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은 것에 대하여..

in #stimcity3 years ago

타려던 버스를 놓쳐 이동 하지 않았고, 예약한 비행기표를 버려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꿈이었으니까. 꿈이 아니어도 길 위에서 버스표를 버리고 비행기표를 찢는 일은 꽤나 자주 생긴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떠나기 직전에 버스표를 사고, 이동하며 숙소를 예약하고, 출발 며칠 전에 비행기를 예약한다. 장기 여행자가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요즘 전자책 도서관과 알라딘으로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있는데 대학 시절 지도교수님의 책 서문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이란 귀찮고 고달픈 데가 많지요. (중략) 하지만 떠남은 숙명이라고 믿고 있어요. 내가 오랫동안 공부해 온, 내가 아주 사랑하는 옛이야기들이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떠나라고, 떠나야 살 수 있다고, 머무는 건 죽음이라고.....그 앞에서 나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진실이니까요.

신동흔,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中

길을 떠나는 옛이야기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면 내 대학 논문 주제였던 바리데기 실화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떠났지만, 결국 자기를 살린 이야기였다. 서문을 읽고 내용을 좀 보다 졸업한지 10년이 넘어 교수님에게 수업 받는 느낌에 잠시 내려두었다.

어제, 시인이 쓴 여행산문집을 하나 사봤다. 뒤적이다 본 시 한편에 망설이지 않고.

아무에 대하여

앉을 데가 있어서
앉는 게 아니라

앉고 싶으면
아무데에나 앉는 것에 대하여.

살 데가 있어서
집을 얻는 게 아니라

살고 싶으면
아무데에나 짐을 푸는 것에 대하여

갈 데가 있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떠나고 싶으면
아무데에나 가는 것에 대하여

말할 게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어떤 말이든 하는 것에 대하여

김소연, <그 좋았던 시간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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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렁슬렁 읽었던 책 두권과 방금 꾼 꿈으로 나는 너무도 떠나고 싶고 아무데에나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아무데에나 짐을 풀고 아무데에나 퍼지게 앉고 싶었다. 오래 전 떠나온 인도 여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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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건 죽음.

돈 스테이. 무브, 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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