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이제 우리도 산티아고를 걷는 노하우를 남에게 전수해 줄 정도가 되었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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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적지인 포르트마린에 오니 92킬로 남았다는 표지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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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큰 강이 마을 옆에 있어서 사람들이 카누나 카약, 요트 뭐 그런 것도 타며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을 즐기고 있다.

마을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강폭이 매우 넓어 다리도 매우 길다.
다리를 건너고 나면 긴 계단을 오른 후에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벽돌로 세운 문이 있다.
우리가 100킬로 지점을 지나 이 마을까지 도착해 산티아고 여정에서 큰 의미가 있는 날이라며 마을에 입성하는 사진을 한국아저씨들이 일부러 우리를 기다렸다가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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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도 흥분된 상태이셨는지 사진은 흔들렸지만, 왠지 그때의 감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해서 보기 좋다.
왠지 개선 장군같은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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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이름을 이렇게 멋지게 마을 입구에 만들어 놓았다.
왠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었던 “나는 암스테르담이다.”라는 조형물이 생각난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서서 포즈를 취하다가 저 조각상이 스페인의 강한 햇빛에 엄청 달구어져 있어서 거의 화상을 입을 뻔했다.
며칠 날씨가 흐리다가 오늘 오전에 안개가 걷히면서 내리쬐는 햇빛이 다시 스페인 여름의 태양으로 돌아온 듯하다.

이렇게 해가 쨍해지니 기분도 쨍해지는 느낌이 든다.
몇몇 사람들은 이 마을은 그냥 지나쳐 가는 듯하다.
우리는 왠지 두가지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늦게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있다.
정말로 신기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우리는 마을 끝에 있는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평점이 매우 좋은데, 마을에서 가장 끝에 있는 곳이어서 우리가 갔을 때는 한두 사람만 있는 상태였다.
평점만큼 시설도 매우 깔끔했다.

씻고 짐을 정리하는데, 우리 옆 침대에 한국 부부가 체크인을 했다.
여기와서 처음 보는 얼굴이라 반가운 마음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상돈씨와 김길양씨인데, 참 특이한 부부였다.
한국 사람이지만 현재 10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성공회 신부님이시고, 일본에서 교회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들에게 15일이라는 시간이 나서 큰 마음을 먹고 산티아고에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순례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피레네 산맥을 오르다가 김길양씨가 다리에 무리가 생겨서 도저히 산 꼭대기까지 오르지 못해 다시 자전거를 끌고 생장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빌렸던 자전거를 반납하고 걸어서 순례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며칠을 걸었는데, 이번에서 아저씨의 발에 이상이 생겼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발이 나을 때까지 버스를 타고 여러 마을을 점핑을 하셨다고 한다.
중간에 스페인 아저씨를 쫓아서 걸었는데, 그 아저씨가 걷기의 고수인 걸 모르고 그분의 걷는 속도를 맞춰서 걷다가 발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한다.
그 아저씨가 얼마나 고수였냐면 이미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다른 마을에 있는 성당을 구경하러 도착한 마을에서 2킬로가 떨어진 성당이 있는 마을까지 와서 구경하고 다시 2킬로를 걸어 되돌아와서 주무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고수랑 같은 패이스로 걸었으니, 경험없는 아저씨의 다리에 무리가 온 것이다.
산티아고에서는 절대로 남의 패이스에 맞춰서 걸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들은 미쳐 알기도 전에 생긴 일이었다.

처음엔 부인이 나중에 남편이 다리에 이상이 생겨서 15일이라는 정해진 기간에 순례길을 걷는 것에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이 둘이 본격적으로 작정하고 걷는 첫날인데, 걷기가 너무 힘들어 아무래도 걷는 게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낙담하고 계셨다.
자전거로 여행을 할 생각이어서 짐을 거의 못 들고 오셔서 침낭도 없이 다니신다고 했다.
우리도 준비 없이 무작정 왔지만 이 두분도 대책이 없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우선은 로지 아줌마에게 받은 지도를 문자로 보내주었고, 걸을 때의 나름 나만의 노하우를 알려드렸다.
아침에 무조건 일찍 나서는 게 유리하다.
걷다가 바나 레스토랑이 나오면 무조건 쉬면서 밥을 먹든지 음료를 마시든지 해야 한다.
식사는 순례자 메뉴를 주문해서 먹으면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와인도 마시고 생수도 얻을 수 있으니 두둑히 먹기에 따이다.
물집이 잡혔을 때와 베드버그에 물렸을 때의 조치할 것도 알려주었다.
처음 산티아고에 왔을 때, 우리도 이 부부처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걸어서 주변 사람들이 이것저것 많은 노하우를 전해주었었는데, 이제는 우리도 나름 걷기 고수가 됐다.ㅋ

점심을 마을 가운데에 있는 강이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너무 맛있게 먹어서, 저녁에도 한국사람들이 몽땅 그곳에 모여 먹기로 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많이 모인 한국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외국 사람들이랑 잘 섞여 지냈는데, 어제부터 많아진 새로운 외국 사람들 때문에 거의 모르는 얼굴들이고 해서 자꾸 한국사람들이랑 어울리게 되는 듯하다.
한국사람들이랑 있으면 말하고 싶은 것 영작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어서 머리가 편해져 좋다.
저녁에 낮에 한국 청년이 소개한 대로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데, 정말로 맛이 아주 좋았다.
사람도 많으니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시켜서 나누어 먹었더니 마치 뷔페 음식을 먹은 듯했다.
푸짐하고 흥겨운 저녁 시간이었다.
밀린 수다를 다 털어놓으며 얼마나 흥겹게 시간을 보냈는지, 사진 한장 찍어놓은 것이 없다.ㅜㅜ

그래도 우린 꾸준히 외국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한다.
덴마크에서 온 예츠나 멜리스와도 많이 친해졌다.
멜리스는 담배도 엄청 피우고, 중간에 산을 넘을 때 말을 타고 넘었던 아줌마인데, 오늘 슈퍼에서 우리를 만나자마자, 길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특히 아이들은 너무 시끄러운데 잘 때는 더 시끄럽다, 자기가 묵는 숙소에 모두 시끄러운 아이들만 백명이 넘게 묵고 있다, 그래서 자기는 도망가고 싶다...며 한참을 투덜거렸다.
예츠는 덩치는 매우 크지만 아주 여성스러운 아줌마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우리와는 자주 대화를 한다. 걷는 게 너무 매력적이어서 더 걷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네팔이나 뉴질랜드 같은 곳에 가서 걸어도 좋을 것 같다면서... 언제나 수줍게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변해버린 분위기에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지만 까미노길 어딘가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한걸음한걸음 열심히 걷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와 남편도 열심히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포르트마린에서 묵은 숙소는 마을 끝에 있는 folgueira라는 곳이다.
며칠 전부터 다시 알베르게에 묵으면서 무조건 평점 높은 곳에서 묵는다.
여기도 30여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인데, 침실이 하나라 30명이 한 방에서 묵는다.
저녁 먹기 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저녁 먹고 들어와 보니 우리 알베르게에도 학생 단체팀이 와서 만실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 숙소에 묵는 아이들은 그다지 시끄럽지 않아서 잘 잘 수 있었다.
멜리스 아줌마는 정말 도망가 버렸을까? 궁금해 하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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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이제 우리도 산티아고를 걷는 노하우를 남에게 전수해 줄 정도가 되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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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네요.
걷는 맛이 날 것 같습니다.ㅎㅎ

저희가 걸었던 30일 중 하루 이틀만 빼고 매일 이런 하늘이었답니다.ㅋ

한상돈씨와 김길양씨... 자전거로 실패~ 남과 함께 걷다 고생^^
걸음을 타인에게 맞춘다는건 참 힘든 일인데... ㅎㅎ

누구나 처음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시행착오가 있더라구요.
저희도 그랬지만, 이분들은 특히 고생을 하셨더라구요.

레온떠난지 얼마 안된것 같은데 벌써 다와가시네요 ^^

아쉬워서 매일매일이 안타까웠던 날들입니다.
하루하루가 천천히 가길 너무도 바라던 때였던 거 같아요.ㅋ

근데, 질문이 있는데요.
트립스토리 책은 아직 도착을 안 했던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과 휴양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마을이라...
왠지 대조되는 모습이 연상되네요.
이것도 트레킹인데 자기만의 속도를 조절하는게 아주 중요할거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일정을 짜고 무리하지 않아야 완주가 가능할것 같군요.

30일을 걷고 나면 걷기에 있어서 '나'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순례자들인 것 같습니다.

스페인 하숙을 보며 힐링을 했어요^^
혼자만의 길을 걸어 가다 보면 잡념들은 점점 옅어 질것 같아요
머리를 깨끗하게 지우고 새롭게 채울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네, 맞습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단지 걷기만 해도 모든 것을 덜어낼 수 있는 곳이 순례길입니다.

여행떠나고 싶어지네요. 걷는건 자신이 있지만 자전거로 여행하고 싶은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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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다음에 다시 산티아고를 가면 자전거로도 가보고 싶어요.
현재는 걷는 것만 해봐서 걷기가 더 매력적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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