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아홉,

in #stimcity2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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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암스테르담의 운하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박살 난 밴드의 리더 한스는 망연자실하며 주차장에 주저앉았다. 렌터카의 유리창을 누군가 박살 내 버렸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잠시 파리에 다녀오겠다며 떠나기 전, 트렁크의 짐들을 최대한 결속했다. 암스테르담의 대표적 명물, 차량털이범의 표적이 되더라도 짐들을 지켜야 한다고. 혹시나 도난을 당하더라도 마음을 빼앗겨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암스테르담이 초행이었던 두 멤버는 설마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날까 방심을 했다. 하지만 방심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놈들은 원하면 털어가니까.



최대한 안전해 보이는 실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보니 바닥이 마치 보석을 깔아놓은 듯 반짝였다. 처음에는 시멘트에 뭘 섞어나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반짝이는 건 박살 난 유리창의 작은 조각들이었다. 그리고 기둥에는 CCTV가 없으니 차량 도난을 조심하라는 경고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아니, CCTV를 설치할 것이지."



유명 관광지의 주차장이었다. 아마도 시는 차량털이범과 동업 관계인 듯하다. 타국의 차량들을 자국의 카센터에서 수리하게끔 만드는 산업 전략.



오늘은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기로 했다. 장비를 세팅하고 놓고 온 악보가 있어 잠시 차에 들른 한스는 기겁했다. 아니나 다를까 렌터카 뒷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 있었기 때문이다. 트렁크의 그것들을 가져가려고. 일부러 사람들이 빤히 지나다니는 주차장 한복판에 주차를 해놓았건만 아랑곳없이, 박살 난 밴드의 렌터카 유리창을 벽돌로 박살 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마법사의 결속은 얼마나 단단한지 놈들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 잔뜩 헤집어 놓았을 뿐. 이 광경을 본 한스는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왜, 왜..'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자동차를 박살 내고 도망친 놈들이, 밴드를 박살 내고 떠난 이들이 원망스럽고 한스러웠다.



'어떻게 쌓아 올린 관계인데, 어떻게 쌓아 올린 감정인데. 이렇게 헤집어 놓고서는.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이렇게 헤집어 놓기만 하면...'



풀어헤쳐진 가슴이, 뒤섞여 버린 감정이 마구 일어나 한스를 아프게 했다. 아직 아물 생각이 없는 그것들이 서로 부딪히며 감정의 불꽃을 일으켰다. 박살 난 것들이 한스의 마음 벽을 마구 할퀴고 찢어놓았다. 주저앉아 한참을 울던 한스는, 신신당부를 하던 마법사의 말이 떠올랐다.



"단단히 묶어야 한다. 단단히. 박살이 나도 가져갈 수 없도록 단단히 묶어야 해. 그래야 다시 이을 수 있어. 그래야 여정을 계속할 수 있어."



다행히 잃어버린 것은 없다. 박살이 난 렌터카는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하고 보험 절차에 따라 새 차량으로 인수하면 된다. 여행은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헤집어진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헤집어진 트렁크의 짐들이, 가져가지도 못한 짐들이 덩그러니 남아 눈물범벅이 된 한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스는 아픈 가슴을 쥐고 박살 난 자동차를 뒤로 한 채 현장으로 돌아왔다. 버스킹을 해야 한다. 한스는 힘들게 마이크를 들고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잭에게 한스는 잠시만 그대로 있자고 하고선 눈물을 삼키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
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낯선 밴드의 버스킹이 벌어지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한스가 마침내 입을 열어 노래하기 시작하자 잔뜩 얼어붙은 암스테르담의 운하로부터 찬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한스의 맺힌 절규가 공기를 때리자 얼어붙은 사람들의 거짓말이 하나둘 부서져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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