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스페인의 맛있는 과일을 먹으면 생각도 이야기도 많아진다.

in #tripsteem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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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레옹부터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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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서 매우 느리게 청년이 혼자 걷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우리를 보고 그냥 눈인사만 하고 걷고 있는 그의 발이 매우 불편해 보인다.
그는 발이 아픈지 약간 힘들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레옹에서 시작해 지금쯤 가장 발이 아픈 시기가 시작된 순례자일 것이다.
발이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남같지 않아 다정히 말을 걸어 보았다.
게다가 우리는 이때쯤 한참 걷는 일이 재미 있어지고 있었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신나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말이 되든 안 되든 자꾸 대화를 시도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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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스페인 사람으로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예상대로 레옹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어제부터 발에 물집이 잡혀서 너무 아파서 잘 못 걷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의 이름은 파블로였다. 영어를 천천히 하는 걸 보면 아주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단한 대화는 가능했다.
스페인의 경치가 너무 아름답지 않냐며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많은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도 스페인 방문이 3번째인데 산티아고는 처음이라고 설명하고 아주 아름다운 길이라고 칭찬해주었다.
파블로는 우리와 대화하는 도중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마드리드에 가서 비행기를 탈 거라고 하니까 얼굴이 밝아지더니 마드리드에 오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유럽 사람들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더니 파블로 역시 진심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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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아파서 자꾸 느려지는 파블로와 또 만나자고 인사하고 우리가 앞서 나갔다.
우리는 보통 살면서 스치는 인연인 사람과 헤어질 때 “나중에 만나서 밥 한번 먹자.”라고 흔히 인사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만나 밥을 먹는 경우는 없다.

산티아고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로 방금 헤어진 사람과 오늘도 여러 번 볼 수 있고, 산티아고까지 가는 내내 거의 매일을 다시 볼 것이며, 언젠가는 어느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함께 합석을 해서 같이 밥을 먹게 되는 일이 흔하다.
그러니 파블로와 우리는 앞으로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스치는 인연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마드리드에서 파블로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는 우리의 일정이 빡빡해서 시간이 생기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한 사정까지 설명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이 아닌 우리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섣불리 영작해서 말했다가 거절의 의미로 전달될까 우려되어 ‘가능하면 그러자.’ 정도로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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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한 길이 대체 길이어서인지 어제 그렇게 차도 옆으로만 걷던 것과 달리 한적한 시골 길이 계속되었다.
레옹부터 있는 대부분의 길이 차도 옆을 걸어가는 길이어서 개인적으로 태양 아래 끝없는 밀밭, 보리밭을 걷던 초반 코스들이 더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초반에 걸을 때는 너무 더워 땀이 비오듯하고 목이 타고 물집 잡힌 발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고 태양열에 정신이 혼미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길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팜플로냐에서 출발해 며칠 간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매일매일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때 엄청난 고통이 있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요즘 걷는 길보다 초반에 걷던 길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부터는 그때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걸으면서 생긴 육체적 고통이나 피로는 아주 쉽게 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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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길로 만들어 놓은 오늘의 코스도 그때가 생각날 만큼 한적하고 시골스러운 길이다.
오랫만에 밀밭길 옆에서 하나의 점처럼 걷는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이 밀밭 길을 따라 걷는 길은 약간의 경사로를 계속 오르며 고도가 높아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좀 힘든 순례길을 걷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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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언제나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고 나면 이렇게 노점이 있다.
그리고 이런 노점은 언제나 도네이션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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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점은 온갖 과일을 가져다 놓고 골라 먹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수박과 복숭아, 자두를 먹었는데, 달고 맛있었다.

노점을 지키는 아저씨가 얼마나 한국말을 잘 하시는지 내가 우리 카메라를 보고 한국말로 인사를 해 달라고 했더니 온갖 아는 단어를 대방출해 주는 친절을 베푸셨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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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이션으로 돈을 좀 두둑히 내고 여러 과일을 다 먹어 보았다.
갈증이 해소될 때까지 수박을 여러 조각 먹고, 다시 출발해 걸으면서 먹으려고 복숭아와 자두를 두개씩 들었다.
남편은 특히 자두가 맛있다고 했다.
신 과일을 싫어하는 나도 한개 정도는 먹었을 정도로 자두가 시지만 매우 달았다.

우리는 걸으면서 한참을 우리 과일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과일은 후식이나 간식으로 먹는 과일이라기 보다는 제수용이나 선물용 과일이 많다.
요즘 제사를 많이 지내지 않아 꼭 제사 때만 먹는 것은 아니고 일상적으로도 과일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과일을 보는 기준은 아직도 제사용이나 선물용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과일은 크고 예뻐야 한다는 생각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에게 지배적이다.
과일을 크고 예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가에서는 손도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맛은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농가에서는 생산비는 늘어나고, 소비자가 사는 과일 가격은 오른다.
그러다 보니 정작 시장에서는 우리 과일이 비싸고 맛없는 과일이라며 외면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요즘은 수입 과일도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어서 더욱 경쟁력이 떨어진다.
아마도 스페인 같은 경우는 농사를 지을 땅이 넓어서 잇점이 있는 것 같다.
넓은 땅에 심어 놓은 과일 나무에 사람이 하나하나 노동력을 들여서 크거나 예쁘게 만들 수가 없으니 모양보다는 맛을 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날씨도 한몫하겠지만...
그러다 보니 스페인에서 우리가 본 과일은 생김새는 보잘 것 없지만 맛은 아주 과일답다.
우리 농가도 이렇게 모양이나 색깔 신경쓰지 않고 맛을 중요시 여기는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과일을 키우면 그 해의 날씨에 따라 더 맛있을 수도, 덜 맛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과일을 키우면 날씨에 관계없이 언제나 덜 맛있는 과일이 된다.
특히나 제철에 자연적으로 다 익어서 판매되는 과일은 거의 만나기 힘들다.
아마도 작은 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농가의 고초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적게라도 맛있는 과일을 생산한다면, 농사를 짓는 농민도 소비를 하는 소비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생산자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느라, 소비자는 생산자를 탓하느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잘못된 길로 열심히 뛰고 있는 뜀박질을 멈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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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산티아고를 걸으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야심차게 농사를 지어보려고 수년을 노력했던 경력이 있었다.
스페인의 넓은 땅을 걸으며 그들의 땅에서 나는 과일을 먹으며 우리는 그래서 할 얘기가 백만 가지가 넘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스페인의 맛있는 과일을 먹으면 생각도 이야기도 많아진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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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아주 맛있는 과일~
제주의 한라봉이나 레드향~^_^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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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맞아요. 아주 맛있는 제주도 귤~~
그런데 요즘 관광지에서 사먹는 귤도 좀 맹탕인 것들이 많아지고 있더라구요.ㅜㅜ

Good evening @gghite Have a nice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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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보내세요.^^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으로 일우어진다는
불가의 말처럼 많은 인연의 연속에서 여행을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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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이렇게 온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로 운영되는 과일가게라~ 스페인은 과일도 맛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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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부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런 가게에서는 좀 고민을 하게 되더라구요.
기부로 운영하는 숙소에 간 적도 있는데, 고민하다 오히려 다른 숙소보다 더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ㅋ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가면 가장 부러운 것이 넓은 땅이네요.

저들의 지평선은 정말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산티아고에서는 스쳐도 인연 이겠네요 ㅎ 언젠간 다시 보게 될테니

사람의 걸음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수도 없이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해외에서 먹은 과일은 동남아의 열대과일 빼곤 그닥이었는데 스페인의 과일은 맛있나봐요ㅎ

네, 스페인 과일 정말 맛있더라구요.
아마도 순례길을 걷다가 먹는 거라 더 맛있었을 지도 모르지만요.ㅋㅋㅋ

과일 노점이 도네이션으로 운영된다니~ 신기하네요^^
바닥에 하트 돌이 너무 아름다워요~

도네이션 노점이 꽤 많아요.
처음엔 잘 적응이 안되더니 점점 참 편리한 방식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구요.

@gghite님 뒷 모습 사진이 하늘과 어울려 정말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산티아고에 가면 꼭 저런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습니다.^^

Hi @gg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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