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3

in #sct4 years ago

太宗曰, 朕破宋老生, 初交鋒, 義師少却, 朕親以鐵騎, 自南原馳下, 橫突之, 老生兵斷後, 大潰, 遂擒之. 此正兵乎, 奇兵乎.

태종이 말했다. “ 내가 수나라 송로생(宋老生) 군을 격파했을 때에 접전 초기에는 우리 의병이 불리하여 약간 물러났었소. 그래서 내가 직접 정예 기병을 이끌고 남쪽 언덕에서 달려 나가면서 적진의 측방으로 돌격하였소. 그렇게 하니 송로생(宋老生) 군은 후면이 차단되어 궤멸했으며, 그 결과 나는 송로생(宋老生)을 사로잡게 되었던 것이오. 이것은 정병(正兵)이오, 기병(奇兵)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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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曰, 陛下天縱聖武, 非學而能. 臣按, 兵法自黃帝以來, 先正而後奇, 先仁義而後權譎. 且霍邑之戰, 師以義舉者, 正也. 建成墜馬, 右軍少却者, 奇也.

이정이 대답했다. “폐하는 하늘이 내신 성무(聖武)의 자질로서 병법을 배워서 능한 것이 아닙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병법은 황제(黃帝) 이래로 먼저 정병(正兵)을 사용하고 나중에 기습공격을 하는 기병(奇兵)을 사용했습니다. 또 곽읍(霍邑)에서 송로생(宋老生) 군과 대전할 때, 우리 군은 대의(大義)로서 기병(起兵)한 의병이니, 이는 정병(正兵)입니다. 그러나 당시 건성(建成)이 말에서 떨어짐으로써, 우리 군이 약간 후퇴하게 된 것은 기병(奇兵) 전법(戰法)을 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종 이세민이 송로생(宋老生)의 군대를 격파했을 때, 사용한 전법이 기병인지 정병인지를 묻는다. 송로생은 수나라의 장수로 이세민이 거병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당시 송로생(宋老生)은 전 병력을 총동원해 대항했다. 이 때, 이세민의 형 건성(建成)이 낙마하는 불상사를 겪으며,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갔다. 송로생(宋老生)이 맹공을 가해 당나라 군대가 위기에 빠졌지만, 이세민의 군대가 과감한 돌격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송로생(宋老生)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를 사로잡았다.

이정은 태종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를 두 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우선 처음 거병할 당시 군의 진용과 태세는 분명히 정병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투 당시 건성(建成)이 말에서 떨어져 아군의 기세가 다소 저하되었을 때, 군대를 뒤로 물리고 전세를 가다듬은 것은 기병의 전술이었다고 했다. 이로써 태종 자신도 동일한 전투에서 정병과 기병을 모두 사용해 조화로운 전법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에 이정은 태종의 전법적(戰法的) 식견(識見)의 높음을 칭송한다.

참고문헌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武經七書』, 서울: 서라벌인쇄, 1987
이정(저), 『이위공문대』, 강무학(역), 서울: 집문당, 2018
성백효, 이난수(역), 『尉繚子直解李衛公問對直解』,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4
성백효(역), 『사마법,울료자,이위공문대』,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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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많이 알고 계시네요.

중국 병법 이야기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for the book r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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