발 아래 계단만을 보며 올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면 뒤를 돌아 레 시내를 한참 내려다보고 물을 마셨다. 정상에 도착해 절에 들어가 안정을 찾고 있으니 노승이 하루를 시작하며 향을 붙이고 기름을 따르고 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사원 한구석에 앉아 불경을 외던 노승은 한 손에 종을 한 손에 북채를 들고 뿌자를 올린다. 그래, 내가 좋아하던 라다크의 모습이 이거였지. 처음 스피툭 곰빠에서 갔던 날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서걱거리는 모래를 입 안에 머금고, 오색찬란한 만달라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폐부 깊숙이 스미던 향 냄새, 북을 치면서 낮게 읊조리던 불경, 그 모든 감각이 만들어 내던 낯선 안정감과 이유 없는 그리움에 우리는 라다크에 주저 앉았었다. 그래. 모든 시작은 스피툭이었다. 스피툭을 가지 않았으면 라다크에서 40일까지나 머물 이유를 찾지 못했을 거다. 만달라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면 공들여 만드는 그 모래 그림을 부시는 걸 보기 위해 그렇게 스피툭에 드나들지 않았을 것이다. 승려인 소남과 텐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장난스러우며 인정 넘치는 라다키들을 더 깊이 알지 못했을 거다. 눈을 감고 그 때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자니 순간 가슴 속에 뭔가가 치밀어 올라 한참을 울었다. 뭐라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주 간절하게 라다크의 안녕을 빌었다. 제 색을 잃고 천박하고 뻔해진 레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다른 곳들이 그 모습 그대로 지킬 수 있기를. 그 불온한 바람을 레에서 멈춰달라고. 며칠 뒤 방문한 스피툭 곰파 역시 인도 여행객으로 주차장이 발 디딜 틈 없었고, 절 안에는 스님도 눈에 띄지 않고 여행객을 위해 개방된 한 두 곳의 건물 빼고는 전부 굳게 닫혀있었다. 우리는 오랜 친구 소남과 텐진도 보지 못했다.

카페, 라다크 미니북에서 빠진 이야기라,,,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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