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2-7. [뉴질랜드 여행] 3박 4일 밀퍼드 트레킹의 추억 - 첫째 날
2014년, 남편과의 뉴질랜드 여행 마지막 날 오클랜드에 계신 지인분을 뵈었다. 후커밸리 트랙이 좋았다고 말씀드렸더니, 걷는 것을 좋아하면 밀퍼드 트랙을 꼭 가보라고 추천하셨다. 그때는 언제 또 뉴질랜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만 가지고 한국에 돌아갔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친구 커플과 술을 마시던 중 친구네가 뉴질랜드 여행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술김에 농담 반 진담 반 "같이 갈까?"라고 물어봤는데, 그렇게 그 자리에서 또 한 번의 뉴질랜드행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트레킹까지 하기로 했다.
일반인을 위한 밀퍼드 트레킹은 뉴질랜드의 봄~가을인 10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루어지며, 3박 4일 동안 총 53.5km를 단방향으로 걷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곳곳에 옆으로 빠져서 구경하고 되돌아오는 관람 포인트가 존재하므로 실제로는 54km 이상 걸어야 한다. 3박 동안 숙소에 묵을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므로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해야만 참가할 수 있다. 밀퍼드 트레킹 소개와 준비물은 다른 포스트로 나눠서 쓸 예정이다.
첫째 날
새벽부터 일어나 예약해 둔 버스를 타고 퀸스타운에서 테아나우로 향했다. 버스는 테아나우의 중심지에서 정차하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슈퍼에서 간단하게 장을 본 후 트레킹의 시작점인 Fiordland National Park Visitor Center로 향했다.
중심가에서 목적지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로 평소 같으면 교통편은 없나 찾았을 법도 하지만, 트레킹 첫날이었기에 배낭을 메고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호수의 멋진 풍경을 보는 순간 이미 밀퍼드 트레킹이 시작 된 느낌이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티켓을 받고 테아나우 다운스 선착장으로 향하는 승합차를 탔다. 이후 선착장에서 밀퍼드 트랙이 시작되는 Glade Wharf까지 약 1시간가량 배를 타고 이동했는데, 배 안에서 접했던 파란 하늘, 호수, 바람, 그리고 설렘을 잊을 수 없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물 위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테아나우 부터 밀퍼드 사운드까지의 도보여행 길을 처음 탐사한 뉴질랜드의 탐험가 Quintin McKinnon의 묘비이다. 맥퀴논은 밀퍼드 트랙을 개척하고 4년간 이곳에서 여행 가이드로 활동했지만, 어느 날 배를 타고 나가서는 더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글레이드 워프에 도착 후 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배를 떠나보내면 3박 4일 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밀려왔다. 우리가 선택했던 개인 트레킹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옷은 물론 음식, 코펠과 침낭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 했기에 가방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트랙에 들어가기 이전에 원시림 보호를 위해 신발을 소독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공항 입국 시에도 텐트, 침낭, 등산화 등에 흙이 묻었을 경우 반입을 거부하는데, 그 절차들이 귀찮기보다는 특유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감명 깊었다.
20분 정도 걷다 보니 Guided Trek의 첫 숙소인 Glade House가 나왔다. 우리는 Independence Trek을 선택했기에 조금 더 걸어야 했다. 밀퍼드 트랙은 샌드플라이(하루살이처럼 생겼으나 물리면 매우 가렵고 오래 지속됨)로 유명해서 긴소매 긴바지는 물론 장갑까지 온몸을 감싸고 걸었는데, 다른 여행자 중에는 괘념치 않은 채 반소매,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출렁이는 다리를 지나고, 에메랄드 빛의 강을 끼고 걷다가 이끼가 가득한 숲을 지나기도 했다. 숙소로 오는 도중에는 갈림길도 한 번 있었지만, 얼마나 소요되는 곳인지 몰라서 일단 숙소로 향했다.
출발지로부터 1시간 반 정도 걸은 후에 첫날의 숙소인 Clinton Hut에 도착했다. 첫날은 버스와 배로 이동하는 시간도 고려했는지, 많이 걸을 필요는 없었다. 숙소는 잠을 잘 수 있는 방과 주방,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장실은 변기와 휴지, 찬물이 나오는 세면대만 있을 뿐 샤워 시설은 없다. 주방에는 물과 친환경 세제, 가스레인지, 성냥이 제공된다. 가스레인지는 점화 플러그가 없어 매번 성냥으로 불을 붙여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숙소의 각 방에는 20명 정도가 잘 수 있는 2층 침대가 있다. 하지만 이불 및 베개는 없어서 침낭이 필요하며, 베개는 가방을 베는 것으로 대신했다. 숙소 문에 가까운 침대일수록 샌드플라이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도착하자마자 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침대를 선점했다.
가지고 왔던 3일 치 음식에는 초콜릿, 비스킷, 홍차, 커피 등의 간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 걸었다고 그새 배가 고파지기도 했고, 나흘 동안 줄일 수 있는 짐 또한 음식밖에 없기 때문에 크래커에 홍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우리가 가지고 간 간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땅콩버터다. 워터 크래커에 발라 먹어도 좋지만, 산행 중 쉼터에서 마신 땅콩버터를 탄 맥심 커피는 고소한 맛은 물론 배고픔까지 어느 정도 해결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매 숙소에 도착할 때마다 숙소 담당자와의 모임 시간이 정해져 있다. 모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인원수를 점검하는 것이었고, 그 외에 숙소 주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린턴 헛의 담당자는 반지의 제왕에서 봤을 법한 키가 정말 큰 할아버지였는데 함께 산책하며 근처의 식물과 주위에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주셨다.
고민했었던 갈림길로 가면 마누카 꽃이 피어있는 습지대가 나온다는 말에 그곳으로 향했는데, 숲을 걷다가 갑자기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발을 담그러 내려갔던 붉은 사슴이 나온다는 냇가에서는 사슴 대신 배설물만 볼 수 있었다.
산속이라 그런지 이곳은 해가 빨리 졌다. 다음 날 아침에 또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해야 했기에,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침대에 누웠다. 하필 같은 방에 코를 고는 사람이 있어 사람들이 하나둘 한숨을 쉬기 시작했는데, 혹시나 몰라서 챙겨갔던 이어 플러그를 귀에 꽂았더니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당시의 나는 불면증이 있어 매번 침대에 누운 지 2~4시간은 지나야 잠들곤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적절한 운동의 효과였는지, 아무에게서도 전화 연락이 올 수 없다는 점 때문인지, 맑은 공기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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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곳이네요 저도 꼭 여자친구와 같이 가보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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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 뉴질랜드 남섬 자체도 좋은 곳이 정말 많더라구요! 꼭 가보시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