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MD의 모든것]011. 나의 시장조사방법 - 퀵 앤 더티 (Quick and Dirty)리서치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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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계 스포츠/패션 브랜드에서 상품팀에서 일하고 있다. 매시즌 신상품의 품목과 컬러, 디자인을 정하고, 가격을 매기고 마케팅 팀과 협업하여 출시 일정과 방식을 정하고, 매장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 되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최적의 상품을 개발하고 출시 하기 위해서 시장조사를 하는 것은 모든 산업군의 MD나 마케팅 담당자의 핵심 업무중 하나이다.

그런데 조사를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인지.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아래의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얼마전 내가 시장조사를 하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해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많은 독자들이 시장조사 방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조금더 실제적인 방법론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전글을 아래 링크로

[패션MD의 모든것] 001.나의 시장조사 방법- 소비자 조사

몇년전 일이다. 소비재 유통 관련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촌 동생녀석이 집으로 찾아왔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취준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투자자 유치를 위해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는데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비지니스 경력이 오래된 누나에게 조언을 좀 구하고 싶다며 몇가지 질문을 꺼내놓았다.

동생 : 시장조사는 어떻게 하는거야?
나 : 시장에 나가서 보면되지.
동생 : 어떻게 나가? 
나 : 두발로 걸어나가지?
동생 : 누가 나가? 에이전트 같은데 통해서 자료를 받는건가? 
나 : 니가 나가야지?
동생 : 직접 나간다고? 



이쯤에서 나는 좀 답답해지기도 했지만, 한편 이것이 실제 비니지스 현장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 인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억 자본금을 가지고 있는 패션회사라도 입사를 하면 트렌드 조사는 누가할까?
누군가 조사를 해서 예쁜 보고서 문서로 당신의 받은 편지함에 넣어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신이 MD라면, 당신이 마케터라면, 소비자의 트렌드를 조사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일"이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내가 다니던 전 직장은 스포츠 브랜드였는데 러닝화가 핵심 상품중의 하나였다. 마라톤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러너들이 우리브랜드 신발을 얼마나 많이 신는지, 즉 착화율이 판매율과 더불어서 신발MD들의 몇가지 목표중에 하나였다. 러너들이 무슨 신발을 신는지 자료는 어떻게 취합되었을까? 대회 참가자들이 오늘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제출하는 자료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신발 MD들은 1년에 3번의 메이저 마라톤대회, 동아마라톤, 춘천마라톤, 중앙마라톤의 피니시라인에서 육안으로 달리는 러너들이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일일이 카운팅을 했다.

카운팅의 방법인 아래와 같았다.

  1. 우선 피니시라인에 담당MD들이 일렬로 앉는다.
  2. 팀원 각각 각기 다른 브랜드를 담당한다. 경쟁사의 착화율도 조사해야 하므로 한사람은 우리브랜드, 한사람은 경쟁사1, 다른 사람은 경쟁사 2를 맡아 카운팅을 하는 식
  3. 한손에는 계수기를 들고 눈은 러너들의 발을 응시한다. (계수기 : 에버랜드나 서울랜드 입장할 때 입장권 받는 직원이 한손에 들고 딸깍딸깍 하고 누르는 은색의 조그만 물건을 아는 사람은 알것이다.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계수기"로 검색해보길 바란다.)
  4.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는 러너들 중 본인이 맡은 브랜드의 신발을 신은사람이 있다면 계수기를 눌러 카운트 한다.
  5. 한시간 동안 진행하고 브랜드별 착화수를 종이에 기록한다.
  6. 그렇게 4번 반복.

처음 신발 MD가 되었을때 마라톤대회에 나가서 직접 슈카운팅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우선, 마라톤 대회는 보통 일요일이고, 그 많은 사람의 발을, 그 오랜시간동안, 그것도 노상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게... 한마디로 좀 무식하고 이상한 방법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하는 이런 카운팅이 정확하긴 한건지, 무슨 중요한 자료가 되는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막내였으므로 '일단' 했다.

놀랍게도 이게 된다.
신발 MD들은 하루종일 신발만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 멀리서 달리는 러너의 발을 슬쩍 곁눈으로만 봐도 어느 브랜드의 어떤 상품인지 바로바로 알수 있었다.
심지어 몇년도에 얼마에 팔린 물건인지, 저 상품의 아더컬러는 무엇이 있는지 등이 줄줄 바로 떠올랐다.
결국 난, 이 카운팅은 신발 MD가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4시간을 내리 앉아 카운팅을 마친 후에 시간대 별로 착화율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라톤 선두권의 러너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후반부에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는 비교적 초보 러너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다시 난, 4시간을 쭉 앉아서 이 카운팅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라톤에서의 슈카운팅 말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소비자 조사를 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스니커즈 MD가 되었을때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신는 스니커즈화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 홍대입구로 갔다. (그땐 홍대가 핫했다.)
금요일 저녁 처럼,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간대에 슈카운팅을 했다. 러닝화 기반의 스니커즈, 농구화 기반의 스니커즈, 테니스화 기반의 스니커즈 등.. 어떤 종류의 스니커즈가 트렌드인지, 컬러는 어떤 색이 많이 보이는지 분석하고 나의 다음 시즌 상품기획에 반영했다. 그리고 그 결과숫자를 베이스로, 매년 동일한 조건에서 슈카운팅을 해나가며 데이터를 누적해 나갔다.

중고등 학생용 신학기 백팩을 기획할 때에는 어디로 갔을까? 정답 : 중학교, 고등학교 입구로 갔다. 등교시간에 정문 건너편에 앉아서 백 카운팅을 했다.

SPA 패션브랜드의 APAC(아시아 본사)의 프로덕트 매니저(PM)가 되었을때는 어디로 갔을까? 좀 높은 사람이 되었으니, 또는 한 나라만 맡는 것이 아니니까 리서치 따위는 안했을까?
천만에 말씀. 상해, 홍콩, 서울의 주요 상권 지하철역을 돌아 다니면서 한시간 두시간씩 카운팅을 했다.

이렇게 직접 리서치를 하는 방법은 실무자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는 다소 너무 날것 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와 같은 방식의 리서치 또는 접근 방법은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에서 제안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비지니스 전략 용어로 퀵 앤 더티 (Quick and Dirty)로 설명되기도 한다. 긴 계획없이 바로 실행하는 리서치나 분석 등을 정의한다. 이는 큰 금액을 들여서 규모있는 리서치를 하기에 앞서 방향을 잡기위한 목적, 또는 발 빠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각자 트렌드를 분석하고 소비자 조사를 하는 방법은 상품MD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번시즌 다르고 다음시즌 다른 트렌드를 다루는 패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MD라면, 이와 같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리서치 방법을 하나씩은 무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MD 선배들은 대부분 이런 실행력과 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건 어떤 열정이나 패기의 문제가 아니다. 비지니스에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나 방법이다.
물론 장기간의 예산을 투입하여 대량의 모수를 리서치하고 분석하여 컨설팅 회사에서 결론을 지어 전달 받는 자료도 충분히 활용해야한다.

하지만 실제 MD 실무의 상황에서는 위에 설명한 것 같은 퀵 앤 더티 (Quick and Dirty) 플레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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