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부장의 라떼] 003.월급이 아니다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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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직장으로 일했던 스포츠브랜드는 전체 매장중 절반이 아울렛이었다. 년 매출은 100억대. 점당 평균월매출은 고작 1천5백만원 내외. 매장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프랜차이즈 매장이었으므로 판매수수료, 월세와 인건비, 각종 비용등을 감안하면 겨우겨우 운영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매출 상황이 안좋으니 당연히 본사직원이 매장에 방문하면 매장 사장님, 매니저님은 상품과 마케팅에 대한 불만, 불평을 쏟아놓게 마련이었고, 화를 내시며 투명 인간 취급하시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퇴직금을 모두 털어 이 브랜드 매장에 올인했다는 어떤 사장님은 매출이 안좋아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 불화끝에 이혼을 했다는 소문, 판매사 알바를 구할 여유가 없어서 사장님이 하루종일 혼자 판매를 하신다는 매장 등 수많은 이야기들도 들려왔다. 나는 그래서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설때 늘 마음이 불안했었다.

어느날 일산의 한 매장에 방문하였더니, 매니저님께서 너무 반겨 맞아주셨다. 왠일이지? 이상하다. 그 매니저님은 오늘 매장에 들어온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서 반갑다고 하셨다. 입점 고객이 없어서 사람과 말을 하지 못해 정신병 걸릴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마음이 무거웠다. 도대체 왜, 우리 상품이 어때서, 우리 매장이 어때서 안팔리는 걸까. 분한마음도 들었다. 경쟁사 상품은 저렇게도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우리 상품은 왜 그들처럼 될 수 없는 것 일까.

그리고 다음날, 보통때와 같이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다가, 나같은 마케터, MD들은 9-6시 출퇴근을 하고 매출이 나오든 안나오든 월급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매장에서 하루종일 물건들을 개고 또 개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면서 고객의 방문을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하니, 내가 지금 이게 뭔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의미없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1년차 신입사원 나부랭이. 나따위가 뭘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일단 하던일이나 계속하는 수밖에…

나는 여전히 회사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지냈다. 상사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고, 맡은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현장의 소리도 어느정도 걸러 들으며 너무 정서적인 데미지는 입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뭐든지 성실하게 하면 되는걸로 입력되어 있는 로보트처럼 척척해내며 2년차가 되었다. 가끔 매출이 상향그래프를 그릴때도 있었다. 매출이 오르는구나 좋은 일이다. 정도의 감상일뿐, 나랑은 크게는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

고객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우리 브랜드를 돈주고 입어달라도 해도 갖다버리겠다고 하는 고객, 이런건 부끄러워서 못신는다고 하는 고객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가뭄에 콩나듯 우리브랜드룰 좋아한다는 고객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우리 브랜드 칭찬을 해주면 내가 칭찬 받은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주 간혹 우리 상품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는 고객들도 만나게 되었다.

" 수학여행에서 우정 사진 찍으려고 친구들과 똑같은 운동화를 샀다."

" 우울증이 있었는데 이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시작하고 우울증을 극복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삶이 나아졌다. 이 운동화는 죽을때까지 안버릴거다."

"사랑하는 사람과 커플로 입기 위해 이옷을 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가방을 고르는 중이다."

나의 삶에 내 브랜드는 그저 직장이었지만, 그 고객들의 삶에는 이 브랜드가 추억이자, 우정이고, 희망이자 사랑이었다. 여전히 줘도 안 입는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우리 브랜드를 나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나는 그분들이 물건을 받아들고 밝게 웃는 것이 좋았다. 우리 옷, 신발을 사고 집에가서 다시 입어보고 신어보면서 설레어 하실 것을 생각하면 뿌듯해졌다. 내가 멋진 화보를 기획해서 찍으면 그분들도 이 화보에 나온 옷과 신발을 신은 모델들 처럼 멋져진 기분을 느끼실 거라고 생각하면 즐거워졌다. 내가 기획한 이 러닝화를 신은 어떤 고객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기뻐졌다.

이제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였다.

나는 이제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 이것이 내가 일을 하는 의미인가.

매출 상황에 비례하는 마케팅 예산은 늘 부족했다. 마케팅팀 막내였던 나는 돈없이 할 수 있는 PR과 인플루언서 시딩을 담당했다. 비용을 들여 유명 연예인 엠베서더 계약은 못하니, 일반인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우리 브랜드의 성격에 맞게 구분하고 관리해나갔다. 직접 만나 우리 상품을 선물하고, 우리브랜드 역사와 철학을 설명하고 정서적인 유대를 만드는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옷과 신발이 상품이 그들의 삶에 의미가 되길 바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일반인 위주였던 시딩을 신진 디자이너, 패션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 등으로 넓혀 나갔다. 그 결과 패션업계에서 이제는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가 되었고, 간혹 저비용으로 연예인들을 통한 노출도 가능해졌다. 우리 브랜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찐팬 연예인들이 생긴것이었다. 매스컴을 통해 노출된 한 두 상품이 연예인 누구누구의 운동화 같은 이름으로 불리우며 적은 수량이지만 완판되는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신문 기사들도 점점 우리 브랜드에 대해서 실어주기 시작했다. PR업무는 점점 효율적으로 효과를 내게되었다.

한두가지의 상품이 성공적으로 판매되지 시작하자, 상품기획팀에서는(나는 당시에 마케팅이었으므로 남의팀) 기존 발주액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매출 때문에 상품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몇가지 되는 상품을 선택하여 집중 기획 발주하고, 효율이 낮은 상품은 제거하거나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나갔다. 생산, 영업, 경영팀 모두 매출의 성장에 걸맞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업무에 집중했다.

그로부터 5년후, 고객들의 사랑과 직원들의 고군분투 끝에, 브랜드의 매출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이제 이 브랜드는 길거리에서도 더러 볼수 있고 이름을 말하면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점당 평균매출도 많이 개선되고, 매장 사장님들이 돈을 많이 버셨다며 사무실에 떡배달을 보내주시는 경우도 간혹 생겼다. 매장에 방문하면 사장님들은 여전히 불평 불만을 이야기 하시기도 했지만 경제적 위기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졌다는 일화는 이제 없어졌다. 일산 매장은 이제 너무 북적여서 매니저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을 정도여서 살짝 눈인사만 드리고 나와야했다. 그리고, 우리 고객들은 이제 더 당당히 우리상품을 사용할 수 있었으리라.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눈 신경쓰지않고.

매출이 여러 가정을 살리고 행복을 주고 있었다.
우리의 매출이 이제 우리 고객들에게 품격이 되었다.

회사생활이란 지루하고 긴 과정이다. 일은 뚜렷한 목적도 의미도 없게 느껴질때가 많다. 나는 그럴때마다 내가 만든 상품을 사고 사용하며 기뻐하는 고객들, 우리 브랜드 매출에 따라 생계가 좌지우지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일하는 의미이다
고객의 기쁨, 희망을 주는 매출.
월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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