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데미안>

in photography •  2 years ago  (edited)

epaldks.jpg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p. 152

<데미안>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지인과 밥을 함께 먹고 신앙 고민을 나누다 <데미안>을 읽어볼 것을 추천 받았다. 길을 걸으며 내가 무슨 얘기를 했길래, 지인은 <데미안>을 추천해 준 걸까?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상을 선과 악의 편협한 구도 속에서 해석하며 불만을 터뜨렸었나? 혹은 흔들리는 신앙을 붙잡고, 내 안의 데미안을 발견하기를 지인은 바랐던 걸까?

어린 싱클레어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강요 받는 가정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다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표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카인은 단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 표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외양적으로만 보고 온갖 소문과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를 듣는다. 데미안은 에바 부인(어머니)에게 말한다. 싱클레어에게는 표적이 있다고. 그는 나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데미안>은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시인이 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자살까지 시도했던 헤세. 헤세는 말한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고. 이어 말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라고.

언뜻 보면 <데미안>은 압락사스라는 신비로운 신을 위해 삶을 바치는 신비주의자의 신앙 행위처럼 읽히기도 한다. 책이 쓰여진 당시인 1차 세계 대전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모든 바닥이 드러난 시점에 절대자에게 귀의를 이야기 하는 건 유일한 대안 같아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을 조금 자세히 본다면 헤세는 형이상학적 체험을 희망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향해 가는 '투쟁'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신이라는 구분을 깨고, 압락사스라는 신비의 신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함을 역설한다.

소설의 말미. 전쟁 통에 데미안은 장교가 되어 복무를 하고, 싱클레어는 병사로 복무한다. 보초를 서던 싱클레어는 폭탄 파편에 맞아 병동으로 실려온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데미안을 만난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자신이 오랜 친구였던 데미안을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싱클레어는 친구이자 자신의 인도자인 그(Er)를 자신 안에서 발견한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 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땐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중략)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p.221~222

대학을 졸업하고 수년이 지난 간밤에야 <데미안>을 읽었다. 당시 나는 어쭙잖게나마 삶의 의미를 묻고, 어느 구도자 행세에 심취해 있던 터라 지나치게 잘 알려진 <데미안>을 가벼운 어린이 동화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만약 그때, 내가 카뮈의 <이방인> 대신 <데미안>을 읽었더라면, 그것에 감명 받았더라면, 지금의 삶은 또 달라져 있을까? 그런데 오늘 새벽 '필연'에 관한 시몬 베유의 글을 읽게 된 까닭은 또 무얼까? 이상이라는 형이상학은 미래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없는 투쟁뿐. 그러니까 힘껏 살아가며 그 형이상학의 껍질을 깨뜨려 갈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누구 속에서든 정신은 현상이 되고, 누구 속에서든 피조물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있다. p.8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진 것이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그 점이 나를 조소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편안히 안착했다. 비록 오로지 존경하는 영상(베아트리체 영상)의 노예이자 봉사자가 되어서라도. p.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p. 129

사랑의 꿈, 사랑의 소망을 가져야 하네. 어쩌면 그 꿈들은, 자네가 무서워하는 그런 것이겠지. 무서워하지 말게! p. 150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생에 대한 고민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게요. 어쩌면 그게 생일까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나아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것이 나라는것을 리마인드하구 가네요..^^

핵심을 간결하게 짚어주셨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