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62. 내가 총수야!

in #stimcity8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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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보기 전에는


"세상 대부분의 일은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죠. 밖에서 보는 것과 머리로만 상상하는 것.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현실에 드러날 때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니까요 . 그러니 우리의 이상이라는 것, 꿈이라는 것은 머리로부터 손을 거쳐 환경과 부딪히고 현실에 등장한 순간부터가 시작이에요. 머리에 있던 것이 환상이라면 현실에 등장한 것은 각종 문제들로 점철된 골칫덩어리 현실이죠. 몰려온 그것들을 손에 들고 바라보고서도 계속 하고 싶은지, 바라던 그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겠는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해요. 포기는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스팀시티]의 로드맵을 멋들어지게 그려 놓았지만, 그것이 그냥 환상으로 머물게 할지, 현실로 끄집어낼지 결정하는 것은 총수들의 몫이에요. 그리고 막상 현실에 등장한 그것과 그것이 파생시키는 수많은 문제들, 예상되는 난관과 갈등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지점까지는 아직 시작한 것도 아니죠. 그래서 좀 더 적나라하고 혼란스럽고 잔인할 필요가 있었어요. 우리는 영원을 약속한 사이들이 아니잖아요.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거예요. 스팀잇, 그리고 [스팀시티]로 말이죠. 그러니 계속 가던 길을 갈지, 여기서 운명을 전환시킬지 선택해야 해요.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는 총수라면 더더욱.."



멀린은 마법사로서, 가능한 커버하지 않고, 가능한 보호하지 않고, 초기의 상호작용을 거칠고 적나라하게 전개되도록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각자의 선택과 운명을 분명히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군요. 세상의 많은 일들이 어정쩡한 연대와 어설픈 상호작용으로 지지부진 가다 말다, 서로에게 질척이다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대부분의 시도가 그렇고 그중 아주 적은 몇몇의 시도만이 결과를 맺습니다. 멀린은 그런 일을 반복하기에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위험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돈이 오가는 리얼 비즈니스의 현장이니까요. 대학교 동아리 운영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그래서 선수들은 아직 입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얻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산업이 아직 노출되기 이전의 이상의 땅이기에,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가능하고 또한 [스팀시티]도 태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상에 취한 이들이 밀어주는 단계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환상과 꿈을 말하고, 잔뜩 흥분한 지지자들의 지원과 응원에 힘입어 프로젝트와 연대, 단체를 발족시키는 일까지는 쉽습니다. 모두들 그러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은 설익은 필드에서 결과를 내는 일은, 고시보다 어렵습니다. 괜히 선수들이 지켜만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인 것입니다. 시험 봐서 공무원 되는 일보다, 어디서 물건 떼어다 온라인 스토어에서 도매상을 뛰는 것보다 십만배쯤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 가져갈 보상의 크기 역시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필드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들은 바보 아니면 진짜, 둘 중 하나입니다. 멀린은 총수를 추대했습니다. 자기가 원래 알던 누구, 기존 커뮤니티에서 잘나가던 누구를 추대한 게 아닙니다. [스팀시티]의 이상을 듣고, 이건 내가 하면 잘하겠다, 이건 내가 하고 싶다 손든 이에게 '총수 해보겠습니까?' 제안한 것입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구나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해보니 자신이랑 맞지 않을 수 있고, 총수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걸 누가, 기준을 어떻게 세워 선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인데요.


"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일단 운명의 테두리에 들어와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 일이나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음은 '해보니 되더라' 하는 단계를 스스로 경험하는 겁니다. 그래서 빨리 '해보아야' 했구요. 그 과정에서 '아, 이건 아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건 실수도 실패도 아닙니다.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게 세상에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해봤는데 '더 하고 싶고', 해봤는데 '할만 하고', 해보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면, 그건 운명일 겁니다. 그런 거면 계속 도전해 볼 가치가 있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법사뿐만 아니라 [스팀시티] 역시 말이죠. 그러려면 [스팀시티]의 총수로서 자신을 스스로 신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스팀시티]로부터도 신임받을 수 있어야 하구요. 또한 마법사와도 상호 간의 신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뭘 같이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스팀시티]와 총수들, 그리고 마법사 간의 상호 재신임, 아니 첫 신임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죠."



신임이 불발되었더라면 지지를 철회한 10%에 합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그럴듯한 핑계를 대거나, 아님 솔직한 말로 총수직을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총수들은 스스로를 총수로서 자임했고 또한 [스팀시티]와 마법사를 신임해 주었습니다. 멀린은 돕는 자이니 뭘 더 신임하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팀시티]의 신임 여부일 것입니다.


"그것은 총수 추대의 과정에서와같이 직관적이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총수들에 대한 [스팀시티]의 신임이 확인되는 과정 말이죠. 물론 신임장은 '春子'를 통해 이미 전달되어 있었지만, 그것의 공식적인 발효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신임장은 내려왔으나 발령이 나고 있지 않았던 것이죠. 나는 그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무언가가 더 필요했던 것이겠죠."



그리고 마침내 싸인이 도착했습니다.



인연의 시작, 만달라


커다란 불을 피워놓고 그 속에 공양물을 던지는 의식을 마지막으로 만달라는 부수어졌다. 일주일 동안 공들여 만든 만달라가 스님 손바닥 밑에서 단숨에 슥슥 지워져 버리는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내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방금 전만 해도 경이로운 예술작품이었던 만달라는 순식간에 모래더미가 되었다. 지켜보고 있던 나의 표정만 일그러질 뿐, 스님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움직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삼십 분 가량의 예불이 끝나고, 만달라 만들기에 참여했던 한 스님이 별안간 승복을 훌렁 걷더니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남은 만달라 모래를 전부 부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서 재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_ [한 달쯤 라다크] 인연의 시작, 만달라 / 라총수


“직관은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고 뜻밖의 과정을 통해 계시되었어요. 그러니까 라총수가 썼던 그 책 말이죠. 라다크에서의 3년간의 카페 창업기를 엮은 '한 달쯤 라다크'를 라총수가 총수로 추대되는 과정에서 읽었죠.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으니까요. 책을 읽어내려가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따로 스크랩해두었어요. 책이 절판되어서 E-book으로 읽고 있었거든요. 마침 그 E-book 어플에 스크랩 기능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스크랩해두었는데, 교토에서 돌아와 한 달쯤 되던 어느날 아침 태블릿을 열었는데, 푸쉬 알람으로 바로 저 문장이 카드엽서의 형식으로 뜨는 거예요. E-book 어플의 새로운 기능이라며.. 그리고 바로 그날 <스팀문학전집>에 저 문장이 적혀있던 챕터가 올라왔죠. 라총수가 <스팀문학전집>의 첫 작품으로 '한 달쯤 라다크'를 연재하고 있었거든요. 때가 된 겁니다. 새로운 인연이 시작될 때가 말이죠."



라총수는 방학 숙제로 <스팀문학전집> 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도망칠 생각이었거나, 합의와 분담을 핑계로 댈 거였으면 하지 않았을 새로운 일입니다. <스팀문학전집>은 [스팀시티]의 메인 프로젝트 중 하나였지만, 이제까지와 같이 총수단의 회의를 거쳐 진행해야 하는 일로 수동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면 쉽게 시작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라총수는 온갖 소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방학 중이라고 핑계대며 눈치를 볼 수 있었음에도 늦추지 않고, 자발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책임하에, <스팀문학전집>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총수야!'



선언하고 있었던 겁니다. 말이 아닌 실천과 행동으로 말이죠. 그것으로 이미 그는 [스팀시티]의 총수 신임장을 득했습니다. [스팀시티]는 이미 총수의 신임을 전제로 새로운 미션을 제시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그 발효의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순차적으로 올라오는 <스팀문학전집>의 첫 번째 작품 '한 달쯤 라다크'의 순서를 따라 3주간을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때에, 중단되지 않고 계속 포스팅되어 온 순서를 따라, 마법사에게 이미 계시되었던 그 문장으로, 때가 되었음을 알려 온 것입니다.


"그날 아침 그 문장이 카드엽서로 뜨고, 당일 <스팀문학전집>에 올라오자, 바로 라총수에게 연락을 했죠. '잘 지내셨죠. 돌아왔으니 만납시다.'하고 말이죠. [스팀시티]의 신임과 마법사의 복귀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죠. <미니스트릿>이 끝난 지 두 달 만에, 마법사가 교토에서 돌아온 지 한 달만에, <스팀문학전집>이 시작된 지 3주 만에 말이죠."



라총수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10%들과 함께 원망과 분노에 차 책임을 회피해 버릴 수도, 스카웃에 응할 수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마법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내친김에 영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총수의 원칙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그의 선택은 처음부터 자발적이고 주체적이었음을 명명백백하게 실천과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두 달의 시간은 [스팀시티]를 가라앉게 했습니다. 그것은 선택한 일입니다. 만달라를 부숴 버리듯 모두가 선택한 일입니다. [스팀시티]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진심 어린 지지와 참여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 몰이해와 비아냥, 비난과 협잡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도에 끼어드는 잡음과 과잉된 기대들이 역시 [스팀시티]에도 존재했습니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잘 어르고 달래서 성장의 에너지로 전환시켰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익히 아는 수많은 기업들, 포털들, 플랫폼들처럼 무시할 거 무시하고, 챙길 거 챙겨가며, 한 세월을 잘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부족한 대로 명성과 나름의 보상을 챙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스팀시티]는 처음부터 이상적이었습니다. 블록체인/암호화폐의 태동과 조우하며, 그 에너지에 공명하여 시작된 프로젝트이니, 그 순수성, 그 진정성에는 잡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더라도, 시작되는 일에 끼어든 잡음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완성된 만달라도 부수는 판에, 불순물이 끼어든 만달라 부수는 게 어려운 일이어선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 아닐 테니까요. 어려움과 난관은 있을 수 있으나, 협잡과 저의로 얼룩진 상처뿐인 영광을 보자고 이 불확실한 필드에 뛰어들 순 없습니다. 무엇보다 [스팀시티]가 그걸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팀시티]의 시작에서 불순한 저의와 미숙한 태도가 스며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생겨난 거품을 취하려면, 그마저도 받아안고 '옳거니 괜찮거니'하며 뒤뚱뒤뚱 나아가야 하겠으나, 그럴 거면 [스팀시티] 뭐하러 합니까? 블록체인/암호화폐 뭐하러 합니까? 세상에 그런 같잖은 시도들이 널렸는데, 선수들은 손도 대지 않는 어설픈 이 대지에서 왜 그러고 뒹굴겠습니까? 은행을 털거나 보이스피싱, 다단계 폰지사기를 치고 말지. 그런 게 아니라고, 겨우 그런 기대를 걸고 [스팀시티]가 시작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탈곡기로 탈탈 털어서 쭉정이들을 날려 버리고, 묵직한, 아직 제대로 된 기회를 만나지 못한 진짜들이 자신의 실력을 한번 펼쳐 보이라고 떠올랐던 겁니다. [스팀시티]가 말이죠. 그러라고 마법사도 보내고 총수도 세운 겁니다. 그러니 불완전한 만달라는 부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겁니다. 흔들고 부수고 내버리고 털어보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겁니다. 총수들에게, [스팀시티]의 시민들에게, <위즈덤 러너>들 앞에 끊임없이 등장하게 될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그 시작이 좀 요란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증명했으니 [스팀시티]는 이제야 시작된 겁니다."



격앙된 마법사가 흥분해서 격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일을 생각하니 또 화가, 노여움이 불끈불끈 하나 봅니다. 이봐요 멀린, 나나상의 당부 잊으셨습니까? 건강을 챙겨야 합니다. 죽으면 [스팀시티]고 뭐고 다 뭔 소용입니까? 진정하고 생각 좀 해 봅시다.



마법사를 만나면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제까지 마법사의 삶을 쭈욱 지켜보아 온 바로, 인생에서 마법사를 만난다는 것은 마치, 길 가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게 된다는 속설처럼 누군가에는 무시무시한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인생을 살며 적어도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데, 그 기회 중 적게는 한 번, 아니면 그 3번의 기회를 모조리 사용해도 얻을 수 없는 결과를 향한 여정이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마법사를 만나면 말이죠. 혹자들은 그것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그런 일이 막상 벌어지자,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하다 무산시키거나, 마법사의 조언을 무시하고 흥분해서 제멋대로 하다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넘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다치고 심지어 누군가는 죽기도 합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법사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인간은 어찌도 이리 성급한가 한탄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을 뿐이고, 했어야 할 제안을 했을 뿐입니다. 그냥 지나쳤으면 차라리 좋았을 일이었지만, 어느 누가 제 운명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제 욕심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기왕에 생겨난 욕심이라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순전하게 최선을 다해보는 겁니다.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마법사의 제안에 그래서 안 된 일은 없었습니다. 준비 없이 시작되어버려 흥분하다 부나방이 되었을지언정. 그런 일이 반복되자, 마법사는 달려드는 파리와 쭉정이들에게 냉혹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구제하는 일 일테니까요. 언감생심 고압 전류가 흐르는 불빛 속으로 날아갈 때에는, 온몸을 절연체 고무로 된 강한 의지와 진짜 실력의 외투로 무장하기 전에야 달려들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새카맣게 타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파리채로 휘휘 쫓아버립니다. 피하는 게 상책인 인간들에게 파리 채찍을 휘두르는 겁니다. 그러나 마법사를 괜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나야 했으니 만난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번 생에는 준비가 덜 되었으니 다음 생에 보자며, '이번 생은 여기까지'라고 정중한 인사말을 남길 뿐입니다.


"흘려보낸 기회는 아쉽지만, 기회가 지나가면 절벽이 기다리고 있죠. 그러니 기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그것은 일단 붙들고 봐야 합니다. 마법사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질질 끌려가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누구 딴 사람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말입니다. 이딴 글 누가 읽는다고, 어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겁니까? 이게 운명이라고, 이게 기회의 시작이라고 말하면, 나는 아니겠지 뒤꽁무니를 뺄 겁니까? 스크롤을 멈추고 백스페이스를 누를 겁니까? 안 본 척 얼굴을 도리도리할 겁니까? 어~ 그래도 계속 읽고 있네. 그럼 마법사부터 붙들고 늘어지십쇼. 그에게 아는 척하고, 그에게 질문부터 하는 겁니다. 어쭈 이게 장난인 줄 압니까? 클났습니다. 당신도 걸려든 겁니다. 이미 기회 하나를 써버린 겁니다. 이제 남은 기회는 빠져나가는 데 쓰십시오. 도망가려거든 말입니다.

이게 대부분인데. 이런 반응이 대부분인데, 라총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진정 기회로 여기고, 묵묵부답인 마법사를 기다리며 그에게 계속 말을 건 겁니다. 그리고는 기회의 자장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계속한 겁니다. 그 속에 [스팀시티]의 다음 미션을 들고 온 마법사와 다시 조우할 수 있는 운명의 키가 숨어 있음을 모른 채로 말입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흐지부지하지 않고, 하나하나 해내다 보니 마침내 이른 것입니다. 준비되어 있던 그 챕터, [스팀시티]가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챕터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만달라는 부숴져야 한다.' "



이 무슨 미친 마법사가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자의식 과잉으로 미쳐버렸구나 싶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아무도 읽지 않는 <스팀시티 영웅전>을 꿋꿋이 연재해가려면, 이 정도 과잉된 자의식 없이 어찌 연재를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겁니다. 세상에 마법을 가져오는 이들은 이 정도의 과잉된 자의식과 이 정도의 미친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고서야, 저 표준과 현실성의 잣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나 단단하게 우리의 사고와 습관을 옥죄고 있는지, 미친 몸부림을 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존재하는 현실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마법의 세계로부터 표출되어 현실의 표준이 되어버린 것들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그렇고, 전기가 그렇고, 당신이 지금 마법사의 글을 읽고 있는 이 디지털이, 이 온라인이, 이 단말기가 그렇습니다. 표출되기 100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모두 마법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을 화성으로 날려 보내는 마법 같은 일이 시도되고 있고, 암호화폐로 구동되는 네트워크 도시 [스팀시티] 역시 한발 한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니가 모른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니가 말도 안 된다고 비웃는다고 실현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깝치지 말고 와서 마법사의 말을 들으십시오. 이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란 걸, 그러니 기회 하나를 이미 써버렸다는 걸 잊지 말고 뭐든 하십시오. 라총수처럼 말입니다.



(아,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이의 자유여!)



라총수는 기회를 놓지 않았고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의 과정에 [스팀시티]의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고, 마법사는 신임장과 함께 그다음 미션을 들고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때에 이르러 만달라는 부숴지고 마법사는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스팀시티]는 자신의 선장이 되어 줄 총수들을 찾게 된 걸까요? 신임장을 내렸으니, 이제 [스팀시티]는 다시 떠올라 항해를 시작하게 될까요? 그러나 부서진 만달라를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하듯, 가라앉은 [스팀시티]는 다시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라앉았는지 모르는 [스팀시티]는 자신을 찾아오라고 미션을 알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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