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다시 태어나도 춤을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다시 태어나도 춤을








“다시 태어나도 나랑 만날 거야?”



여자는 묻는다.


‘우리가 다시 태어날까? 다시 태어나 지금처럼 너를 만나게 될까? 그때에 너는 지금의 너일까? 나는 지금의 나일까? 우리가 만나는 그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같을까? ...’



남자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남자와 여자는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물리학적 진실을 확인하려고 드는 게 아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 만날 거냐구?”



여자는 재차 묻는다. 남자는 빙긋이 웃는다.


‘나는 말이야. 지금의 네가 좋아. 그리고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을 거야. 하지만 내일의 너는 지금의 너와 같을까? 어제의 너와 지금의 너는 말이야. 그 둘이 다 같은 사람인가 말이야.’



어제의 너는 지금의 너와 같지 않다. 어제의 너는 어제에 잠겨 있다. 오늘의 너는 새로운 너이다. 오늘의 우주에서 만난 너는 오늘의 나에게만 유효하다. 아마도.. 몇 세기 뒤의 물리학적 진실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혼돈스러운 우주의 시간개념에 애정문제를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다.


“내가 왜 좋아?”



남자가 묻는다. 애정을 확인하려 드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대한 반문이다. 이쯤 되면 여자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냥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날 거야 하면 될 텐데. 남자는 묘한 방식으로 여자에게 공을 넘긴다.


“왜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을 안 하고 되물어?”

“내가 좋냐구?”

“좋지 그럼, 좋으니까 다음 생에도 나랑 만날 거냐구 묻고 있잖아.”

“왜 좋은 데? 뭐가 좋은 데?”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그걸 꼭 말로 해야 할까? 여자는 다음 생에도 나를 만날 거냐고 물었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할까? 남자는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그래 너는 네게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날 거냐고 물었잖아.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니..’



남자는 또 빙긋이 웃는다. 하지만 그걸 꼭 말로 해야 한다. 여자에게 그걸 꼭 말로 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여자는 행복해진다.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날 거야. 그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날 거야. 그래서 우리가 만난 거야.”



오늘은 어제의 다음 생이다. 어제 잠든 우리는 다른 생에서 살다가, 그 생에서 나라를 구했다가, 인류를 구원했다가.. 이 생에 너를 만난 거다. 그 대가로 서로를 만난 거다. 그리고 다시 잠들고 나면 우리는 다른 생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때로는 공주가 되고 때로는 기사가 되고, 때로는 부자가 되고 때로는 빚쟁이가 되고, 때로는 쫓기는 신세가 되고 때로는 하늘을 날아오르고.. 그러다 다음 생에 약속한 예정 시간에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잘 잤어?’하고 말이다.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이어지는 생 동안 우리는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만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끊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이 들었을 뿐이다.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생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인 것이다. 분리된 시간은 그저 잠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고, 그러고 있는 동안 시간은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의 너는 지난 생의 네가 아니다. 그리고 다음 생의 너 역시 이 생의 네가 아니다. 만물은 변하고 있고 끝없이 흐르고 있다. 흐르는 물을 붙잡을 수 없듯이 변화하는 너를 고정시켜 둘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너를 비교하면 안 된다. 오늘의 너가 내일의 너이기를 강요해서도 안된다. 흐르는 대로 변화하는 대로 매일매일의 너를 새롭게 만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눈 뜬 아침, 낯선 상대의 모습에 어느 날 마음이 차가워지게 된다.


“오늘의 너를 좋아해. 물론 내일의 너도 좋아할 거야.”

“하지만 흐르는 마음은 가둘 수가 없어. 그래서 너를 붙잡고 싶은 거야.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남자는 여자를 지긋이 안을 뿐이다. 여자는 이 순간의 남자를 붙들고 싶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본성이다. 모든 사고하는 존재는 인식의 순간에 머물고 싶어 하니까.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기란 매번 피곤한 법이니까. 그리고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으니까.



붙들고 싶은 것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자신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내일의 새로운 너는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할지 안 들어 할지 모르니, 내일의 새로운 남자는 여전히 매력적일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그러나 확신은 시간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확신은 의지로부터 비롯될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운명을 믿고 싶어 한다. 운명에는 의지가 필요 없어 보이니 말이다. 그것은 그냥 밀어닥칠 뿐이니 말이다.


“같이 흐르자. 그것뿐이야. 우리가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같이 흐르자. 같이 흘러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니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함께 하려면 같이 흘러야 한다. 마주 잡고 부여안고 두 존재는 같이 흘러야 한다. 마음이야 한없이 이어진 영혼의 바다를 통해 이어져 있지만, 시간을 공유하는 존재들은 함께 흘러야 한다. 그것은 물리적이어야 하고 실체적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가. 마음뿐인 관계는 수많은 운명들과 무한히 연결되어 있을 테니. 나는 너에게 특.별.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꼭 안아 줘. 나를 꼭 붙들어 줘. 끊어지지 않게.. 공백이 생겨나지 않게..”



남자는 여자를 꼭 끌어안는다. 여자도 남자의 어깨를 허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힘주어 끌어안는다. 밀착감은 사람을 평안하게 한다. 그것으로 두 존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운명은 물리적 거리로 관계를 묶어 놓는 것이 아니다. 운명은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두 존재를 놓아둔다. 시간은, 시간은 참으로 잔인하다. 시간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다. 특히 지나간 시간이라면.. 인식의 세계에서 그것은 영원히 공백으로 남는다. 미래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았고 약속으로만 다짐 받을 뿐이다. 그러니 가능한 것은 지금, 바로 지금의 시간이다.


“어디 가지 말고. 나랑.. 딴 데 보지 말고. 나만.. ”



그렇게 시간의 공백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 보지만.. 그러나 공백을 메운 다는 것은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이 아니다. 공백은 메우더라도 공간은 열어 두어야 한다. 숨 쉴 공간 말이다.


“답답해할지도 몰라..”



공백을 메우려다 공간을 점유해 버린 관계들은 점점 질식해 들어가기 마련이다. 숨 쉴 공간, 아니 무엇보다 서로를 바라볼 수 가 없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바라볼 수 있는 공간도 없이 바짝 서로를 붙여 놓은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아니 외로워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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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written by 교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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