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라다크, 사막에서의 트랜스파티

in #tripsteem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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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손님이자 친구인 일본인 다이가 전단지 한 장을 들고 카페에 들어섰다. 그 전단지에는 장소, 일시, 가격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트랜스 파티가 열린다는 사실과 전화번호 하나만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트랜스 파티? 이게 뭐야?"
"몰라. 요 앞에서 이스라엘 애들이 나눠주던데."
"장소도 날짜도 안 적혀있네."
"비밀 파티래. 궁금하면 전화하라던데."
"오 흥미진진한데? 전화해볼까?"
"해봐."

우린 스파이가 되어 비밀 접선이라도 하는 듯 사뭇 은밀하게 전화를 걸어 속삭였다.

"전단지 보고 전화하는 건데, 파티는 어디에서 하는 거야."
"내일모레 글피 7시에 K 레스토랑 앞으로 와."
"K 레스토랑? 그럼 K 레스토랑에서 하는 파티인 거야?"
"아니. 오면 알아."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채 통화가 끝이 났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라다크 사람의 영어 억양이 아니었고, 유창한 영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스라엘 애들이 파티를 여는 건가? 근데 왜 K 레스토랑에서 모이지? 모여서 같이 어디 굉장한 파티 장소로 이동을 하는 걸까? 라다크에 비밀 클럽이라도 있는 건가?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K 레스토랑은 창 스파에 있는 꽤 큰 규모의 식당인데 사장 타시는 우리에게 동업을 제안할 정도로 꽤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그날 카페 영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우리는 출출한 배를 달랠 겸, 파티에 대한 궁금증을 풀 겸 K 레스토랑에 들렀다.

"그 파티는 왜 K 레스토랑 앞에서 만나는 거야?"
"쉿. 사실 비밀인데, 그 파티는 우리가 주최하는 거야."
"정말? 우리는 이스라엘 애들이 여는 파티인 줄 알았어."
"지역민들이 파티 여는 것에 민감해서. 이스라엘 애들을 앞세워서 홍보한 거야."
"그럼 장소는 어디야?"
"죽여주는 데가 있어."
"어딘데?"
"내가 혼자 드라이브를 하다가 발견한 곳인데, 가운데가 움푹 파인 지형이라, 소리가 넓게 퍼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경치가 기가 막혀. 너흰 100% 좋아할 수밖에 없어."
"그럼 내일모레 여기로 오면 다 같이 거기로 가는 거야?"
"응. 작은 미니 버스를 타고 모두 그 장소로 가서 파티를 여는 거지!"
"입장료는?"
"400 루피(당시 환율로 만원 정도)"
"엄청 비싸네."
"너희는 좀 깎아 줄게."
"정말? 알았어! 그럼 우리 꼭 갈게."

인도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비밀 파티가 가보고 싶기도 했고, 대체 어떤 장소를 발굴했기에 저렇게 의기양양한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발고도 3,500m의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며, 델리에서 버스를 타고 오려면 꼬박 2박 3일이 걸리는 오지 중 오지인 라다크에서의 파티는 대체 어떤 모습일지가 가장 궁금했다. 당시 카페 단골손님이던 한국 사람 몇 명과 일본인 카즈야가 동참하기로 했다. 채비하고 모인 우리들의 모습은 우스웠다. 명색이 파티를 가는 사람들인데 잔뜩 멋을 부리고 옷을 차려입기는커녕, 두툼한 옷을 입고 각기 현란한 숄을 칭칭 두른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꼴 이었기 때문이다. 멋 부릴 옷도 없거니와 아침저녁으로 큰 일교차 때문에 그렇게 껴입지 않으면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래서인지 파티를 가려고 온 여행객들은 많지 않았다. 전 달에는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왔었다는 데 이번에는 대강 헤아려도 50명도 채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세 대의 미니버스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빈자리를 메우고 나서야 버스가 하나둘 출발했다. 자리가 차기를 한참을 기다렸다. 까만 밤이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한 버스는 몸을 덜컹덜컹 흔들며 알 수 없는 어디론가 계속 향해갔다.

"어디로 가는 줄 알아?"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지만 모른다는 답이 돌아온다. 들뜬 목소리로 이런 파티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그를 보니 장소 따윈 상관없다는 태도다. 낮이라면 창밖의 경치라도 구경하며 갈 텐데, 시커먼 밤에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그저 검정 도화지에 지나지 않는다. 5분…10분…20분도 넘게 힘차게 달렸건만 차는 멈출 생각이 없다. 불이 꺼져 정숙해진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 수도 없고, 조곤조곤 수다를 떨다 자연스레 잠이 들었다. 자다 깨다, 자다 깨기를 몇 차례 반복했는데도 버스는 묵묵히 앞을 보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뿐이다.

'대체 어디까지 갈 셈인 거지.'

눈을 한번 붙이고 났더니 몸이 노곤해진다. 이렇게 진을 빼놓고 어떻게 파티를 즐기라는 건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1시간 반을 넘게 달려 파티장에 도착했다.

"에게."

타시가 그렇게 입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그 장소는 그냥 허허벌판일 뿐이었다. 한쪽에 조악한 DJ 박스와 사람들에게 팔 술과 음식을 파는 텐트가 공터에 덜렁 놓여있었다. 타시 말대로 움푹 파여있는 지형이 보이긴 했지만 그다지 특별나게 보이진 않았다. 어둠에 묻혀 주변 경치는 그저 컴컴했다. 술과 음식은 상당히 비싸 서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맥주 한두 캔을 사서 돌려먹으며 가까스로 목을 축이는 게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점차 빗방울이 굵어졌다. 바람도 꽤 거세게 불어와 도저히 춤을 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들 비를 피하고자 작은 천막에 몸을 구겨 넣고 오들오들 떨었다. 라다크는 강우량이 일 년에 100mm 정도라 비 구경도 힘든 지역이다. 이렇게 큰비가 내리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하필이면 마음먹고 온 파티에서 만나다니. 운도 억세게도 없지. 그러고 몇 주 뒤에 홍수가 났다.

"괜히 왔나 봐요. 너무 추워요."

후회 섞인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여기가 서울이었으면 당장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갔을 텐데 피곤하거나 재미없어도 아무도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우리에겐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다 맞으며 춤을 추든지, 추위에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리는지의 선택만이 있었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 수그러들었고,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데우기 위해 모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을 가벼이 흔드는 정도로 몸이 따뜻해지지 않자 나는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질퍽한 바닥을 거칠게 뭉개고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으며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그러니 추위가 한결 가시는 것 같았다. 추워서 뛰기 시작했지만, 뛰다 보니 흥이 났다.

유럽인에게 직접 디제잉을 배웠다는 띨레는 꽤 멋을 부리며 그럴싸한 트랜스 음악을 틀어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어딘가에서 풀 냄새가 풍겨왔다. 하시시 냄새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양 애들과 몇몇의 라다크 아이들이 대마초의 일종인 하시시를 피며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노래를 듣지 않고 있는 건지, 아니면 들리지 않는 건지, 빠른 트랜스의 리듬과 동떨어진 느리고 힘이라고는 전연 없는 움직임이었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들의 춤은 가까스로 자기의 의식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불빛이 없었기에 그들의 몸은 좌우로 일렁이는 검은 연기처럼 보일 정도였다. 공기 속에 섞여 사라지는 하시시 연기처럼 그들도 곧 하늘로 피어올라 사라질 것 같았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거나, 하시시를 건넨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이었다.

"카즈야가 안 보여."

함께 춤을 추던 카즈야가 종적을 감춘 건 좀 오래전 이었던 듯싶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 싶으면서도 걱정이 됐다.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 카즈야가 나타났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저기에 있었어. 서양 애들과 함께"
"별일 없었지?"
"응. 너희들에게 오려고 했는데 남자애들이 가지 못하게 막았어."
"뭐? 네가 남자인 걸 알고도?"
"응. 내 웃음이 귀엽다며 자꾸 이런저런 말을 하며 추근거렸어."
"뭐라고? 너 다시는 쟤들에게 웃어주지 마."

예쁘장한 카즈야를 몇 명의 남자애들이 그를 에워싸고 구애의 춤을 췄다 했다. 우리는 카즈야를 우리 곁에 두고 보호한 채 계속 춤을 이어갔다. 파티장에는 열 명 남짓한 라다크 인들이 있었는데 게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아예 낯선 얼굴도 있었다. 우리가 즐겨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 라다크인은 아무랑도 어울리지 않고 홀로 춤에 몰두하고 있었다. 긴 시간 모두와 격리된 채 혼자 자신의 세계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그의 모습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술에 취한 건지, 하시시에 취한 건지, 음악에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고 황홀경으로 춤추는 그의 모습은 평소 생글생글 웃으며 붙임성 있게 굴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보였기에.

다른 한쪽에서는 말싸움이 벌어졌다. DJ를 하던 띨레와 다른 라다크 사람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낯설지 않은 파티에 흥분한 건지, 원래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대화를 하던 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뻐큐, 셔럽, 뺀죶, 짤로, 마쬬, 준잔-영어, 힌디, 라다크어의 거친 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사이에서 간간이 들렸다. 씩씩거리던 띨레는 제 화를 이기지 못하고 상대를 덮치고 눕혀 마구잡이로 얼굴을 때렸다. 가까이에 맥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띨레가 맥주병을 들려고 하는 찰나 띨레의 삼촌이자 파티의 주최자인 타시의 저지로 싸움은 일단락됐다.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시간이 지나자 졸음이 몰려왔다. 추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숄을 몸에 칭칭 둘러매고 단단하게 고정하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체온을 나누기 위해 옹기종기 붙어서 쪽잠을 청했다.

"이러다 얼어 죽는 건 아니겠지."
"붙어 붙어, 붙어야 살아"

저체온증을 두려워하며 잠이 들었다. 제대로 된 잠 일리는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몸을 뒤척이는데 설핏 눈 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침이 오는구나.'

이제 곧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눈을 번쩍 떴다. 어둠에 가리어진 하늘이 천천히 열렸고 컴컴한 무대 안으로 빛이 천천히 새어 들어왔다. 산 뒤에 숨은 해는 푸른 어둠을 머금은 하늘 위로 어슴푸레한 빛을 잔잔하게 내뿜고 있었다. 우리를 에워싸던 검은 성벽은 설산으로 제 모습을 바꿨다. 밤새 어둠에 유배당한 산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내내 한 곳에 있었지만,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듯 다른 행성에 착륙한 듯 180도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고개를 들고 어디를 봐도 설산이 보였다. 나는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며 나를 둘러싼 하얀 머리의 산들을 둘러봤다.

우리를 잡아먹을 듯 시커멓게 드리워져 있던 거대한 산의 변신에 모두 넋을 잃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은 갈라진 하늘에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비로소 드러난 설산에 홀려 하나둘 분지에서 빠져나왔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그 아름다움에 도취해 아무도 말이 없었다. 바닥에는 맥주 캔과 맥주병과 음식물 쓰레기와 음식물을 싸던 종이들이 흐트러져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은 추위와 피곤함과 숙취에 시달려 추레해 보였다. 기묘했던 파티의 잔해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저분하고 너저분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런 추함조차 압도했다. 말없이 밝아지는 하늘색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어디선가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이 들렸다.

"떠날 시간이야."

우리는 구겨진 짐짝처럼 버스에 실렸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 맥주병을 따는 소리가 났다. 전날 밤에는 없어서 못 먹은 맥주였지만, 새벽부터 그 냄새를 맡으려니 역겨웠다. 나는 조금 전 봤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려 이곳에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카페의 책을 정리하던 나는 폭소를 터트렸다. 론리 플래닛에 떡하니 K 레스토랑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아이들을 앞세워 홍보하고, 쉬쉬하더니 전 세계인이 보는 가이드 북에 올라와 있다니. 이 모순은 대체 뭔가? 지역 사람들만 모르면 된다는 건가. 순간 파티에서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춤추고, 자신들끼리 욕을 하고 주먹 다툼을 하고, 하시시를 줄곧 피어대던 라다크 청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론리 플래닛에 적힌 파티 정보를 읽었다. 다시 웃음이 났지만 이번에는 씁쓸한 웃음이었다.



인도 라다크, 사막에서의 트랜스파티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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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이색적인 파티가 열리기도 하느군요 ㅎㅎ
즐거운 연휴 되세요 ^-^

네! 라다크에서는 자주 저런 이색적이며 비밀스런 파티가 자주 열리더라고요:)

안녕하세요. @trips.teem입니다. 지역사람만 모르는 파티인가요~ㅜㅠ 색다른 파티 잘보고 갑니다. (인도 물가 치고 상당히 비싸네요~) 앞으로도 새로운 정보 많이 올려주세요. 태그 올려주실때 "/" <-를 띄어쓰기로 변경해서 올려주셔야 됩니다. ^^ 감사합니다.

태그 수정했습니다. 이벤트 끝나기 전까지 글 몇개 더 올려볼게요!!

감사합니다.^^ 이벤트 끝나도 트립스팀은 계속됩니다. (계속 이베트 있을 예정입니다.~~)

기대했던 파티가 허화벌판에 너무 추웠군요 ㅠㅠ 아침까지 거기에 계셨다니...
그래도 기억에 남는 추억하나는 생겼었네요 ㅎㅎ
인도여행은 언제 가볼수 있을지...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묘하지만 재밌었던 파티였답니다. 해가 뜰 무렵 펼쳐진 풍경이 그 모든 고난을 어루만져주기도 했고요.

사막파티라 신선했는데 마무리가아쉽네요 큰사고는없어서 다행입니다 즐거운연휴되세요

지역적인 설명이 덜 해서 제 의도가 잘 표현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글은 사실 사막파티에 대한 얘기보다 순박하고 착하고 종교적인 줄만 알았던 라다크 사람들의 이면을 보여주는 글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파티의 즐거움보다는 불편함에 초점을 맞춰쓰다보니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지지 않으셨나 싶어요 :)

와 라다크 가보고 싶은 곳 [오래된 미래]에서 봤던곳이지요 ^^

네 오래된 미래로 유명한 '라다크'예요. 기회가 되시면 꼭 한 번 가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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