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 목적지까지 100킬로도 남지 않았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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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까지 100킬로가 남은 지점에 100킬로 남았다는 표지석이 있고, 그곳에 바가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100킬로 지점에서 기념하기 위해 다들 이 바에 들려 쉬면서 담소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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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그 바에서 우리에게 기념이라며 맥주를 사주셨다. 다같이 남은 100킬로도 잘 걷자며.
걸은지 삼일 정도 된 문태형씨는 이제 조금씩 발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아파도 걷는 게 느낌이 아주 좋아서 산티아고를 지나 혼자라도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도 순례길 중간 쯤 왔을 때 프랑스 생장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이 매우 후회가 됐는데, 문태형씨도 아는 사람들과 만나서 걷겠다는 생각에 중간부터 걸은 것이 후회가 되는가 보다.
참 산티아고 길은 이상하다. 걷는 내내 그렇게 다리가 아픈데, 다들 왜 이 길을 걷는 걸 그렇게 좋아하고, 다 걷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큰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도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일 아쉬운 것이 생장에서 시작하지 않은 것이었다.
누구든 산티아고를 걷고 싶은 사람이면 꼭 생장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어서 완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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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킬로 남았다는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니 이런 생각들이 더 절실하게 든다.
뭐 어떻게 어떻게 걷다보니 정말로 여기까지 와버렸다.
처음엔 완주할 생각도 없었다.
조금 걷다 버스를 타고 점핑할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남편은 다리가 너무 아플 땐 집에 가고 싶기도 했었단다.
난 베드버그에 물려 멘붕이 됐을 땐 뭐하자고 이 고생을 하나 하고 여러 번 울었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자, 출발해 보자."며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나서길 25일째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
참 신기한 일이란 생각이 들면서 괜히 울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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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은 오늘부터 걷는지 힘이 남아돈다.
참새 짹짹, 오리 꽥꽥하듯 구령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면서 걷는다.
이 아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길을 걷는지 무척 궁금하다.
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산티아고 길을 걷고 오라고 했을까?
부모가 종교적인 이유이든 아이의 자립심과 인내심을 위해서든 한번 경험해 보라고 등떠 밀었을까?
아니면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성당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함께 산티아고를 걸어보는 현장 체험을 하기로 하고 같이 이 길을 나섰을까?
아무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이 어른들과 비슷한 느낌을 느낄 지도 궁금하고.
이날부터 하루에도 이런 아이들 단체를 굉장히 많이 보기 때문에 참 많이 궁금했다.

제주도에서도 이런 학생단체 여행객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우리 한국 학생들이 하는 단체 여행의 모습은 여기 산티아고를 걷는 학생들과 매우 다르다.
한국 학생들은 여러 대의 관광 버스에 나누어 탄 아이들은 줄줄이 관광 버스 행렬이 가는 관광지에 가서 모두 내린다. 그리고 잠깐 둘러보고 단체사진 찍고, 다시 다른 관광지로 관광 버스에 올라타고 이동한다.
아침 일찍부터 해가 질 때까지 거의 버스로 이동하는 아이들은 열심히 사진만 찍다가 저녁에 단체 숙소에 돌아가 자기들끼리 놀겠지?

하루종일 20킬로 이상을 걸어서 중간중간에 자기가 짊어지고 온 배낭에 의지해 길바닥에서 쉬고 있는 스페인 학생들을 보면 한국 학생들보다 더 생동감 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자라면 혼자서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도 하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할 때 두려움도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는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닥 생각하는 거 없이 걸었었다.
하지만 25일이나 걸어온 우리는 얼마남지 않은 순례길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걷는 게 크게 힘들지 않아서 인지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살면서 하게 되는 불필요한 잡념을 걸어온 길에 모두 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생각들이 샘 솟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 목적지까지 100킬로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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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서 사람 만나서 맥주랑 음료 한잔 하는거 정말 좋은 시간이 될듯 합니다.
스페인 하숙집인가? 요즘 TV에서 차승원 나오는 프로그램 가끔 보면
이 글들이 막 생각나요.^^

저도 스페인 하숙 열심히 봅니다.
산티아고 걸을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일어나서 흥분상태로 언제나 시청 중이지요.ㅋㅋ

오늘도 지지님은 양념을 잘 버물여 맛있는 글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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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산티아고를 걷고 있네요. 정말 긴 여정이었군요.

네, 걷는 것도 긴 여정이었지만, 그것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엄청 긴 여정이네요.ㅋㅋ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가 있다면 자유로움 인것 같아요.
gghite님의 말씀처럼 한국에서 학생들이 하는 여행을 보면 지나치게 통제된 환경속에서 단지 목적지만 바라보고 떠난다는게 너무 아쉽습니다.
카톨릭교구에서 진행하는 도보성지순례만 봐도 마찬가지 인듯 합니다.
군대에서 행군을 할때 군장의 무게도 산티아고 순례할때 짐보다 무겁지도 않고 하루에 기껏 20키로를 걸었는데도 미친듯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통제된 환경이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해서 그런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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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산티아고 길을 처음 걷던 날, 아무런 제약 없이 노란 화살표만 보고 걷기 여행을 하는 것이 꽤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자유롭기를 갈망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이니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중간쯤 걷고나서야 자유로운 여행이 몸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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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거 같아요.
말씀하신 것과 같이 순례길을 경험한 아이들은 견문이 많이 넓어져 삶에 큰 도움이 될거같아요. 저는 외국여행 자체로만 지구는 정말 크고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라는것을 느꼈는데..^^

왠만해서 삶을 아쉬워하지 않는 편인데, 어렸을 때 더 많은 여행을 하지 못한 건 꽤나 아쉽더라구요.ㅋ

생장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생장... 정말 겁먹지 말고 거기부터 걸었어야 하는데..ㅜㅜ
산티아고는 무조건 생장부터!!!ㅋ

무얼 얻으려 걷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버리려 걷는 건 아닐는지... 많은 걸
내려놓고 오셨길^^

물론 저희도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버리기의 달인이 되었답니다.ㅋ
'짐'이라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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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학생들이 참 존경스럽네요..

그 학생들이 자라면 자기만의 짐을 지고, 800킬로를 완주하게 될 거에요.
아마도 지금의 단체여행이 그들 삶에 '꿈'을 만들어 주었을테니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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