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다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다









그는 지금 장엄한 서사의 끝에 서 있다. 어리석은 인간의 탈을 쓰고 참으로 오래도 살았다. 살아온 세월을 후회하며 한탄하기에는 새로 진입할 세계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살아온 삶의 결과로 다음 생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생을 저주하게 하는 일인가?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고, 인간의 선택이란 것도 결국은 모두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환경적 영향에서 누가 오롯이 스스로만의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공도 실패도 모두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는 그래서 절망 같았던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내 선택이 잘 못 되었는가’ 후회하기 보다, ‘고단한 시간이 있었구나’ 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성공의 순간을 돌아보면서는 그것이 있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인연과 도움, 그리고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반복되었던 우연의 순간들 덕이었음을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의 희로애락이 물살을 타고 가는 소금쟁이의 그것과 같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생을 경험해야 할까?’



그는 생의 끝에 서서 이러한 생각에 잠겨있다. 왜냐하면 그는 곧 다음 생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생도 이번 생과 같다면 그는 다음 생에는 좀 더 다른 삶의 국면을 경험해 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다. 이번 생에 했던 실수와 실패를 조금이라도 만회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그러나 그는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신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걸. 인간은 심하게 자책하고 심지어 죄와 죄에 대한 대가를 운운하지만, 신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모두 신적(神的) 작용일 뿐이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손바닥을 잘 운영하지 못한 신의 책임이리라.



인간은 이 지점에서 자유를 얻는다. 모든 것이 신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 인간은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그것조차 모두 신의 계획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 지점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다. 깨달았으나, 그는 깨달았으나 이 지점에서 멈칫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를 지배해 온 신적 관념의 엄격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심판자로서의 신은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성장과정의 당연한 신체반응조차 말이다.



죄.. 죄를 말하기 전에, 온전하지 못한 창조를 먼저 따지고 들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겠지. 아니 죄란 없겠지. 모든 것은 신의 섭리일 뿐이다. 인간이 죄라고 말하는 모든 것, 그것에 신이 구속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신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가 이 말이다. 그러니 죄는 없다. 그것은 없는 것이다. 행동과 선택에 대한 대가가 있을 뿐이다. 작용과 반작용이 있을 뿐이다. 신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한 대 치면 한 대 맞는 것이고 오르는 것이 있으면 내려가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불러야 한다. 선택, 아니 작용에 대한 결과를 말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작용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한 일, 미워한 일, 도전한 일, 회피한 일, 손 내민 일, 뿌리친 일.. 모든 것이 우주에 전해졌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물론 누군가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 나의 반작용 또한 그렇다. 그중의 일부는 이 생을 사는 동안 일어났고, 그중에 어떤 것들은 다음 생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는 자신의 삶을 카운트해보고 싶어졌다. 어떤 반작용들을 해소하지 못했는가? 사랑받은 만큼 사랑했는가? 누군가를 미워했던 순간은 내게 다시 미움으로 돌아왔는가? 실패했으나 도전했던 순간들의 결과를 나는 온전히 경험했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계산은 점점 불가능해지는 듯하다. 대양에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의 작용이 우주에 도대체 어떠한 파장을 일으켰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매우 치명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만히 있는다고 가만히 있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데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는 나 때문에 바람을 맞을 수 없고, 누군가는 내가 막아선 바람 때문에 맞지 않아도 되는 바람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나, 무엇이든 선택하고 있고 어떠한 작용이든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무도 없고 일방적인 가해자만도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두 하나의 운명체로 함께 흘러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서 분자로, 작용자로 말이다.



그는 이쯤에서 모든 분석을 내려놓기로 한다. 어차피 분석의 결과를 가지고 삶을 대응해 나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게다가 그 계산이라는 것이 결국 무한의 경우의 수를 포함하고 있으니 하나마나 일뿐이다. 그저 생의 쳇바퀴를 신나게 돌았다면 한 생을 잘 산 것이겠지.



그러나 그는 이제 다음 생을 맞아야 한다. 얼마간의 휴식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곧 다시 시작하게 될 다음 생에서, 그는 여전히 작용자로 하나의 역할을 수행해 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이 깨달음을 다음 생에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미리 예단하지도 속단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이 순간 내가 작용자로서 세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 것이다.



선택에 따라서 또는 타자들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수도 없이 침탈 당하고 침범 당하여도, 결국 누군가가 침탈 당하고 침범 당함으로써 내가 평안했던 어떤 순간, 획득했던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우리는 ‘마크툽’할 뿐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른 그에게 축복 같은 말이 떠오른 것이다. ‘마크툽’,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다는 그 말 말이다. 그 말은 실은 그가 자신에게 남겨 놓은 말이다. 모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직 하나의 생도 살지 못한 자신에게, 모든 것이 기록되었다고 전함으로써, 다음 생, 그다음 생, 또 그다음 생을 맞이하는 자신에게 기록되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메시지를 남기어 놓은 것이다.



이제 그는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되었다. 곁에 남은 이는 아무도 없다. 배웅하는 이도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는 만물에 둘러싸여 생을 살았다. 그리고 곧 그 만물 속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바위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생 역시 찬란할 것이다.



멀리서 그를 맞이하는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진다. 그의 눈은 편히 감겼고 영혼은 육체에서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지구는 회전을 거듭하고 있고 살아왔던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선택의 끝에 맞이했던 결과의 순간들이 회전하는 지구의 표면에 스크린처럼 투영되어 그의 감겨진 눈을 지나가고 있다. 장면에 따라 기쁨의 눈물이 솟구치기도, 슬픔에 가슴이 사무치기도, 후회가 되는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의 당혹함이 압도하다가.. 결국 흐뭇해졌다. 어쨌든 살아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에 매우 따뜻하고 다정한 손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 손은 감촉으로써의 이 생에서의 마지막 경험이다. 그 손 너머의 어떤 존재가 그리고 말을 잇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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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written by 교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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