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레스토랑 주방에서 빠에야 해먹은 이야기

in #paella8 years ago (edited)

빠에야를 제대로 먹어본 건 뉴욕에 있을 때예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캐비어에 트러플, 푸아그라... 각종 최고급 재료만 골라 고급 음식을 만드는 우리들의 식사는 매일같이 흰밥에 닭고기였습니다. 닭고기라고 하니 호사스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양념이나 튀김옷도 없이 아무렇게 토막 내서 오븐에 구운 걸 1년 내내 먹자니 닭 냄새도 맡기 싫어졌어요. 우리는 일하느라 바쁘니 직원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그는 요리사가 아니었다는 게 함정. 게다가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주방이다 보니 따로 앉아 먹을 시간도 없지요. 서서 후다닥 먹고 다시 일해야 합니다.

일하기 빡세기로 유명한 레스토랑이었기에 모두 그러려니 했는데 이 직원식사를 너무나 괴로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의 수제자로 우리 레스토랑의 오너셰프가 스페인에서 스카웃해온 수셰프였습니다. 그는 단지 직원밥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자신이 직원식사를 만들겠다고 소매를 걷은 것입니다. 남들은 귀찮아서 피하는 수십명의 직원식사를 수셰프가 맡겠다니 특별한 경우지요.

그가 만든 직원식사가 바로 빠에야였습니다. 사실 너무나 럭셔리한 빠에야였죠. 레스토랑의 온갖 비싸고 신선한 재료를 다 갖다 썼으니까요. 그렇다면 빠에야가 무엇이냐? 빠에야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유래한 쌀 요리로, 쉽게 말해 큰 팬 위에 여러 재료와 생쌀을 넣고 육수로 자작하게 끓여서 눌러먹는 밥입니다. 주로 해산물 빠에야, 발렌시아 빠에야(닭고기가 들어감), 먹물 빠에야 등이 있습니다. 닭갈비나 즉석떡볶이 먹고 나서 밥 볶아 먹는 거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빠에야는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위는 빠에야의 본고장인 발렌시아(스페인 동부, 바르셀로나 아래) 에 가서 먹은 발렌시아 빠에야입니다. 오직 빠에야를 먹기 위해 발렌시아에 갔고, 거기서 하루종일, 삼시세끼 빠에야만 먹었어요. 아, 오늘은 뉴욕 레스토랑 주방에서 빠에야 해먹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지요.

아무튼 우리는 저녁장사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 스페인에서 온 수셰프는 신이 나서 빠에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해놓은 재료를 다 갖다가 쓰는 겁니다. 랍스터와 랑고스틴을 이용해 만든 소스라든지, 살아있는 게 수십마리를 통째로 몇 시간동안 우려낸 육수라든지, 이쁘게 다듬어 놓은 각종 채소 등등 저녁장사를 위해 작업한 재료들을 마구마구 가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써야할 가스불과 플란차에는 그의 빠에야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그는 온 몸으로 빠에야를 젓지 말고 팬에 뚜껑을 덮지 말라는 제스츄어를 취했지요.

그렇게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빠에야가 탄생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직원 식사가 나오든 말든 관심없던 사람들이 그 날따라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냄새만 맡고도 이건 놓칠 수 없다는 걸 예감한거지요. 빠에야는 완성 되자마자 사라졌습니다. 오늘도 닭고기에 흰 밥일 줄 알고 느즈막히 나타난 몇몇 직원들은 자신들의 몫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The Best Paella Ever. 제 생애 최고의 빠에야였습니다. 뉴욕 한복판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이 한 목소리로 그의 빠에야를 칭송했지요. 깊고 청량한 바다 위로 스페인의 땡볕이 쏟아지는 맛이었어요. 겉은 부드럽고 속은 꼬들꼬들한 밥에는 해산물의 진한 풍미가 배여,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황홀했습니다. 그 날 식사시간에는 웬일로 모두가 일을 잠시 멈추고 앉아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다음 번 그 수셰프가 한번 더 빠에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재료 다 쓸 거잖아... 그날 최고의 빠에야를 먹은 뒤 우리는 미친듯이 일을 해야 했던 겁니다. 그가 가져다 쓴 재료만큼 다시 준비해야 했으니까요.

왜 갑자기 빠에야 이야기를 했는고 하니, 순례길에서 빠에야 만들어 먹던 것이 생각나서입니다. 그 때도 스페인 친구가 신이 나서 만들어 주었거든요.
<순례길의 어느 완벽한 하루> https://steemit.com/camino/@springfield/daily-3 참고.
그래서 사실은 그가 만들어 준 빠에야 레시피를 쓰려고 해던 건데 서론이 너무 길어져서 서론만 쓰고 말았습니다. 중간에 글 제목도 바꿨네요.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데 맨날 이렇게 주절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spring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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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나 즉석떡볶이 먹고 나서 밥 볶아 먹는 거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빠에야는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제 입맛이라는 거로군요 ㅋㅋ 한국 산골짜기에서 빠에야 구경은 무리이니 언제 서울상경할 일이 있으며 '빠에야~ 빠에 어딨니 빠에야~'하고 돌아다녀야겠어요.

스토커입니다
상단 박제합니다!

으악!!! 소철님 이곳까지 오실줄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SI때 소철님이 따라다니셔서 댓글도 정신줄 꼭 잡고 달았는데 이녀석 대단하다 ㅇㅈㅇㅇㅈ

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이미지같은 거 버린지 오래야 여기서 ㅋㅋㅋㅋㅋ

............이 댓글을 못본 척 해야할 지, 아니면 보고 안 웃은 척 해야할 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이렇게 답니다.

조용히 보팅만 누르시고 나만 당할 수 없지 상단으로 끌어올려서 다들 보아라! 라고 하시면 됩니다* ^_^ *
앗 이러고 나니 보팅 유도가 되버리는...그냥 플래그만 맥이지 마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만 당할 수는 없었어요 ㅠㅠㅠ 모두 미안해요 ㅠㅠ

고통을 가져가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그 고통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어요. 스프링필드님이 잘못하셨습니다. (정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앗 마법소금님을 정색하게 만들다니! 이건 다 케콘님 잘못입니다!!!

빠에야~ 어~? 얘가 어딨지?? 얘, 봉골레야, 혹시 빠에 못봤니 오늘?

플래그 어디있니? ㅋㅋㅋㅋ

안돼욧ㅋㅋㅋㅋㅋㅋ

못본 척 지나갈 수 없어 이렇게 답니다......ㅡ_ㅡ....흐읏.....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많은 분들이 보셨네 ㅋㅋㅋㅋㅋ

직원 식사 너무해요!
그래서 그날의 빠에야가 더 특별했겠네요 ^^

어디 빠에야파는 데 없나 찾아봐야겠어요.

정말 가뭄의 단비같은 식사였어요! 다들 일할 맛이 나더라니까요! 물론 할 일이 좀 더 생긴 것은 문제였지만 ㅎㅎㅎ 한 끼의 식사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게도님 계신 곳에도 빠에야 있지 않을까요 ;ㅁ; 없어도 게도님에겐 성게가 있으니 ;ㅁ;

찾아보니 동네에 스패니쉬 레스토랑이 있네요. 언제 한번 도전해볼게요 ^^

저는 닭고기 들어간건 아직 못 먹어봤습니다. 방콕에 게이들이 모이는 골목에 스페인 식당이 있는데 빠에야를 맛있게 해서 가끔 가는데 같이 가는 동료가 남자라 오해를 받지만 가끔 가서 맛있게 먹고 옵니다. 오늘 글도 잘 읽고 갑니다.^^

악ㅋㅋ 개털님 이런 에피소드를 조곤조곤하게 말씀해주시다니 ㅋㅋㅋㅋ 방콕이라면 스페인음식도 맛있게 할 것 같아요. 오해를 받더라도 꾸준히 가실 정도니! 개털님 저는 드디어 내일(오늘) 태국음식 먹으러 가요 ㅠㅠ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요..!

와오! 뭐 드실지 궁금하네요^^

제가 개털님 보여드리려고 인증샷을 찍으려고 했는데!! 약속한 친구가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되어 다른 친구들을 만나 파전과 닭똥집을 먹었습니다...ㅠㅠ

1521462358201.jpg
저는 이렇게 자몽과 새우를 곁들여 매운 소스로 버무린 샐러드를 먹었습니다. 남쪽 지방 요리죠^^

헐....... 새우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입니다!! (새우 미안..너는 식재료야) 게다가 상콤한 자몽이라니 ;ㅁ; 저 태국가서 살까봐요!!

@springfield막 염장을 지르려고 합니다. 태국와서 사시게...이번에는 멜론을 파내고 거기에 멜로과 열대과일등으로 버무린 샐러드 입니다.^^!
Oh&Ju_180321_0045.jpg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한다...아, 그렇겠네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네요.ㅎㅎ

직원의 식사를 끔찍히 챙겨주는 레스토랑도 물론 있어요! 하던 거 다 멈추고 무조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 곳도, 수셰프보다 더 높은 셰프가 매일같이 직원들 밥을 챙겨주는 곳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손님에게 만들어 주는 음식만 못하고, 남들 먹을 때 못먹기는 해요 :)

저는 서울 막 올라왔을때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알바했었는데,
그 때 주방이모가 만들어주시던 직원식사가 참 맛있었어요. 국이며 밥이며ㅎㅎ 직원들이 일을 또 해야했으니까 최고로 비싼 빠에야 였겠어요.

어머나. 경아님도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일하신 적이 있으셨군요. 주방은 아니고 홀이었기를 바라봅니다 ;ㅁ; 직원식사가 맛좋으면 일할 맛이 나더라구요. 주방이모님 덕분에 챙김받는(?) 기분은 드셨을 것 같아서 다행이예요. 저 빠에야는 아마 한접시에 못해도 3만원짜리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ㅎㅎㅎ

저는 길게 쓰려고 노력하는데...ㅋㅋㅋ
빠에야는 저는 해물입니다 ^^

해물 받고, 저는 해물 들어간 먹물 빠에야에 한표 던집니다!!

어마무시한 직원식사가 완성되었군요 츄릅

바로 그것입니다! 제 긴 글을 요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음식의 힘이란...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오래가게 해주는 것 같아요.

빠에야... 뷔페 구석에 다 말러버린 그런 빠에야만 먹어봤는데.. 어떤 맛일까 궁금합니다.

나중에 삶의 여유가 생겨서 즐길수 있는 시절이 오면 스프링필드님께 음식 추천을 받아야겠어요..

아니다 그때쯤이면 이곳 스티밋에서 이미 다 찾아 볼 수 있으려나요?

침이 고이네요

맞아요. 어릴 때 먹은 음식은 평생 잊지 못하고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해주신 음식 더 정성들여 천천히 먹는 건데 그랬죠. 라이언님께 삶의 여유가 분명히 올테지만 이왕이면 어서 와주었으면 좋겠네요. (제 코가 석자이긴 하지만 저는 제가 여유가 있다고 아직 착각중이므로...) 라이언님의 먹방 사진/글도 보고 싶습니다 :)

잠발라야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데 그와 유사한 빠에야는 아직 제대로 먹어보질 못한것 같아요. 구글해보니 이렇게 나오네요? ㅎㅎㅎㅎㅎ

Creole jambalaya originates from the French Quarter of New Orleans, in the original European sector. It was an attempt by the Spanish to make paella in the New World, where saffron was not readily available due to import costs. Tomatoes became the substitute for saffron.

잠발라야는 해먹으면 되는데 빠에야는 할줄 모르니 한국에 잘하는 곳을 찾아야겠네요! Any ideas?

'깊고 청량한 바다 위로 스페인의 땡볕이 쏟아지는 맛' 크, 역시 맛 표현 자체가 다르십니다ㅋㅋㅋ 저도 주방일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맛있는 요리도 좋지만 뒷처리 때문에 적당히 했으면...하는 마음이 언제부턴가 들기 시작했어요ㅠ

조르바님! 맞아요 ;ㅁ; 집에서 가끔 요리하는 거면 몰라도 요리가 직업이 되면 만들고 먹는 즐거움 이외에도 신경쓸 것들이 있지요. 저도 왠종일 요리하고 집에 와서는 라면 냄비채로 끓여 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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