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내 인생 최악의 숙소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edited)

2011년 라다크로 가는 길에는 쿠알라룸프도 끼어있었다. 서울-쿠알라룸프-델리행 비행기가 싸기도 했고 카페 두레 손님이자 한국에도 놀러온 적 있는 친구 마테즈가 쿠알라룸프에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집에서 숙박비도 아끼고 한번도 와본적 없는 쿠알라룸프도 짧게 나마 둘러보자는 심산이었다.

J와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마테즈가 일하는 바로 향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에서 쿠바의 수도 "하바나"라는 이름의 바에서 일하는 체코인 마테즈는 다양성이 한껏 버무려진 쿠알라룸프에 꽤나 잘어울렸다. 마테즈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지루해서 밖에 나가 저녁도 먹고 시장도 둘러보다 망고스틴을 발견했다. 대학시절, 나오키상이 올리는 여행기를 즐겨봤었는데 그가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게 극찬하던 망고스틴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한뭉텅이를 사서 어렵사리 손으로 까먹은 그 맛은 사실 그냥 그랬다. 망고스틴이 맛있다고 하는 이유가 뭔지는 알겠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산 망고스틴은 과숙성이 되었는지 보관 상태가 안좋았는지 신선하지 않았고 오묘한 맛이었다. 말하자면 사과의 생명이 단단함과 단맛에 있다면, 물컹하고 단맛이 부족한 사과를 먹는 느낌이었달까? 그 이후로 나는 딱히 망고스틴을 사먹은 적이 없다.

마테즈의 방은 충격적이었다. 건물 자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낡았으며 좁고 지저분하고 음침했다. 차라리 노숙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침대를 쓰고 우리에게는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를 잠자리로 내주었다. 매트리스는 굉장히 더러웠다. 다년간의 인도 여행으로 열악한 숙소에는 꽤나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훈련이 부족했던듯 싶다. 에라 모르겠다 눈 꼭 감고 잠을 자는데 옆에 누운 j가 도저히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매트리스에 서식하는 수많은 빈대들이 그녀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나봐. 나 온몸에 빈대 물렸어."

핸드폰으로 비춰본 j의 몸은 울긋불긋했다. 도저히 잠을 자지 못하겠다는 j와 함께 문을 열고 빌라 복도로 나갔다. 저 멀리에서 팔뚝 만한 쥐가 지나가는 걸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다시 슬그머니 방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쥐보단 차라리 빈대가 덜 공포스러웠다. 우리는 매트리스와 맞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앉아서 세워 놓은 배낭을 껴안고 잠을 잤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j와 달리, 나는 배낭을 안고 그럭저럭 잘잤다. 코까지 드르렁 거리며 잤다는 거 보면, 무딘건지 무식한건지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생존본능이 강하다는 거. 아침에 날이 밝아 서로의 몸을 확인해보니 온몸에 몇십군데의 빈대 자국이 있는 j와 달리 난 모기 하나 물린 곳 없이 깨끗했다.

"믿을 수 없어. 이건 불공평한 일이야!!!!"

j는 절규했고 나는 나 대신 빈대의 먹잇감이 되어준 j에게 고마웠다.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찬 마테즈의 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우리는 아침 일찍 부터 움직였다. 곧 인도로 갈 사람들이지만 굳이 남인도 음식을 먹었다. 식당에 가서야 마테즈와 우린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버스터미널에서 마테즈를 배웅했으나 말레이시아에서는 마테즈가 버스터미널까지 와서 배웅을 해줬다. 아쉬움도 눈물도 없었다. 살면서 다신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되는 끔찍한 밤을 선사한 그 방을 하루만에 탈출할 수 있었던 사실에 안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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