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할머니와 라디오

in #wc38 years ago

우리 엄마는 7남매중 막내로

할머니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낳으신 늦둥이다.

중매로 아빠를 만나 결혼식을 앞둔 며칠전

할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아빠 없이 결혼식을 올려야 했던 막둥이를 안쓰러워 하셨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아이 셋을 낳고 막둥이에서 엄마가 됐다.

그런 막둥이가 항상 눈에 밟혔던 할머니는

시골 생활을 정리 하시고

맞벌이던 하시던 엄마를 대신해

우리 삼남매에겐 엄마의 역할을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할머니 연세는 그때 이미 여든을 바라보고 계셨을텐데

힘든 내색 하나 없이 꼬꼬마였던 초딩 언니의

등하교를 도맡아 해주셨다.

할머니는 늘 쪽진 머리에 쪽빛 한복을 입고 계셨었다.

주변에서 편하게 파마를 하라고 해도 절대 고집을 꺾지 않으시고

단정한 쪽진 머리에 항상 은색 비녀를 꽂고 계셨다.

항상 입고 다니시던 쪽빛 한복에서

스웨터로 바뀐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변화 였다.

그런 할머니의 최고의 단짝은 라디오 였다.

거의 24시간 할머니는 라디오를 들으셨다.

라디오를 들으시며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듯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외로워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할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을줄 알았다.

효도할거야라던 다짐들.. 그 생각들은 어느새 잊혀져 갔다.

성인이 됐을 무렵 할머니는 노환으로 많이 쇠약해 지셔서

시골 삼촌댁으로 거처를 옮기셔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개월전

엄마, 언니, 나는 할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 삼촌 댁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본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충격이었다.

90평생 쪽진 머리를 고수하시던 할머니는

단발머리로 우리를 맞으셨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슬프고 가슴이 먹먹하던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동안 너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라도 했다간 눈물이 먼저 터져나올것 같았다.

이미 기력이 쇠해진 할머니에게서는 예전을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마음을 추스리고 할머니 곁에서 이것저것 말을 해봐도

할머니는 그저 미소만 지으실뿐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단짝이었던 라디오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와 나는 무작정 나가 동네를 뒤져서 라디오 하나를 샀다.

그깟 라디오 하나 사드리지 못한 오빠들에게 야속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라디오를 우리가 사드릴수 있으니

참 다행이단 생각도 들었다.

예상대로 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셨다.

몇개월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셨다.

오빠들의 말로는 할머니는 우리가 사드린 라디오를

한시도 끄지 않으시고 곁에 두셨다고 했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것으로도 보답할수 없지만

부디 할머니께 그때 그 라디오가 작은 기쁨이셨기를 바래본다.

보고싶은 우리 할머니....

radi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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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아님 글보고 저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제가 해드린 볼품 없는 계란 볶음이 항상 최고라고 해주셨는데...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ㅜㅜ

그리워 하는 우리 마음을 아실테니 그곳에서도 행복해 하실것 같아요 ^^
스몰치킨님 감사합니다 ^^

아공...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적인 얘기네요.
@rosaria 님이 할머님과 함께하신 것 만으로도 이미 큰 효도였을 거예요.

그래도 돌아가시기전에 한번 뵙고 올수 있었다는게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아다면 정말 후회가 너무 컸을것 같아요~ 울곰님 감사합니다~ ^^

(ㅠㅠ)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할머니의 마음과 그것을 헤아리려던 @rosaria님의 마음이 잘 느껴졌습니다.

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신난다님~ ^^

저에게도 할머니는 참 아릿하면서 그리운 이름이예요
저도 오래전에 할머니와 이별했는데,
지금까지 시집안간거 아셨으면 진짜 매일 등짝을 후려맞을듯:)

그쳐?? 할머니 입장에선 우린 혼나도 싸요~ ㅎㅎ

코끝이 찡해졌네요.
할머니이야기를 보면서 저희 외할머니생각이 났네요.
쪽빛머리에 비녀를 꽂고 계셨는데..
할머니께서는 그 라디오가 손녀들의 사랑이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좋은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게 죄송한 맘이 드네요~
댓글 쓰는데도 울컥하네요 ^^ 글을 쓰는 동안 할머니를 생각할수 있어 좋은 시간 이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럽흠님~~ ^^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신 외할아버지 생각에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곁에 계실때 손 한번이라도 더 잡아드리셔요~ 많이 좋아하실거에요 ^^

@ rosaria님 글을 읽으니 할머니와의 추억들이 떠오르네요
마음찡한 이야기 잘읽었습니다

초코민트님 감사합니다~ 저도 글 쓰는 내내 할머니 생각에 슬프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했답니다 ^^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할머니 손에서 자라서 그런가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할머님이 천국에 가셔서 라디오 들으시면서 흐믓해하실꺼 같아요

그곳에서도 역시 라디오와 함께 계시려나요~ ^^ 유리자드님 말씀에 울컥했던 맘이 풀리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습니다.
저도 나이가 좀 있다보니.... 저도 오늘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하루가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그리운 할머니 생각에 하루종일 울컥 했다 따뜻했다 하는 하루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성민님~~ ^^

네 오늘 백일장 글들 더이상 보면 안될 것 같네요..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이 나서요...

하늘나라에서 라디오로 로사리아님 목소리 매일 듣고 계실거에요ㅜㅜ

우리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도 라디오 사랑은 여전 하시겠죠? ^^
마르티노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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