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저소비녀의 합리적 소비

in #stimcity5 years ago (edited)


저소비녀의 합리적 소비









저소비녀는 오늘도 마트 앞을 서성인다. 저소비녀에게 마트는 애증의 공간이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악마의 유혹 같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운명의 테스트 같다. 매번 같은 공간, 같은 항목들의 쇼핑을 하고 말지만, 저소비녀에게 상품으로 가득 찬 마트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긴장되는 일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품들이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을 뻗쳐 자신을 소유해 달라고 애걸하기 때문이다. 저소비녀는 그 간청을 뿌리치는 데 매우 잘 단련되어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1+1, 반값할인을 들이밀며 자신을 소유해 주길 간청해 댄다.



저소비녀는 매우 냉정하다. 쏟아지는 세일 상품들의 호소와 귓가를 때리는 판촉직원의 마감 직전 마지막 할인 행사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상품 앞으로 바로 진격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려서도 안돼, 눈길을 주어서도 안돼. 이탈은 곧 소비로 이어지는 거야.’



저소비녀는 직진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구매 목록에 기재된 바로 그 상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일 상품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해서 예정에 없던 소비를 하고 말게 되기 때문이다. 저소비녀는 마트의 이러한 마케팅 매커니즘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녀 또한 한때는 영락없는 마케팅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싼 줄 알았다. 그저 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덥석덥석 집어 든 세일 상품들이 카트를 가득 채우고 나면, 내 통장의 잔고 또한 함께 불어나는 듯한 착각을 느끼곤 했다. 무의식은 그렇다. 눈에 보이는 무엇이 가득 채워지면 마음도 함께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언제나 깨닫는 순간은 캐셔의 바코드 스캐너를 통과하여 장바구니에 담겨지는 상품들의 가격이 작은 모니터 화면에 빼곡히 기록되는 때인 것이다. 합계라고 쓰인 구매 상품 합산 금액의 총액이 빠르게 자릿수를 더하며 올라가는 그 순간, 심장은 얼어붙으며 간덩이는 차갑게 쪼그라들어 버리는 것이다. 풍요의 기쁨을 채 누리지도 못한 채, 금세 과소비를 했다는 자책감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한없는 자책과 후회의 한숨이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버리는 것이다.



가끔은 심장이 멈추어 버릴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얼른,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은 상품들 중 값이 나가 보이는 상품을 슬쩍 들어서 옆으로 빼버리기도 한다.


“아! 이건 잘못 가져왔네.. 이건 뺄게요.”



딱 그만큼, 딱 그 상품의 가격만큼 쫄깃해진 심장이 여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래봐야 새 발에 피일뿐이다. 과소비의 대세는 아무 지장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허탈한 마음을 그냥 보내었다간 다시 마트에 오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큰 호혜를 베푸는 척 한마디를 하는 것이다.


“포인트 적립하실 거죠?”



아 그래, 포인트가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적립이래봐야 전체 소비금액의 눈꼽만큼 일지라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결국 언젠가는 휴지 한 박스를 탈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과소비녀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그래도 현명한 소비를 했다는 안도의 마음을 얕게나마 갖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안다. 이거 백날 모아봐야 쓸 일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과식 이후의 소화제 한 알 먹는 정도의 효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러니 자꾸 반복하면 효험이 잘 듣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맘때쯤 마트는 경품을 건다. 규모가 있는 곳은 자동차를 걸기도 하고 여행상품권을 걸기도 하며, 누구라도 크리넥스 한 통쯤은 가져갈 만한 경품행사를 벌인다. 그 규모가 클수록 평상시 마트의 판촉 마케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경품에 당첨이 된다면 그간의 과소비를 모두 만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모두 혈안이 되어 액수를 채우는 것이다. 쿠폰을 챙기는 것이다. 그것으로 만회할 수만 있다면 살림의 여왕으로 등극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시츄에이션은 어디서 많이 보던 시츄에이션이 아닌가? 만회를 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가속하는 상황 말이다. 도박인 것이다. 마트는 과소비인들의 도박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감생심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상술에 놀아나는 환락의 파티인 것이다. 그래도 좋다. 누군들 당첨이 되겠지. 운 나쁜 나란 인간, 당첨될리 없지만, 어느새 예산을 훌쩍 넘어버린 장보기의 경계음은, 흥분되는 복불복 100% 당첨 경품행사에 무의식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지 않았는가? 아편 맞듯 진통제를 놓아가며 계속되는 마트 생활에, 과소비녀는 환골탈태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름을 바꾸었다. 과소비녀에서 저소비녀로. 그것은 마치 신이 내린 새로운 이름과 같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소비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새롭게 하고, 더 이상 우상의 유혹에 자신의 선택을 맡겨두지 않겠다 선언을 하는 것이다.



저소비! 그것은 혁명이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유혹의 마트 전장에서, 그녀는 과감히 자신의 예산에 입각한 소비만을 하겠다 천명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들 비웃는 것이다. 함께 장을 보는 이웃집 아낙들이 흉을 보며, 사람 좋은 인상으로 덤을 얹어 주던 마트 정육점 청년이 비웃는 것이다. 매번 계산대에서 들었다 놓았다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던 그녀의 소비행태를 매우 잘 알고 있는 캐셔들이, 쉬는 시간 휴게실에서 그녀의 환골탈태를 언급하며 폭소를 날리는 것이다.


‘비웃었어. 좋아 보여주겠어. 현명한 소비가 무엇인지 톡톡히 보여주고 말겠어.’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소비녀로 다시 태어난, 한때 과소비녀로 불리던 그녀는 결심을 다지는 것이다. 그 비웃음은 어쩌면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환청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녀의 호주머니 사정을 알지 못하니 아는 이는 자기 자신뿐이다.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은 마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입을 빌려 독화술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충동을 막아야 해. 어떻게든 충동적 소비를 근절해야 해.’



충동적 소비, 그것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는 충동이 일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1+1’이라는 주문, ‘마감 직전 세일’이라는 문구. 그것들은 살아 숨 쉬며 그녀의 눈을 흐리고 만다. 그것은 입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달콤한 쵸콜릿처럼, 흔적도 없이 그녀의 눈에 착착 흡수되어 자신도 모르게 상품을 집어 들게 만든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보지 않는 것이다.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보이는 것은 보지 않는 것이다. 견물생심인 것이다. 청물생심(聽物生心)이 아닌 견물생심(見物生心). 보기 전에야 충동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눈을 가려야 한다. 보지 말아야 한다.



저소비녀는 그래서 전략을 세웠다. 마트의 매장 위치정보를 샅샅이 머리에 입력하고는, 필요물품이 위치한 동선을 철저히 계산하는 것이다. 견물생심 하지 않기 위하여, 그녀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눈 가린 말처럼, 목표한 매대만을 향하여 진격! 진격! 해야 하는 것이다.



저소비녀는 먼저 구매 목록을 확정하였다. 냉장고와 부식창고를 뒤지면 그것의 빈자리는 명확하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확인한 후, 목록을 확정하여 마트의 동선을 정하면 되는 것이다. 목록 상으로는 매우 단출하고 분명하다. 예산은 절대 초과되지 않을 것이며 충동은 사전에 제거될 것이다.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반복한 저소비녀는 마트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결전의 순간은 다가오고. 마트 앞에 이르자 장바구니가 찢어지게 한 아름 들고 나오는 패전한 과소비인들이 눈앞에 즐비하다. 그들의 표정은 후회로 가득하거나, 얼마 되지 않는 포인트 따위와 경품행사용 쿠폰을 꼭 붙든 채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 그래도 놔두면 언젠간 다 쓸 물건들이라고..


‘그래, 나는 더 이상 상술에 놀아나지 않을 테야. 저들과 같은 후회는 더이상 없는 거야!’



저소비녀는 다시 한번 결심을 다지며 비장한 가슴으로 마트에 들어서고 있다. 아.. 그러나 쏟아져 내리는 각종 할인 정보와 경품 행사 정보, 목청이 터져라 세일을 외쳐대는 판촉직원들의 아우성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각종 할인 상품들의 피라밋들이 동시에 저소비녀의 시야로 쏟아져 들어오며 강력한 파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허억! 어.. 어..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지? 어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했더라.’



하얗게 부서지는 환한 마트 조명 아래, 저소비녀의 머릿속은 순간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매대 앞에 늘어선 커다란 카트의 행렬뿐이다. 카트는 마치 자신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이 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장난감 매대 앞에서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아끌며 한 눈으로 저소비녀를 힐긋 보는 아이의 눈빛은 마치 ‘어이 저소비녀, 어디 한 번 해보라구. 이 지옥을 그냥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듯 비웃고 있다.



뎅..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던 저소비녀는 가까스로 정신줄을 가다듬고, 수도 없이 반복했던 동선 시뮬레이션의 기억을 끌어올리고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나는 충동적 소비에 넘어가지 않는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힘들어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하니처럼, 저소비녀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하고 눈에 온 힘을 잔뜩 주고는 정확히 목표한 매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한다. 한 발 한 발, 자신을 다 채워야 나갈 수 있다며 협박해 대는 무거운 카트는 버려둔 채, 딱 장보기 목록에 기록된 상품만큼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만을 옆구리에 끼고, 저소비녀는 목표한 지점까지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이다.


“저기 아가씨.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 새로 나온 믹스커피예요. 텀블러도 드려요.”



뭐라고 텀블러, 허억! 텀블러다. 믹스커피를 사는 데 텀블러를 준단다.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저소비녀의 진격을 막아선 첫 번째 장애물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믹스커피 행사 매대의 판촉사원이었다. 목이 타고 있었다. 새로 나온, 찬물에도 풀어지는 아이스 커피믹스를 판촉 중인 사원의 손에는 그럴싸해 보이는 텀블러가 들려 있다.


‘아.. 어쩐다. 긴장했는지 목도 타는 데, 일단 시식용 커피 한 잔을 받아?’



저소비녀는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마트를 너무도 만만히 본 탓이다. 마트의 모든 동선은 저소비녀들의 전략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 그들의 심리와 욕구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적절한 지점에 유혹의 손길을 뿌려 놓은 것이다. 수많은 시식대와 각종 판촉사원들의 배치는 매우 과학적이고 심리적인 분석을 통해, 저소비녀들의 결심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마트 입장 후 몇 걸음, 몇 발자국의 동선마다 배치되어 있는 각종 장치들은 마트 전체의 조명, 음악, 향기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마트가 밀고 있는 바로 그 상품을 구매하게끔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저소비녀는 지금 막 그 유혹의 그물에 걸려 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딴따라 딴딴, 생활의 기쁨, 쇼핑의 만족 00마트를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감사와 친절의 인사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마트에 계신 직원 여러분들은 모두 함께 따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 이것은 천운인가? 매시 정각이 되면 울려 퍼지는 마트 직원들의 친절인사 퍼포먼스 방송이 그 순간, 저소비녀를 커피 판촉행사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아차차! 큰일 날 뻔했네. 정신 차려야지..정신!’



다행이다. 홀려가던 저소비녀의 감각이 돌아온 것이다. 덕분에 저소비녀의 동선은 다행히도 유혹의 전선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은 저소비녀에게 매우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해프닝이었다. 매장 직원들의 기계와 같은 인사와 같은 동작의 퍼포먼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친절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보다, ‘앗차! 이러다 홀랑 다 털리고 말겠다.’ 싶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계략과 판매 전략이 느껴지는 이러한 퍼포먼스를 마트는 왜 시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직원들을 더욱 기계처럼 다루기 위한 친절교육의 일환이겠으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의심스러운 생각을 더하게 만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퍼포먼스인 것이다.



어쨌거나 각성한 저소비녀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저들의 호의라는 것은 모두 계산된 행동이며 나의 지갑을 털어가기 위한 판매전략일 뿐이야. 지난번에 사다 놓은 커피믹스가 뜯지도 않은 채로 찬장에 그대로 들어 있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텀블러를 얻기 위해 또 살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정신 차리자! 바짝 차리자!!’



제대로 각성한 저소비녀는 목표한 소비를 차분히 이어나갔다. 정확히 계산된 동선에 안착하여 하나하나 구매 목록에 따라 상품을 바구니에 담고는, 일절 주위의 각종 할인정보가 담긴 싸인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계속 온갖 시식과 각종 할인행사를 광고하는 손길이 수도 없이 저소비녀의 발걸음을 방해하였으나, 저소비녀는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은 채 목표한 모든 구매를 마치고 걸음도 당당하게 매대 앞으로 진격하는 것이다. 아, 이것은 저소비녀의 소비 인생에 드디어 마트전쟁에서 승전을 기록한 최초의 소비로 새겨지는 순간인 것이다. 어떠한 충동구매도, 예산을 넘어서는 과소비도 없이, 예정된 구매 목록에만 입각한 합리적 소비를 구현해내는 것이다.


‘됐다. 다 샀다. 이제 계산만 하면 된다.’



저소비녀는 보무도 당당하게 매대 앞에 줄을 섰다. 저녁 시간을 맞아 매대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긴 줄에도 불구하고 매대가 모두 오픈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캐셔들이 휴가라도 갔는지 매대는 2군데만 오픈 되어 있고 계산을 기다리는 고객의 줄은 매대 사이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늘따라 줄이 왜 이렇게 길지. 장 보는 사람도 평소보다 많은 것 같네.’



일단 저소비녀는 빠르게 앞사람들의 카트를 스캔하여 계산이 빨리 끝날 것 같은 줄에 잽싸게 들어섰다. 여기까지 매우 힘들게 왔으니 이제 남은 계산의 과정만 잘 끝내면 오늘은 정말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소비녀는 스스로가 매우 자랑스러워졌다.



그런데 지루하게 이어지는 계산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는 것이다. 갑갑해진 저소비녀는 계산대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는가 싶어 계산대를 살펴보았다. 계산대에는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가 캐셔랑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음.. 이거 얼마죠. 찍어봐줘요.”

“후우.. 12,990원이요.”

“음.. 그러면 그건 빼야겠네. 일단 옆에 치워 놔주구요. 이걸 찍어 봐 줘요.”

‘으.. 할머니..’



할머니는 자신이 산 상품들을 모두 재점검하고 있었다. 돈이 모자라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예상 구매액보다 많이 나와 그러는지, 장바구니에 담긴 상품을 이것저것 넣고 빼고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야말로 초강력 저소비녀였던 것이다.



초강력 저소비 할머니는 뒤에 길게 늘어선 줄을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20분째 계산을 반복하고 있었다. 계산대의 캐셔는 포기한 듯, 영혼을 탈곡 당한 채로 바코드 찍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 초강력 저소비 할머니는 빼고 넣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계산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드디어 구매를 확정 지었다. 줄지어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이제야 끝났네.' 하며 한숨을 짓는 순간, 할머니는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애미야. 포인트 카드를 놓고 왔네. 빨리 가지고 오렴.”



그런 것이다. 할머니는 마트 포인트 카드를 놓고 온 것이다. 포인트 적립을 생략할 수는 없다. 나중에 영수증만 가져오면 포인트 적립이 되는데 할머니는 반드시 지금 이 순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영수증에 기록된 포인트의 점수를 바로 이 순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할머니, 다음에 영수증만 가져 오시면 포인트 적립하실 수 있어요.”

“아니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다 잊어버리거나 영수증을 잃어버리면 당신이 책임질 거유. 아니 그리구 어따대구 할머니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캐셔뿐만 아니라 길게 늘어선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복장이 터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할머니의 계산은 일단 유보한 채로, 다음 사람들의 물건부터 계산을 해야 한다. 넣고 빼느라 매대가 한가득이 되어버린 난장판을 대충 밀어둔 채, 캐셔는 계산을 이어나가고 있다. 바짝 신경이 곤두선 터라 바코드가 스캔이 잘되지 않는다. 넣고 빼고를 반복하다 스캐너가 오류가 난 모양이다.


“이런 씨..”



짜증이 잔뜩 난 캐셔는 일일이 바코드를 입력하고 있다.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바코드 숫자만큼의 고구마가 틀어박히고 있다. 아, 저소비녀, 그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초강력 저소비 할머니의 막강 퍼포먼스의 와중에 저소비녀는 명상에 잠겨 있었다. 길게 늘어선 계산대의 줄이 매대들 사이에 위치하는 바람에, 어떻게든 보지 않으려 하고 있던 각종 할인 상품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돼, 안돼.. 오늘 내가 어떻게 장을 봤는데 여기서 결심을 무너뜨릴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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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written by 교토바다


[교토바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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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재밌게 읽었어요 -

카드가 없어도 도망쳐나온 후 패닉에 빠져 마구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저소비녀님의 기분을 알 것 같아 매우 찔렸답디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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