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은 없다.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낮에 20세기소년에 가서 펍 메뉴 작업을 했다. 와인 종류와 칵테일 종류를 대폭 늘리고 안주도 약간 추가했기 때문이다. 오늘 낮에 외국인 손님이 번역 어플로 우리 메뉴판을 봤다며 마법사님께서 카페 메뉴에는 영문을 추가해달라 요청하셔서 카페 메뉴도 다듬었다. 춘자와 정렬 문제로 많이 부딪히곤 한다. 내가 포토샵으로 다 틀을 만든 20세기소년 사용설명서도 정렬이 맞지 않는다며 굳이 일러스트에서 재작업을 할정도로 그녀는 정렬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예전에 카드뉴스를 만들 때도 좌우 정렬 좀 맞춰달라는 말을 그녀는 밥 먹듯이 했다. 내 눈에는 이 정도면 전혀 신경쓰이지 않게 잘 정렬된건데 p와 j의 감각이 이렇게 다르다. 재미나지만 p인 나루는 정렬에 신경 쓰는 타입이고 마법사님은 자신이 정렬을 맞추지 않는 건 신경쓰이지만 남의 결과물에는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포토샵에는 정렬 기능이 없어 선을 굳이 그려 정렬을 일일이 맞췄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두 메뉴판을 완성했다.

날씨가 선선하니 야외에서 한 잔하기 좋은지 오늘은 낮술을 하는 테라스 손님이 두 팀이나 있었다. 그제 백신을 맞아 술을 안마시던 나는 낮술이 어찌나 부러운지 군침만 삼켰다. 저녁에는 싱그러운 20대 소녀 사인방이 와서 각각 제 술을 결제했다. 3명이 깔루아 밀크, 한 명이 크랜베리 주스를 시켰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그들은 다트도 하고 해먹에도 눕고 20세기 스튜디오를 마음껏 즐겼다.

"남자친구랑 왔을 때 만나면 서로 모른 척하기다~"

라는 앙증맞은 말을 했다고도.

나루와 지인이 낮에 와서 둘이 수다를 떨다 저녁에는 같이 술 한잔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떠나고는 신메뉴인 까나페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그리고 참다가 결국 와인을 마시고야 말았다. 멀쩡하니까 뭐...

크래커+감자샐러드+체다+루꼴라+방토
크래커+체다+살사 소스+피클+나쵸 소스
크래커+감자샐러드+햄+피클+올리브

이렇게 삼종으로 대충 정했고 약간 소스의 변주를 주어 내일 확정할 예정이다. 낮술 손님 덕에 저녁까지 이 분위기 그대로~갈 줄 알았으나 잠잠했다. 소녀들 외에는 맥주를 두 잔 씩 먹은 여자 손님 둘 밖에 더 이상 20세기소년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며 춘자와 놀러온다고 했지만 오고 있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다들 얼마나 별 일 없이 하루하루를 심심하게 보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한 친구는 직군의 특이성 상 사람들과 접촉했다 코로나에 걸리면 수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기에 두문불출한지 오래되었다고도 했다. 불금이란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휴일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놀지 못하고, 노는 법을 잊어버렸으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매일이 파티인것처럼 북적북적 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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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노는 법을 까먹은 것 같다는데 동의합니다. 정확히 말해 친교에 인색해진 것이죠. 20세기소년의 저녁 손님들이 적어진 건 사람들이 집 근처에서 술을 마셔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운이라는, 펍 전문가의 분석

저도 20세기소년 전에는 보통은 집 근처에서 많이 놀긴 했어요. 술 먹을 시간이 없는데 멀리가는 것이 시간 낭비라 느껴지고 모두가 우루루 귀가하는 지옥철을 견디는 것이 끔찍해서요. 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동대생이거나 인근 거주자가 확실히 많긴하더라고요! 확실히 멀리 나가면 이동 중에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도 많아지니 안전 때문이라는 분석도 일리가 있네요!

저는 정렬이 어긋나도 볼 줄 알아서, 만들 때 맞춥니다. 근데 남이 안 맞춰도 상관없고, 저도 맞추려고 맞추는 것이 아닌 만드니까 맞춥니다.

저는 맞춘다고 맞추는데 잘 안맞더라고요. 눈대중으로는. 근데 왠지 줄 맞추는 작업하는 소수점님은 너무 안어울리는 너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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