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둘,

in #stimcitylast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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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열차는 마법사를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내려주었다. 마법사는 여기서 환승을 해야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킹스크로스역은 9와 3/4 환승역이 있는 곳이다. 물론 마법사는 이번에도 동행자를 기다려야 한다. 그는 가이드형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택시 드라이버가 손님이 없으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그냥 기다릴 뿐이지.'



대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운명이자 가이드형 마법사의 운명이다. 동행자가 나타날 때까지 몇 날이고 몇 년이고 기다려야 한다. 마법사는 어려서부터 기다림에 익숙했다. 사람들은 도통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만남을 약속하고는 두 시간 먼저 나가 기다리는 것이 마법사의 독특한 습관이었다. 마법사는 그 시간을 즐겼다. 기다림의 시간은 가능성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올 거라는, 반드시 나타날 거라는 가능성. 약속 시간이 되면 친구의 집에 전화를 건다. (아직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다.) 그러면 친구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친구는 여전히 집에 있거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마법사의 소망은 친구의 약속 시간 준수가 아니라 약속 장소 출현이 된다. 다시 두 시간을 더 기다린다. 그리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돌아오는 길에는 여지없이 동네 어딘가에서 놀고 있는 친구와 마주친다. 그러나 마법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에서 그의 일부를 지워버린다.



이번에도 동행자는 언제 나타날지 기약이 없다. 포탈은 이미 여러 번 열렸다 닫혔고 몇몇의 여행자와 다른 마법사가 포탈을 통해 다른 우주로 넘어갔다. 그들은 잠시 마법사와 담소를 나누다 마법사의 기다림의 역사를 듣고는 안타깝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제각기 포탈로 빠져나갔다. 어느새 4년이 흘렀다. 마법사는 기약 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서쪽 마녀 엘파바가 나타나 마법사를 꾸짖었다.



"마법사님, 도대체 언제까지 착한 척하실 거예요!"
"아... 서쪽 마녀님, 오랜만입니다."
"이번엔 몇 년 째예요? 오지도 않을 사람을 도대체 왜 그렇게 기다리시는 거예요, 대체. 그러니까 위.키.드. 해지셔야 한다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서쪽마녀가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마법사의 어깨죽지를 기다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핀잔을 주었다.



"오겠죠. 저는 올 거라고 믿어요."
"참나, 이를 어째..."



서쪽 마녀는 늘 기다리기만 하는 마법사가 안타깝고 한심했다. 매번 저렇게 승강장에서 서성이는 마법사가 어서 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때 기척도 없던 마법사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진동했다. 동행자의 전화였다.



'네.. 여보세요."



마법사는 서쪽 마녀의 눈치를 보더니 슬쩍 화장실 쪽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뭐라고 말이 이어지더니, 마법사는 당황한 듯 전화를 끊고는 다시 서쪽 마녀에게로 왔다. 그리고 말했다.

"뭐라던가요?"
"여권이 필요하냐고 묻던데요."
"여권이요? 아니 여행자가 여권이 필요하냐고 왜 물어요? 국적이 영국인이래요? 아니지 여기는 환승역이잖아요. 순례 열차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데. 여권이 당연히 필요하지. 뭐야, 안가겠다는 얘기네."
"그럴까요? 그런가요. 여권이.. 여권 없이 여행을 어떻게 하지."



마법사는 한숨을 푹 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고 이상한 핑계를 가져다 댄다. 핑계 대신 이런저런을 불평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택시드라이버에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기도 한다.



"아, 안 되겠어요. 동전을 던집시다. 이러다 마법사님 여기서 늙어 죽어요."
"동전이요?"
"네! 우림과 둠밈이요."



서쪽 마녀는 마법사에게 동전을 던지라고 했다. 상대의 마음은 어쩔 수는 없는 일. 운명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일이지만, 주저하거나 번복하고 싶은 선택을 핑계로 갈음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한 결단만이 답인 것이다. 앞면이냐 뒷면이냐는.



마법사는 서쪽 마녀의 성화에 결국 안주머니에 매달려 있는 동전을 꺼내어 팅~하고 하늘 높이 튕겨 올렸다. 그러자 서쪽 마녀가 훌쩍 날아올라 동전을 잽싸게 낚아채고는 크게 외쳤다.



"언리미티드~"

"마법사님, 세상에 착하고 나쁜 것 따위는 없어요. 선하고 악한 것도.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언리미티드, 아무런 제한도 없는 무한의 가능성이랍니다. 그러니 기다리든 말든, 선택은 마법사님의 몫이에요. 자, 어서 타세요. 회오리바람이 몰려오고 있어요."



서쪽 마녀는 놀란 마법사의 뒷덜미를 잡아 날으는 빗자루 뒷자리에 태웠다. 그리고 빠르게 닫히기 시작한 9와 3/4 승강장 포탈 속으로 돌진했다. 동쪽 하늘에서 여권이 필요하냐고 묻던 동행자의 집을 삼켜버린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숨겨진 포탈들> 텀블벅 펀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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