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시티에서 작업하기
라라언니가 프랑스에 간 후로 큰 일이 없으면 잠깐이라도 20세기 소년에 있으려 노력 중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매일같이 마법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 안에서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그와 별개로도 일어났을 일인지 앨범 작업을 목표로 한 다양한 논의들이 20세기 소년의 바 자리에서 오가고 있다.
수요일에는 미디 레슨을 처음 받는 날이었다. 월요일까지만 해도 이것을 멀고 먼 인천까지 가서 배워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노드와 친해지기를 목표로 한다면 무조건 이 레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꼭 인천에 있는 그녀에게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처음 그녀와 이야기 할 때는 노드를 중심으로, 신스 사운드 만드는 것을 함께 해보자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디 툴을 잘 다뤄야 한다는 생각에 미디의 기초부터 새로 배우고 있다.
전자음악은 스무 살부터 나를 지독하게 괴롭혀오며 내가 가려는 곳마다 내 발목을 잡아 온 것인데, 이제 더는 미루지 않고 그것을 마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빨라지는 스팀 시티의 속도와는 별개로, 예정되었던 6월까지 영업을 하고 떠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때까지 레슨을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는 드디어! 유튜브 촬영에 필요한 녹음 셋팅을 끝냈다. 내가 연주하는 노드 소리를 그대로 로직(내가 쓰는 미디 시퀀서)에 오디오로 받고, 다른 트랙에서는 그 연주의 미디 신호를 받으려고 애쓴 것인데, 미디 신호를 받으면 노드 소리가 오디오로 들어오질 않고, 오디오로 받으면 미디 신호가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녹음된 오디오의 위상이 다르거나, 모노-스테레오 설정이 되지 않아 한 달 내내 이 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지금도 어떤 원리에서 안 되던 것이 갑자기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장은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기본 셋팅이 끝났다는 것만으로 아주 큰 개운함을 느낀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용어와 기능들이 어렵게만 느껴지지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그러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요즘은 매일 아침 연주를 하고 있다. 10분 남짓한 그 시간이 나를 충만케 하고, 숨 쉬게 하는 것을 느낀다. 여태껏 그토록 음악을 하고 싶다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별다른 루틴이 없었다. 음악에 한해서는 늘 너무 큰 열등감에 빠져 머뭇대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눈치만 보며 건반 이곳저곳을 움츠린 채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것을 해방할 수 있다면, 내 손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것을 믿을 수 있다.
지난 금요일, 20세기 소년에서 만났던 H님과 자리를 일어서기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다음 작업이 몹시 기대된다며 류이치 사카모토가 떠오른다 말했고, 나는 강하게 부정하며 내 음악은 오히려 히사이시 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고, 그 이유는 자신이 지켜본 내가 절대 밝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머리를 띵-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에 좀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류이치 사카모토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졌다.
그와 나는 작년 겨울쯤이었나 한참 류이치 사카모토의 async 앨범을 중심으로 긴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어제는 마침, J에게서 이 곡의 링크가 도착했다. 아직은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 할지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어제는 어쩌면- 이런 음악- 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고, 어쩌면- 파리에서- 라고 생각해보았다. 바라면, 그 곳으로 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