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스타벅스 사내의 횡재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스타벅스 사내의 횡재









사내는 초췌한 모습으로 히로사키역을 나섰다. 밤새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느라 지친 몸을 빨리 추스르고 싶을 뿐이었다. 여행 중 좀처럼 야간에 이동하지 않는 사내이지만 일본의 살인적인 교통비는 사내로 하여금 평상시에 하지 않던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일본의 야간 버스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밤 10시에 출발해서 아침 8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그런지 버스는 취침 버스 그 자체였다. 사방을 커튼으로 두른 버스는 출발하자마자 암흑에 휩싸였다. 사내는 밤 10시면 아직 취침을 시작하기에 이른 시간이라 휴대폰이라도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암흑에 휩싸인 버스 안에서의 전자기기의 불빛은, 마치 종말의 날에 비춰 오는 핵폭탄의 섬광 같이 느껴지는 터라 감히 켜 볼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멀뚱멀뚱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는 터였다. 화면을 보는 행위를 할 수가 없으니 귀로 듣는 행위나 해야겠다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아 본다. 긴자에서 잃어버릴 뻔했던 블루투스 이어폰은 암흑 속에서도 사내의 쟈켓 주머니 속에 정위치 하고 있다. 사과 만드는 회사에서 제작한 이 이어폰은 충전 본체에서 꺼내자마자 휴대폰과 바로 연결된다. 편리하다. 사내는 다시 자신의 세계와 손쉽게 연결되는 것이다.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팟캐스트에서는 사내가 속한 사회의 온갖 잡다한 논란들을 떠들어 대고 있다. 유치원이 난리인가 보다. 어떤 연예인들은 가족들의 사기횡령 사건에 휘말려 있다. 어떤 정치인은 휴대폰을 내놓느니 마느니 때문에 온 국민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사내는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속한 사회의 논란을 즐기고 있다. 그것은 즐길 거리이다. 그런 논란들이 없다면 팟캐스트에서 떠들어대는 저 사람들은 무얼 먹고살 것인가?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들은 무얼 먹고살 것인가? 그곳에 광고를 해서 먹고 사는 기업들은 어떻게 자신의 제품을 알릴 것인가? 그들의 음주 회식을 제공하는 술집과 식당들은 무얼 먹고살 것인가? 그들의 귀가를 책임지는 대리기사들과 택시기사들은 무얼 먹고살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딸린 가족들은 무얼 먹고살 것인가? 그들의 자녀들은 어디에서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결국 모두가 먹고살기 위해서 사회는 계속 논란을 만들어 내야 한다. 논란이 없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굶어 죽던가, 모두가 편안하던가 할 터인데, 모두가 편안하려면 자원이 좀 있어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하니, 사내가 속한 사회 같은 곳에서는 열심히 논란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힘든 시간을 겪어 내고 있을 논란의 주인공들이 새삼 불쌍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나? 그들도 그 논란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고 논란을 잘 딛고 나왔을 적에는 더 큰 부와 명성을 얻게 되니, 그들이야말로 용자가 아닌가, 사내는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잠이 들었나 보다. 사내는 갑자기 훤해진 실내등 불빛에 눈을 부비며 시계를 본다. 벌써 도착할 시간이다.


‘아니, 언제 잠이 들었지.’



속삭임은 강력한 수면제이다. 사람들은 잠자리에서의 속삭임에 길들여져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장가이며 아버지가 읽어주던 잠자리 책 읽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고 자라면서 우리는 라디오의 속삭임에 잠이 들고 연인의 끝없는 수화기 너머 속삭임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잘 시간이라며 틀어주던 애국가도 없이 24시간을 떠들어대는 TV의 속삭임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니 잠이 오지 않을 때에 우리는 무심코 속삭임을 찾아 나선다. 뭐라도 들어야 잠이 오는 것이다.



밤의 적막은 오히려 휴양지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사내는 오늘 야간 버스에서 그 밤의 적막을 경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다. 코 고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간과할 수는 없었겠다. 어쨌든 사내는 오늘도 여지없이 팟캐스트 진행자들의 속삭임 속에 논란은 이 세계에 두고 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갔다 왔다. 깨어나자마자 기억조차 사라지는 그 세계에서 그는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알 수 없다.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녔는지, 카사노바가 되어 수많은 여자들을 품에 안았는지, 아니면 공룡에 쫓기다 간신히 깨어났는지, 그것도 아니면 다시 군대에 가야 한다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절망에 빠졌다가 깨어나, ‘휴우~ 천만다행이다!’를 외치고 있는지.. 무엇도 알 수 없지만 사내가 처한 지금의 현실은 떠나온 긴자에서 보다 기온이 10도쯤이나 떨어져 있는 일본 북부지역의 한적한 소도시의 아침 공기이다. 동경의 긴자를 출발해 밤을 지새우고 달린 야간버스는 일본 북부지역의 작은 소도시 히로사키에 사내를 내려놓았다. 버스에서 내린 사내는 알싸한 아침 공기가 코를 간지르자 연신 재채기를 해대고 있다. 이곳은 실은 긴자에서 밤을 새우며 달려온 현실의 어떤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재채기는 다른 세계와 이 세계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적응증일지도 모른다. 호흡이 달라져서 나오기 시작하는 그것.


‘아, 그 세계에서는 아가미로 숨을 쉬었던가?’



사내의 생각이 아직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사이에서 혼돈을 겪고 있는 동안, 호흡은 점점 이 세계의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코끝이 살짝 시려진 탓에 옷깃을 여미게 되긴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12월로 접어들고 있는 이 세계의 공기가 아닌가. 사내는 오히려 제 날씨다운 일본 소도시의 첫 호흡에 살짝 만족하며 거리를 나선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음 밥부터 먹자.’



사내는 아침을 먹어야 한다. 여기가 어디든 배는 일단 채우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세계에 속하든 물질의 인간으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거룩한 의무인 것이다. 생존을 이어가는 일 말이다. 그것을 폄하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오만하며 반인륜적인 행위인 것이다. 누군가는 삶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곡기를 스스로 끊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니 될 말이다. 태어난 물질로서 자신의 생존 시스템을 한계까지 운용해 가는 것은 누구도 함부로 저버려서는 안 될 거룩한 의무인 것이다.



먹고 싸는 일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수많은 고통과 좌절, 괴로움과 권태를 겪어 낸다. 하루에 꼬박 세 번의 식사를 해내고, 한 번 내지 여러 번, 누군가는 가끔 배변을 하는 일. 그것으로 물질로서의 사명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든, 얼마나 싸든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할 일이다. 또 다른 물질들이 분해하고 생성해 내며 생태계의 순환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쭙잖은 인간이 세상사를 논하며 자신의 매커니즘을 중단한다면 다른 물질이 그 공간과 역할을 대체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인류 전체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문명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지만, 문명 이전의 수많은 세월 동안 인류는 물질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다해 왔다. 진정한 문명이라면 그러한 매커니즘 위에서 자신의 역량을 확대해 갈 것이지, 그 매커니즘에 반기를 들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비겁한 선택인 것이다. 모두가 먹고 싸느라 힘이 드는데, 혼자만 편하겠다고 無로 자신을 돌리려고 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존재가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일은 오로지 신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잡다한 생각이 사내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사내의 위는 더더욱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허기를 느낀 위는 뇌를 시니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뭐든 일단 먹어야 한다.


‘도토루가 있군. 음.. 열었군.’



사내는 히로사키 역사 안에 있던 일본의 대표적인 카페체인점을 발견한다. 평상시에는 잘 들르지 않지만 이른 아침의, 주변의 뭐가 없어 보이는 소도시 역사 인근에서, 이만한 공간을 발견해내기는 횡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운 마음과 곧 위장을 채울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이 사내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도토루를 향하던 사내는 입간판에 적혀있던 모닝 세토를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횡재했다고 느꼈다. 햄과 치즈, 간단한 야채가 곁들여진 샌드위치와 커피 세트가 390엔!


‘390엔! 이렇게 싼 가격의 모닝 세토(‘set’의 일본식 발음)가 있다니. 이런!!’



사내는 운이 좋다고 느꼈다. 이런 이른 아침에 차가운 몸과 공허한 위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나기도 어려운 일인데, 게다가 커피 한 잔 가격의 돈으로 따뜻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만나다니.. 사내는 히로사키를 횡재의 도시라 명명하고 싶었다. 가뿐히 뛰어올라 하늘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히로사키 만세! 도토루 만세!!’가 쓰여진 거대한 현수막을 펼쳐 들고 싶었다. 이 도토루 카페의 선행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싶었다.



사내는 홍조를 띄우며 만면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호주머니에 정확히 390엔의 동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현금결제를 선호하는 일본의 상점들 때문에 사내는 여러 번 번거롭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해야 했었다. ‘캐쉬 온리’라는 소리에 넌덜머리가 나려고 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흥분한 마음은 그래서 늘 노심초사하며 동전 잔액의 유무를 신경 써야 했던 사내의 현금 상황과 모닝 세토의 가격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월드컵 우승팀을 맞춘 도박사의 그것처럼 사내에게 짜릿한 감격을 선사했다.


"모닝 세토! 힛토쯔!! (ひとつ, 한 개)"



사내는 보무도 당당하게 카페에 들어서서는, 목소리도 우렁차게 모닝 세토를 주문하며 매대에 촤르륵 하고 주머니 속 동전을 쏟아 놓았다. 정확하다! 정확하게 390엔의 동전이 1엔짜리부터 100엔짜리까지 가지런히 펼쳐졌다. 흡사 그 모양은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 순간에 펼쳐지는 불꽃놀이처럼, 이른 아침 도토루 카페의 적막을 깨며 화려하게 펼쳐졌다. 아직 아침잠이 덜 깬 듯 무심히 사내를 맞이하던 카페의 점원도, 이 낯선 사내의 당당한 액션에 깜짝 놀라며 눈 앞에 펼쳐진 동전들의 섬광에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찌푸렸다. 사내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며 삐딱하게 서서 주문한 모닝 세토를 기다렸다. 이제야 몽롱한 정신에서 깨어난 점원은 빠른 손길로 사내가 주문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았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수~"



사내는 점원이 건네주는 모닝 세토를 우아하게 받아들며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는 창가의 좌석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그 순간 몽롱한 채로 각자의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있던 카페 안 인류의 시선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내에게로 모아졌다 갈라졌다. 그냥 뭐 하는 인간인가 잠시 쳐다보았을 뿐인 것이었다.


‘앗차! 내가 너무 흥분했나..’



살짝 자부심에 쩔었던 사내는, 금세 냉랭해진 카페의 정상적인(?) 실내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이내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 그렇다 여기는 남의 어떠함 따위에 별 관심이 없는 일본이다. 게다가 초췌한 사내의 과잉된 행동에 반응을 보일만 한 정신이 없는 몽롱한 아침의 손님들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카페 안은 조용히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피아노 연주곡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 적막 속에 휘감겨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고는 자신의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알아챈 사내의 눈에는, 뒤통수에 달린 손님들의 눈들이 ‘닥쳐!’하고 주의를 주는 듯 보였다.


‘쓰미마셍.. 고메나사이..’



사내는 이내 어깨를 움츠리며 이 세계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이럴 땐 그냥 내 몫의 아침 식사나 조용히 밀어 넣는 것이다. 이 도시를 구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말없이 식사를 마친 사내는 390엔 어치의 아침 식사에 만족하면서도, 밤새 빈속으로 달려온 탓에 아직 허기가 남은 위의 빈 공간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스몰 사이즈의 커피로는 덜 깬 정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음.. 안 되겠어. 역시 커피는 스타벅스지.’



사내는 스타벅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여기며, 어디를 가나 우체국처럼 존재하는 스타벅스에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자라면 일단 고정적이고 한결같은 시스템에 대한 목마름이 있게 마련이다. 지나치는 도시마다 매번 새롭게 이해하고 파악해야 하는 각종 새로운 시스템들에, 마음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스타벅스를 찾게 된다. 언제나 같은 환경의 같은 메뉴, 같은 분위기, 같은 시스템이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또한 편안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낯선 타지에 들어선 첫 순간에는, 오히려 모든 것이 익숙한 스타벅스에 앉아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와이파이 주파수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며,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현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가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는 스타벅스가 어디에 있지?’



많게는 골목마다, 심지어는 마주 보고 있기도 한 대도시의 스타벅스는, 굳이 지도를 볼 것도 없이 거리를 조금만 걸어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소도시의 스타벅스는 아무래도 지도 어플을 켜서 위치를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시 있군.. 그런데 30분을 걸어가야 하네.’



사내의 휴대폰 속 지도 어플에 역에서 30분 거리의 스타벅스가 하나 발견되었다. 여기를 가야 한다. 도보로 30분이면 조금 멀기도 한 거리인데, 뭐 이 아침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내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내는 점잖게 빈 커피잔과 샌드위치가 담겼던 접시를 퇴식구에 반납하며 슬쩍 카페 안을 휘둘러 본다. 떠나는 사내에게 눈길을 주는 누군가가 혹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냉랭한 역전 카페의 손님들은 여전히 사내에게 관심이 없다. 가든지 말든지 너의 자유라는 듯, 아무도, 어떤 인기척에도 대응하는 사람이 없다. 사내는 아침의 흥분된 마음이 무안했는지 살짝 눈인사를 보내며 횡재스러웠던 아침의 기억을 고이 마음에 접어 넣었다.


"잘 먹고 갑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수.."



거리를 나선 사내는 이내 상념에 젖어 든다. 아침의 흥분된 마음이 아직 사내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지, 낯선 거리에 늘어선 가로수 풍경이 마치 자신을 맞이하는 거리의 환영인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은 이렇게 자뻑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



사내는 반쯤 눈을 감고는 수많은 환영인파에 둘러싸여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악의 무리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내고 영웅이 되어 귀환한 이 중년 사내에게 수많은 인파는 꽃가루를 뿌리며 환호를 보내고 있다. 사내는 흥분된 마음은 감추고, 무덤덤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가도에 늘어선 환영인파에게 옅은 미소를 짓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고 있다. 그것은 카퍼레이드를 하는 월드컵 우승팀이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감격스럽고 흥분된 손짓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혁명군 지도자의 근엄함 또는 독립운동가의 비장함을 담은 무엇이다. 그렇다. 인류의 절대 사명인 먹고 싸는 일을 오늘도 당당하게 해낸, 그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기적처럼 정확하게 390엔의 동전을 확보해 낸 선견지명과 혁명적 선택에 으쓱하며, 자신은 오늘도 하루를 잘 버티어 냈노라고 자부하고 있는 몸짓인 것이다. 그러자 사내는 더더욱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워졌다. 공기는 차갑고 무거운 데, 사내의 가벼운 몸짓은 마치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의 그것처럼 경쾌하고 밝다. 일본의 작은 도시 히로사키. 이 도시는 무뚝뚝한 사내를 흥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군. 스.타.벅.스! 오호 건물이 멋진걸.’



30여 분을 날듯이 걸어 도착한 스타벅스의 건물은 근대의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매우 독특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여느 단독건물 형태의 스타벅스와는 그 외양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저만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사내는 이런 독특한 모양의 스타벅스를 만나게 되자 다시 한번 흥분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하하하! 오늘은 횡재의 연속이군!!’



삐걱거리는 낡은 마룻바닥에 목조건물로 이루어진 스타벅스는 매우 고즈넉하고 한적했다. 이른 아침의 이 공간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손님들 또한 사내의 등장을 환영하는 듯 일제히 웃음 띤 미소로 사내를 맞아 주었다. 사내는 조금 감격한 듯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매번 슬쩍 폄하하듯 대해 온 스타벅스였지만, 이렇게 현지의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오래된 근대의 건축물을 멋지게 개조하여 매장을 꾸민 감각에 놀라기도 하고, 게다가 냉랭한 공기를 뚫고 온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점원들과 다른 손님들의 눈인사에, 마치 고향의 친지들을 만난 듯 사내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그러잖아도 살짝 흥분상태였던 사내의 기분이 더할 데 없이 날아오르려던 찰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좀 전 역전 카페에서의 과잉되었던 자신의 태도에 살짝 부담을 느꼈던 터라, 이번에는 짐짓 흥분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마치 이 고장의 오랜 토박이처럼, 늘 오던 곳을 오늘도 그냥 무심코 들렸다는 듯 가볍게 주문을 던진다.


"홋또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구다사이."



톨 사이즈. 사내는 다 마시지도 못하면서 꼭 톨 사이즈의 커피를 시키는 버릇이 있다. 왠지 스몰 사이즈를 시키면 사내답지 않게 쩨쩨해 보일 것 같은 강박 때문이다. 둥근 탁자 위에 작은 테이크 아웃 커피잔이 놓여 있는 모습이, 사내에게는 무언가 못마땅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시간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작은 사이즈의 커피만을 시켜 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양새가 사내로서는 영 마뜩잖아 보였기 때문이다. 사내는 사나이니까 말이다.



좀 전 도토루 카페에서 사내는 커피가 충분치 않았다. 아침의 흥분감도 어쩌면 아직 덜 깨어난 몽롱함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내는 톨 사이즈 커피를 들이켰다. 점잖은 사내가 자칫 과잉 행동을 하다가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내는 아메리카노를 연신 들이키며 횡재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은 마치 횡재를 한 듯한 아침이야. 그런데 횡재란 말이지. 뜻하지 않은 재물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건대. 오늘 아침에 재물을 얻은 건 아니잖아. 390엔을 정확히 맞추었을 뿐.. 뭐 싼 가격의 모닝 세토를 만난 건 재물을 아낀 거니, 이것도 횡재라면 횡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것보다 오늘은 행운이 깃든 날이 아닐까? 이런 외관의 스타벅스를 만난 것도 행운일 테니 말이야.’



사내는 횡재와 행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다. 횡재는 보통 액운 가운데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함부로 취했다가는 액운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횡재로 얻은 재물은 반드시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액운을 피하는 길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사내는 어른들의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실은 사내는 자주 횡재를 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복권에 당첨되기도 하고, 경품으로 자동차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사내는 처음에는 자신을 행운의 사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첨된 복권 때문에 사내는 회사에서 갑자기 사직을 하게 되었고, 경품에 당첨된 자동차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복권에 당첨되었으니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당첨된 금액이 한 달 보너스 수준이었던 터라 사내는 도리어 손해가 막심해졌다. 게다가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여기저기 한턱 쏘는 바람에 졸지에 카드빚을 지는 신세가 되기도 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몰아닥친 회사의 정리해고 바람에 사람들은 서로 먼저 나가라고 눈치를 보다, 운 좋은 사내는 나가서도 잘 될 거라며 은근히 압력을 주는 바람에 사내는 회사를 제일 먼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당첨된 자동차도 역시 사내에게는 액운의 징조였다. 웬 횡재냐며 덥석 당첨된 자동차를 몰고 흥분한 마음으로 스피드를 내다가 경찰에게 쫓기게 된 사내는, 실은 지난달 복권 당첨 턱을 내다가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경찰의 사이렌 소리에 갑자기 기억해 낸 사내는 당황한 마음에 페달을 마구 밟아 버렸다. 덕분에 자동차는 외딴 시골길의 논두렁에 처박혀 버렸다. 당첨된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이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내는 갑자기 그때의 일을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는 오늘의 이 좋은 흐름을 횡재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어떤 액운이 밀려올지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자중해야지. 횡재는 금물이야. 행운이면 몰라도..’



갑자기 목이 탔는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연신 들이키던 사내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사내는 실은 먹으면 바로 신호가 오는 ‘직싸형 내장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싸는 일에 성실한 사내는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본능을 지체하는 일은 우주의 시스템 전체를 지체시킨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내는 신호가 오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이 스타벅스의 화장실은 여성 화장실 하나와 남녀 공용화장실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변기가 없는 여성 화장실은 늘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여성 화장실을 확충하는 분위기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스타벅스는 역시 화장실의 문화 또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의 횡재는 오늘도 사내를 비껴가지 않으려는지 스타벅스의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사내는 이상한 일을 마주하고 말았다. 남녀 공용화장실에 들어서 바지를 내리려는 순간, 좌변기 앞에 떨어져 있는 지폐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 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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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written by 교토바다


[교토바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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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시리즈는 글쓰기를 중단하신 마법사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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