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I AM A MONK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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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nzen25




나는 대학교 때 부전공으로 철학을 공부했다. 학기가 끝나고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쯤 얼굴도 본 적 없는 한 철학과 선배가 승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과, 가령 경영학과나 영문과 선배였으면 의아해 했을 그 소식이 철학과라는 이유로 어렵지 않게 고개가 끄떡여졌다. 당시 나는 불교 철학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어떤 문제든 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유를 거듭하다 보면 늘 그 끝 지점은 불교의 사상과 맞닿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느끼는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까웠다. 승려들은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철학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기에 그 소식은 내게 더 쉽게 받아들여졌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가진 깊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가진 걸 전부 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난 자신이 살아온 삶을 포기하고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낼 법한 깊고 짙은 향기를 상상했다.

2007년 티베트 여행 중 방문한 간덴 사원甘丹寺안에는 독경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목을 꾹 누르고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 들어 올린 낮은 소리에 실린 불경이었다.

소리는 낯설었다. 누군가를 위협하기 위해 동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들리기까지 했다. 높은 천장 아래 낮은 염불 소리는 고요히 퍼져나가 사원을 가득 메웠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괴이한 소리는 신비로웠지만 동시에 공포심을 자아냈다. 이럴 때 경외심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 붉은 승복을 차려 입은 승려들은 꼿꼿이 앉아 기괴한 소리를 쉬지 않고 만들어내고 있었다. 목이 메어 마른기침을 하지는 않을까 빤히 주시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앳된 동승이 여행자들에게 버터 차를 내내 따라주고 있었다. 찰랑거리던 차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라치면 쪼로록 달려와 찻잔을 가득 채워줬다. 짭쪼름하고 느끼한 차는 입에 지독히 안 맞았다. 바쁘게 차를 따르는 동승의 성의를 거부할 수 없어 단지 입술만 적실 뿐이었다.

우리를 비롯한 관광객들은 승려들을 지켜보기 좋은 자리에 줄을 지어 앉아 그들의 기도를 구경했다. 하나의 공간이지만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고,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들과 내가 속한 세계는 일상의 흐름이 다르고, 한 음 한 음 낼 수 있는 소리의 높낮이가 다르고, 한 올 한 올 사상의 실타래가 달라 보였다. 헤아릴 수도, 헤아릴 엄두도 나지 않는 세계에 그들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갈한 외모와 엄숙한 분위기의 승려들에게는 그 또래에게서 볼 수 있는 가벼움이나 장난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을 사춘기 소녀의 눈망울로 바라본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말을 거는 건 생각도 못했고 "타시델렉"이라고 티베트 인사말을 건네는 게 고작이었다. 그들은 선뜻 다가갈 수도 없이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어려운 존재였다.


스피툭 곰파의 천진난만한 동승들.JPG


이러한 생각이 처음 깨진 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였다. 다람살라는 세 시간 정도 바쁘게 다니면 마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티베트 불교 혹은 티베는 문화에 심취한 외부인들로 손바닥만 한 작은 마을은 내내 북적였다. 티베트 승려와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있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티베트 승려들이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불교에 대해 논하는 모습은 참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오가며 만난 한 티베트 친구와 함께 그 이질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티베트에서 본 스님들과 여기서 본 스님들은 느낌이 달라."

"어떻게 다른데?"

"여기에 있는 스님들은 길 가다가 불쑥 말을 걸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여행자를 대하는 것이 좀 놀라워. 다들 영어도 잘하고. 티베트에서 본 스님들은 그렇지 않았거든."

"다를 수밖에 없지. 여기는 관광지잖아. 티베트 남자, 특히 승려들을 꼬이려고 작정하고 여기에 오는 서양 여자들도 많아."

"왜? 굳이 승려를?"

"몰라, 승복 입은 모습이 멋있나?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잖아."

그는 외국 여자와 결혼해 전 세계로 망명한 티베트인들이 많다고 했다. 코딱지만 한 다람살라에서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하고 한량처럼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유일한 구원은 여자라고 했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새로운 여자 여행자들을 훑어보고 말 걸고 꼬이기에 바쁜 티베트 남자들을 많이 본 터라 쉽게 수긍이 갔다. 하지만 외국인과 결혼을 하고 다른 나라로 망명한 티베트인 중에 파계한 승려들도 꽤 된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것은 종교와 신념보다는 나라를 잃고 망명자로 살고 있는 현실에서 살 방도를 찾고자 하는 발버둥일지도 몰랐다. 실망스럽지만 그들을 비난하거나 탓할 수는 없었다.


라다크는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티베트보다 티베트 불교가 잘 보존되어 있다. 나는 다람살라를 거쳐 도착한 라다크에서 처음 스피툭 곰파를 방문했고, 만달라를 만드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색색의 고운 모래로 만들어지는 부처의 세계도 신기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그란 만달라 틀에 코를 박고 모래로 색을 채우는 승려들이 더 흥미로웠다. 그 이후로 줄기차게 드나들어 매일 곰파를 오가는 승려들과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만달라를 만들 때는 한없이 진지하지만 쉬는 시간이나 밥 먹는 시간에는 영락없이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었다. 스스럼없이 내게 별명을 붙이고, 서로가 서로를 놀리며 장난치고, 농담도 마두 던지고, 팝송을 듣고 몸을 들썩거리며 춤을 추기도 하고, 욕이 난무하는 힙합 노래를 듣기도 했다. 공부 시간에 조는 학생들처럼 예불 시간에 높은 승려들의 눈을 피해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미처 불경을 외우지 못했는지 틀린 입을 벙긋거리며 립싱크를 하기도 했다. 승려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름과 특별함을 기대한 그들에게 내가 본 것은 같음과 평범함이었다. 우리 옆집이나 옆 옆집에 살 것 같은 친근하고 살가운 친구로 다가오는 승려들을 보니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 신기루였다. 승려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서 진짜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삶이 '구도자의 삶’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은 그 삶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라다크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녀를 절로 보내 승려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일이 아주 흔했다. 집안에 아이가 많을수록, 집이 가난할수록 절로 보내질 확률이 높았다. 승려 본인의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역할도 자신의 믿음이나 깨달음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대소사를 책임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구도자의 삶을 산다기보다는 승려라는 이름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같았다. 직업처럼 부여된 승려라는 지위는 그들에게 돈과 권위를 주기도 하고,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진 번뇌를 지워주지는 못했다. 그들 역시 가끔은 이런저런 일에 흔들리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결코 파동 없는 고요한 물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한 중년의 스님이 라다크에서 병원을 짓고 계셨는데 나와 지혜는 병원 터의 흙을 고르는 일을 도왔다. 스님은 고맙다며 우리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주셨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스님의 사진첩을 구경하며 수다를 떨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공부를 하셨다는 스님의 이십 대 때 모습은 누가 봐도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는 사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옛이야기를 꺼냈다. 영국에서 공부하던 당시에 그를 열렬하게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고백했단다. 자신은 사랑이 뭔지 모르고, 평생 알 일도 없다고 냉정하고 뿌리쳤지만, 그 비극적인 상황이 여자의 마음을 더 뜨겁게 달궜다. 그렇게 여자는 '나를 봐달라'고 삐뚤어진 행동을 끊임없이 하며 스님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서 여자가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는 스님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행복을 빌어줬다고. 그러나 그녀의 결혼 생활은 오래 지나지 않아 끝났고, 이제 중년이 된 그 여자는 힘들게 살면서 아직도 가끔 스님에게 연락한다고 했다.

"차라리 스님이 아니어서 그 여자를 사랑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때도 있어. 그럼 그 여자가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평생 내 마음의 짐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지는 해를 등지고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의 얘기를 하는 스님의 표정은 조금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분위기에 취해 나는 굉장히 애잔함을 느꼈다. 어둠이 드리운 그 얼굴에는 아쉬움이 맴돌았을까? 애틋함이 묻어났을까? 그 여자에 대한 동정 어린 표정이 서려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지나간 일에 대한 덤덤한 회상의 표정이었을까? 나는 스님의 몸을 틀어 그 표정을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저 스님을 사랑한, 그리고 스님 때문에 불행해진 한 여인의 굴곡진 인생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불혹을 넘긴 존경받는 스님조차 이러한데 하물며 젊은 승려들은 얼마나 큰 갈등과 번뇌를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친구들에게 섣불리 물어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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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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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군요 ^^
만다라는 소설과 영화로도 익숙한데 이곳에서는 삶과 연결되어져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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