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100] 양가감정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누구나 그런 집 하나 있다. 여기가 너무 좋아서 자랑자랑을 하고 싶지만, 유명세를 타면 내가 마음 편히 못 갈까 아끼고 숨기는 그런 집. 내게 그런 집은 베라노이다. 행운동 구석에 숨은 베라노를 처음 알게된 건 와인 상점 오아크로부터다. 우연히 오아크가 오픈하기 전부터 인스타를 팔로워했고 오아크의 와인을 가져가면 콜키지가 저렴하단 얘기에 처음 오아크에서 산 와인을 들고 베라노를 방문했다. 작고 아담한 내부도, 아늑한 무드도, 조용한 분위기도 좋았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부터는 어디 멀리 나가서 술 마실 마음이 들지 않아서 늘 동네에서 술을 마셨다. 소주는 쓰고, 맥주는 배부르고, 막걸리는 머리 아프고, 위스키는 밖에서 먹기엔 비싸서 우리의 선택은 늘 와인이었다. 한때는 베이컨시를 줄기차게 다녔다. 베이컨시가 줄을 서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되고 부터는 발길을 끊었다. 축상도 몇 번 갔다. 9명의 친구가 몸과 마음을 쌓아올린 공간이라는 컨셉도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뭔가 마음을 내줄 수는 없었다. 꽤나 많은 곳을 기웃기웃했지만 마음에 쏙드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베라노를 만났다. 이곳은 처음부터 좋았다. 그래서 베라노는 우리의 단골 와인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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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에게 생긴 새로운 루틴은 이렇다. 아모르 미오에서 만나 각자 작업을 하다, 불현듯 회의를 시작한다. 회의를 하다가 베라노가 문을 여는 5시가 되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가방을 싸서 베라노로 간다. 베라노에서 여름에는 스파클링 와인을, 날씨가 쌀쌀하면 레드 와인을 시킨다. 술이 좀 오르기 시작하면 격렬하게 회의를 하고, 울고, 취하고 비틀거리며 집에 간다. <한 달쯤, 라다크>의 재출간을 기획하며 돌연 라다크행을 결정했던 날도 베라노에서 와인을 마셨고, 카페 라다크의 서울 팝업을 위해 처음 두더지손 가게를 방문하고 바쁘게 다닌 날도 베라노에서 와인을 마셨고, 란이가 일본에서 온 날도 베라노에서 와인을 마셨고, <카페, 라다크> 책이 나오고도 베라노에서 와인을 마셨다. 이쯤 되면 베라노는 우리의 중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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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베라노에서 와인을 마셨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안주인 훈제 연어 로제 크림과 오븐 가지구이&라구소스를 시켰고 와인은 사장님이 추천해주시는 걸 먹었다. 와알못인 우리는 비싼 와인 먹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베라노는 2~4만원 대 라인업도 많고 안주도 저렴해 가성비 있게 행복한 페어링이 가능하다. 아, 사랑합니다. 베라노, 자랑자랑하고 있지만 이걸 읽는 당신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말리지는 않겠지만 5시 오픈하고 땡하고는 오지마세요. 우리의 시간이니까요. 이거슨, 사랑 고백이자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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